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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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문명 비판적, 성찰적, 의지적
• 주제 : 도시적 삶에 대한 성찰과 참된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
• 특징 :
 ① ‘플라스틱 물건, 똥덩이’와 ‘무쇠 낫, 호미’ 등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킴
 ② 유사한 통사 구조를 반복하여 화자의 소망을 강조함
 ③ 대유법을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제시함
 ④ 구체적인 지명, 인명 표현을 통해 사실감을 높임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주체성과 개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삶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낸 시이다.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 한꺼번에 싸게 사서 / 마구 쓰다가 /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 플라스틱 물건’은 현대 도시 문명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의 성격을 보여 주는 사물로, 현대인들의 삶이 지니는 문제를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 단련을 거쳐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개성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낸다. ‘시퍼런 무쇠 낫’과 ‘꼬부랑 호미’는 삶의 가치를 회복한 화자의 모습을 표상하는 소재들이며, 시의 제목인 ‘대장간의 유혹’은 이러한 모습으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욕망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작품의 제목은 ‘대장간의 유혹’이다. 이때 ‘대장간’은 어떤 공간이고, ‘유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해야 제목을 통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대장간’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많은 쇠를 단련하여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만드는 생산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자신도 그런 공간에서 연단되어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유혹’은 화자의 소망을 보여 주는 말인데, 무가치한 존재가 아닌 진정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갈망을 ‘유혹’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자신이 일회용 플라스틱 물건처럼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될 때 지금은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어한다. 여기서 '플라스틱 물건'이란 현대의 물질 문명 사회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생산자의 정성과 혼이 깃들어있기 보다는 물질적인 이윤 추구와 관련이 깊은 물건을 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털보네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정성과 혼이 담겨 있는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 숫돌에 갈아 /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 땀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낸 / 꼬부랑 호미가 되어 /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결국, 화자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日新日新 又日新 (일신일신우일신)’의 다짐을 하고 있다.

 또한, 시적 화자는 이런 일신우일신의 자세로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통해 자신의 본질적 자아를 찾고자 하거나 혹은 문명사회에서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삶에 젖어 사는 자신을 성찰하고자 하는 의지를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도시와 도시문학(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도시는 이질적인 개인들이 밀집하여 살아가는 공간으로, 촌란과 구별되는 특유의 생활 양식과 문화를 형성한다. 또한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 공간의 질서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은 현대 문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일제 강점하에서 형성된 도시는 급격한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며, 새롭게 도입된 문물은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당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혼돈을 안겨 주기도 했다. 1930년대에 시작된 한국 도시 문학에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으며, 김광균의 ‘와사등’,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등과 같은 작품들에는 도시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된 당대인들의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이루면서 도시 또한 급속하게 발달하였는데, 이에 따라 도시인의 내면적 황폐화와 인간 소외, 계층 간 갈등의 양상을 다룬 문학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한편 도시 문학에서 도시는 주로 비판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현대 도시 문명 자체가 물질주의적 기반 위에서 세워졌고 그러한 물질주의가 낳은 병폐와 삶의 문제들이 문학의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6. 작가 소개

김광규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김광규

김광규(金光圭, 1941~ )는 서울 중산층의 평이한 언어 속에 범속한 삶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는 시인이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다.

100.daum.net

김광규 - 대장간의 유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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