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어 풀이
이 몸이 생겨날 때 임을 좇아 생겨나니, / 한평생 인연임을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 나 하나 젊어 있고 임 오로지 날 사랑하시니 /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구나. / 평생에 원하건대 (임과) 함께 살자 하였더니 /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가? / 엊그제까지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오르고는 했는데, / 그 사이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오게 되니 / 올 적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삼 년이라. / 연지분 있지마는 누굴 위하여 고이 단장할까? / 마음에 맺힌 설움 첩첩이 쌓여 있어 /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은 끝이 없다. /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는 듯 흐르는구나. / 더위와 추위가 때를 알아 지나가는 듯 다시 돌아오니 /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이 많기도 많구나.
봄바람이 잠깐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 가뜩이나 춥고 쌀쌀한데 그윽한 향기는 무슨 일인가? / 황혼에 달이 따라와서 베개 맡에 달빛을 비치니 / 흐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데 보내고 싶구나. / 임이 너를 보고 어떻게 여기실고?
꽃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 / 비단 휘장이 적막하고 수놓은 장막은 비어 있다. / 부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 가뜩이나 시름이 많은데 날은 어찌 이리 길던가? / 원앙 수놓은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지어 내니, /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 산호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두고, / 임에게 보내려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기도 험하구나. / 천 리 만 리 길을 누가 찾아갈까? / 이르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본 듯 반가워하실까?
하룻밤 사이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가 울면서 지나갈 때, / 높은 누각에 혼자 올라 수정으로 만든 발을 걷으니, / 동산에 달이 뜨고 북극성이 보이니, /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저절로 난다. / 맑은 달빛을 쥐어 내어 봉황누(임금 계신 곳)에 부쳐 보내고 싶다. / 누각 위에 걸어두고 온 세상에 다 비추어, 깊은 산골 궁벽한 골짜기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하늘과 땅이 닫히고 막힌 것처럼 흰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한 빛인데, /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날짐승도 자취를 감추었다. / 소상강 남쪽 언덕처럼 따뜻한 이 곳도 춥기가 이렇거는 / 임이 계시는 높은 곳(북쪽)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겠는가? 따뜻한 봄볕을 부치어 임 계신 데 쏘이고 싶구나. / 초가집 처마에 비친 해를 임 계신 곳에 올리고 싶다. / 붉은 치마를 여며 입고 푸른 소매를 반만 걷어, / 해는 저물었는데 긴 대나무에 기대서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기도 많구나. / 짧은 겨울 해가 이내 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 푸른 등을 걸어 놓은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를 놓아두고, / 꿈에서라도 임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 있으니, / 원앙을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지나갈까?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 잠깐이라도 임 생각을 말고 이 시름을 잊고자 하니, / 마음에 맺혀 있어 뼈속까지 사무쳤으니, / 편작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온들 이 병을 어찌 하랴. / 아, 내 병은 임의 탓이로다. / 차라리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고 싶구나. /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았다가, / 향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 임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내가 임을 따르고자 하노라.
■ 핵심 정리
• 연대 : 조선 전기(선조 때)
• 갈래 : 양반가사, 서정가사
• 제재 : 임과의 이별
• 주제 : 연군지정(戀君之情)
• 특징 :
① 다양한 비유와 상징적 기법을 활용하여 시적 화자의 정서를 드러냄.
②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호소력을 높임.
③ 시간(계절)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 의의 :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 충신연주지사라는 점에서 고려가요 ‘정과정’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정철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라남도 창평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이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외로운 여인으로 설정하여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호소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고 우리말을 잘 살려 썼다는 점에서 가사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서사에서는 천상계의 여인인 시적 화자가 인간 세계로 내려와서 천상계에서 지냈던 임과의 인연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본사에서는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면서 특정 대상물(매화, 옷, 청광, 해)에 시적 화자의 정성과 사랑을 담아 임에게 전하고 있다. 결사에서는 죽어서도 범나비가 되어 임의 곁에 머물겠다고 말하며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임금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천상에서 임을 모시다가 지상으로 내려온 선녀에 자신을 비유하여 노래한 것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서사에서는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여인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해서 노래했고, 본사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 그 때마다 느끼는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고려가요 ‘동동’의 표현기법과 매우 닮아 있다. 결사에서는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서라도 임의 곁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을 표현하였다.
임금을 연모하는 이 노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함으로써 더욱 절실하게 그려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한 것은 멀리 고려가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이 경시되던 시대였음에도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주어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 심화 내용 연구
1. 시대 상황과 관련지은 해석
이 작품은 작가 정철이 당파 싸움에서 패한 후, 관직에서 물러나 전라남도 창평(昌平)으로 내려가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 감상의 외적 준거들을 참고하면 작품 해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 그 더 엇디야 下界(하계)예 려오니 /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 디 三年(삼 년)이라.
▶ ‘광한전’은 해석상 달나라의 궁전을 의미하고, ‘하계(下界)’는 속세, 인간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철의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광한전과 하계를 해석하면, 광한전은 임금이 계신 대궐을, 하계는 자신이 유배 온 전남 창평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비슨(빗은) 머리’가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는 것은 유배 온 시기가 삼 년이 지나고 있으며 유배 온 이후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음을 의미한다.
•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라보니, /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 옷을 만들어 임에게 보내려고 하지만 산과 구름이 험해서 보내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정철이 당파 싸움에서 패하여 관직에서 쫓겨났음을 근거로 하면, ‘산’과 ‘구름’은 정철과 임금의 사이를 막는 반대 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철의 입장에서는 반대 세력을 ‘간신’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산’과 ‘구름’은 ‘간신’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울러 임금을 향한 자신의 충성심 사이를 간신들이 가리고 있으므로 임금이 알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2. ‘사미인곡’과 영향 관계에 있는 작품들
‘사미인곡’은 여성이 남성을 그리워하는 형식을 담아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하고 있다는 데서 고려 가요인 정서의 ‘정과정’과 그 맥을 같이한다. 또한 ‘사미인곡’은 부재하는 임에 대한 자기희생적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기도 한데, 이는 황진이의 시조,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나룻배와 행인’ 등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계절의 변화에 작가의 심정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 가요 ‘동동’, 송순의 가사 ‘면앙정가’, 허난설헌의 가사 ‘규원가’ 등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천상계의 인물이 하계로 내려왔다는 설정은 조선 후기에지어진 유배 가사인 조위의 ‘만분가’의 설정과 유사하다.
3. 계절별 주요 소재와 중심 내용
이 작품의 본사에는 계절적 배경을 바탕으로 임금을 위해 시적 화자가 전하고 싶어 하는 소재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임에 대한 충성심과 소망, 그리움 등이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4. 정철 가사의 문체적 특징과 문학사적 의미
‘송강가사’는 가사사(歌辭史)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작품일 뿐더러 문학성의 측면에서도 우뚝 솟은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그 까닭은, 거듭 말하거니와,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의식의 단초를 그에 걸맞는 언어로써 드러내고자 한 송강가사의 문체에 있다고 볼 것이다.
송강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서 다양하게 대화의 전개 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이것은 ‘훈민가’에서 송강이 강원도 백성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백성 A가 백성 B에게 전언하는 형식을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볼 때 송강가사의 미적 원천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대화의 다양한 층위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송강가사의 문제는 문어체 소설과 대비하여 보면, ‘판소리 서사체에서는, 흔히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언어(내적 분석)로부터 인물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내적 언어(독백)로의 전치(轉置)를 유도하는 예의 인용투어를 생략하거나 탈락시켜 버림으로써, 서술과 독백의 경계 없이 양자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양상은 초기의 가사에서 이미 보여진 바였다. 민요와 사대부 문학의 결합이라는 가사의 특성상 구어체와 문어체의 혼용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16세기의 가사들에서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는 반면, 송강가사에서는 문학적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언어 실험의 시도로 나타났다. ‘서술자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숨기도 해서, 서술자의 목소리와 시점, 인물의 목소리와 시점이 다양하게 조합됨으로써 상호침투 내지 공존’하는 현상은 실로 송강가사의 문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6세기는 주자학이라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에 보였던 과도기적 경향도 그러한 거시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송강이 가졌던 상대주의적 의식도 주자주의의 틀 속에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송강가사의 문체 또한 완전한 의미의 대화체로 보기는 어렵다. 송강가사의 후기의 기행가사인 ‘연행가’나 ‘일동장유가’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의한 의식이나 경험의 세계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를 토대로 송강가사가 전기가사의 최고봉이면서 그 마지막에 놓인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가사사적 전망을 세워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발생기의 가사가 민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사대부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상승하는 계급으로서의 사대부가 민중의 언어를 포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사가 서정성을 띤 이유도 마찬가지로 이제 상승을 끝낸 사대부들이 그들의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송강가사에서 보이는 언어 현상은, 지배계급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모순이 쌓여 가는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민중의 언어가 스며든 것인 셈이다.
송강가사의 문체가 보여 주는 특성들은 궁극적으로 개화기의 대화체가사에서 드러나는 언술적 특성의 단초가 되었다. 대화체가사의 서사화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고 후기가사의 서사화는 '누항사'가 그 선편을 쥐고 있었던 바, 서사화의 가능성은 원칙적으로는 가사의 언술적 특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송강가사의 언어 실험이 그 매개항이 되기 때문이다. 송강가사는 이른바 사대부가사의 백미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누항사' 에서 비롯되는 후기가사의 서사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송강가사는 전기가사의 마지막이면서 최고봉인 동시에 사대부가사 자체의 원리는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 조세형, ‘송강 가사의 이해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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