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가 - 충담사(2014년 EBS 인터넷 수능 문학B형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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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BS 인터넷 수능 문학B형에 수록


요점 정리

작가 : 충담사

갈래 : 10구체 향가

연대 : 신라 경덕왕 24(765)

성격 : 교훈적, 유교적, 잠요적(교훈과 경계의 내용을 담음), 권계적(잘못함이 없도록 타이러 주의시킴)

어조 : 논리적, 직설적 어조, 진지하고 간곡하게 충간하는 어조

표헌 :

수사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친근한 사실을 들어 비유하여 설득력과 교훈성을 얻고 있다. 또한 충 간하는 신하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다.

은유법의 사용 - 군신민의 정치, 사회적 계층을 부모자라는 가정의 기본적 인륜 관계로 비유

임금

아버지

나라를 이끌어 갈 책임이 있음

신하

어머니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려야 함

백성

어린 아이

임금과 신하를 믿고 따라야 함

사상 : 민본주의 사상, 유교적 정명사상

특징 :

향가 중 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유일한 작품

목적성과 교훈성이 강함 - 표현 동기보다 전달 동기가 강함

논리적이며 직설적인 어법 사용

, , 의 관계를 , , 의 관계에 비유함 - 청자층을 고려한 표현

구성 :

1~4

()과 신()과 민()의 관계 및 직분 - 비유적, 애민사상

5~8

통치의 근본 : 백성을 먹임 나라의 소중함을 깨달음 - 직설적, 민본사상

9~10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방안 : 각자 직분을 다함 나라가 태평해짐

주제 : 치국안민(治國安民) 또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도와 그 이상(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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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신라 시대 10구체 향가로, 치국(治國)과 이세안민(理世安民)이라는 군왕의 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8세기 중엽인 경덕왕 24(765)에 충담사가 왕명을 받아 지어 부른 유교적인 노래이다.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혼란할 때에 왕이 충담사에게 이 작품을 짓게 하여 백성들에게 퍼뜨렸으며, 이것이 대중에게 널리 퍼져 이어져 내려오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렸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충담사가 혼란한 사회상을 보고 임금께 바른 왕도를 깨우치기 위해 충간(忠諫)한 권계의 노래라고 볼 수도 있다.

 「안민가찬기파랑가모두 충담사의 작품이지만, 그 어조에 차이가 심하다. 그것은 안민가가 바른 왕도를 권계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데 비해, 찬기파랑가는 추모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창작 동기에 따라 그 내용이나 말투가 달라지게 됨을 알 수 있다.

 향가를 지은 신라 사람들은 당시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불교가 귀족 불교로서 각광을 받았고, 화랑도를 통한 심신 연마를 중요시했던 만큼, 향가를 지은 사람들은 주로 불교의 승려와 화랑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향가 작품이 불교를 배경 사상으로 삼은 데 비해, 이 작품만이 유일하게 민본주의(民本主義)라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승려가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유교적인 이상 정치에 대해 노래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각종 천재지변이 민생(民生)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신하의 도전으로 왕권이 위협받는 등 정치적으로도 위기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덕왕은 충담사로 하여금 향가를 짓도록 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따라서 예술성보다는 교훈성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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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학습

배경 설화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3월 삼짇날 왕이 귀정문 문루에 나와 좌우에 있는 사람더러 이르기를 누가 길에 나서서 훌륭하게 차린 중 하나를 데려 올 수 있겠느냐?” 마침 상당한 지위에 있는 한 중이 점잖고 깨끗하게 차리고 술렁술성 오는 것을 좌우에 있던 사람이 바라보고 곧 데려왔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훌륭하게 차렸다고 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만 돌려 보냈다. 또 한 중이 옷을 기워 입고 벚나무로 만든 통을 지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었다. 왕이 기쁘게 대하면서 문루 위로 맞아들였다. 그 통 속을 들여다 보니 차 다리는 제구가 들어 있을 뿐이다. 왕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 중이 말하기를 충담입니다.” 또 묻기를 어디서 오는 길인가?” 중이 말하기를 소승이 매년 3월 삼짇날과 99일 날은 차를 다리어 남산 삼화령에 계신 부처님께 올립니다. 지금도 차를 올리고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왕이 말하기를 나도 그 차 한 잔을 얻어 마실 연분이 있겠는가?” 중이 차를 다리어 올리었는데 차 맛이 희한할뿐더러 차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무럭무럭 났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듣건대 대사의 기파랑을 찬양한 사뇌가는 그 뜻이 심히 높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대답하기를 , 그렇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나를 위해서 백성을 편안히 살도록 다스리는 노래를 지으라.” 중이 그 당장 노래를 지어 바치었더니 왕이 잘 지었다고 칭찬하고 왕사를 봉하였다. 중은 두 번 절한 다음 그 벼슬을 굳이 사양해서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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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동기면에서 안민가와 월명사의 도솔가의 비교

먼저 두 작푸 모두 경덕왕의 요청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이 같다. 또 왕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목적에서 연승(緣僧)에게 각각의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는 점에서도 같다. 아울러 경덕왕이 연승으로부터 얻은 향가를 통해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는 것은 노래의 주술적 효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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