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 행복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요점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낭만적, 감상적

제재 : 사랑의 행복

주제 :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순결한 사랑

특징 : ①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의미를 강조함

② 여성적 시어를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함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전후(戰後)에 지어진 작품으로 인간 존재와 그 생명의 본질을 관념적으로 추구하거나 현실의 삶에 대한 인식이라는 시인의 초기 시의 경향에서 벗어나, 상당히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시는 사랑의 본질을 받기보다 주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랑의 능동성에서 찾고 있다. 그러기에 당시 현실에 만연되어 있는 이기주의, 자기중심적 태도로 먼저 사랑하기를 꺼려 하는 그릇된 세태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경세적(警世的)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수미상관식 구조를 통해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과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일상적이고 부드러운 시어를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보충 학습

★ 행복에 나타난 화자의 정서

5연의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라는 구절은 ‘너’와의 이별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너’에 대한 화자의 간절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시상을 종결시키고 있는데, 이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너’를 사랑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꼈으므로 더 바랄 것이 없다는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중요 시구에 담긴 의미와 역할

에메랄드 빛 하늘

- 이 시의 배경을 이루는 소재로,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형성함

- ‘에메랄드 빛’은 현재 화자의 ‘너’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행복한 마음을 구체화하여 표현한 것임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

- 힘들고 고달픈 현실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생겨난 소중한 인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함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

- ‘너’와 ‘나’의 애틋하고 소중한 사랑을 ‘진홍빛’의 색채어를 통해 표현함

- ‘양귀비꽃’에서 연상되는 아름다움과 ‘연연한’으로 대변되는 수사적 표현이 ‘너’와 ‘나’의 사랑을 더욱더 간절하고 진실되게 만들고 있음

 

★ 행복의 표현상 특징

- 일상적인 시어의 사용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에메랄드 빛’, ‘인정의 꽃밭’,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 등의 맑고 감각적인 시어의 사용이 두드러 지게 나타나고 있다.

- ‘~하나니라’, ‘~나니’, ‘~하였네라’ 와 같은 부드러운 시어의 사용을 통해 ‘너’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1연의 내용을 4연에서 반복한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사랑의 능동성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