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점 정리
작자 : 백제 제 30대 무왕, 서동(양주동 해독)
연대 : 신라 진평왕 대 (599년 이전)
갈래 : 4구체 향가
구성 :
1~2행 : 시상의 발단(원인)
3~4행 : 서동과의 밀애(결과)
성격 : 참요, 동요, 민요적
표현 : 직설적
주제 : 선화공주의 은밀한 사랑, 선화공주에 대한 연모의 정
의의 :
①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
② 4구체 향가가 민요나 동요로 정착한 유일한 노래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 이해와 감상
백제의 서동(薯童 : 백제 무왕(武王)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한국 최초의 4구체(四句體) 향가(鄕歌)로, 민요 형식의 이 노래는 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說話)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 정교한 10구체 향가와는 달리, 4구체의 민요 형식에 의한 직설적인 표현으로 초보적인 표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노래는 선화 공주의 비행을 발설하여 왕궁에서 쫓겨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자기의 아내로 맞을 수 있게 한 일종의 참요(讖謠 :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징후 따위를 암시하는 민요.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을 암시한 〈계림요〉, 조선의 건국을 암시한 〈목자요(木子謠)〉, 미나리와 장다리로 인현 왕후와 장 희빈을 관련지어 노래한 〈미나리요〉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이다. 내용적으로는 자신의 잠재적 갈망(渴望)과 욕구를 상대방의 것으로 전도(거꾸로 되거나 거꾸로 함)시켜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어서 ‘남몰래 얼어 두고’란 표현도 진부하거나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이 노래의 표기 체계는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기록하던 향찰(鄕札) 표기이므로 정확한 해독은 어렵다. 우리는 이 노래가 안고 있는 동요적(童謠的)인 단순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설화 그대로 어떤 재기 발랄하고 야심 많은 한 젊은이가 몽환적(夢幻的)인 사랑을 재치와 기지로서 현실로 실현시키는, 한 영웅의 일대기 가운데에서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보내게 되었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신라 · 백제 두 나라의 관계로 보아 이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부정하는 설이 있다. 가장 타당한 설은 익산(益山) 미륵사(彌勒寺)의 연기(緣起) 설화로서, 백제의 멸망 후 미륵사 승려들이 절을 구하고자 신라와 미륵사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지어낸 설화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하면 서동의 잠재적 갈망을 선화 공주란 상대편에 전가시킨 것이다. 따라서, 주객을 전도시킨 데 수사적인 특징이 있다. 한편으로는 국경을 뛰어넘고 신분의 귀천을 초월한 낭만적인 한 소년의 사랑이 이 노래에 응집되어 있으며, 그 꿈이 극단적인 장애없이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도 있으나, 이 노래에서는 동요적인 단순성은 발견해도 어떤 깊은 문학적 배경은 의식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설화의 내용에서처럼 한 영웅의 일대기가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으며, 서동이 고난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 설화의 공식적인 과정을 밟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서 영웅의 일생은 결혼에 의해서 성공의 실마리가 풀린다.
‣ 보충 학습
※ 배경 설화
제 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모친이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곳의 용과 교통(交通)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항상 마를 캐어 팔아서 생활을 하였으므로, 국인(國人)이 이에 의하여 이름을 지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서동은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서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에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얼어 두고 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라 하였다. 동요가 극간(極諫)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하였다. 장차 떠나려 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서 나와 맞이하며 시위(侍衛)하여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지는 모르나 우연히 믿고 기뻐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맞는 것을 알았다.
백제로 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어 생계를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공주가 “이것은 황금이나 가히 백 년의 부를 이룰 것이다.”하니, 서동은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곳에 흙과 같이 쌓아 놓았다.” 하였다. 공주가 듣고 크게 놀라 “그것은 천하의 지보(至寶)니 지금 그 소재를 알거든 그 보물을 가져다 부모님 궁전에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 고 하였다. 서동이 좋다 하여 금을 모아 구릉(丘陵)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 사자사(獅子寺)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옮길 방책이니 금을 가져오라 하였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에 갖다 두었다. 진평왕이 그 신비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중하며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 ‘서동요’에 나타난 민중의 신분 상승 의지
이 작품은 내용사응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왕의 딸로, 지고(至高)의 존재인 공주와 미천한 서동 간의 연애라는 설정 자체가 예사롭지 않는 것이다. 또한, 노래의 내용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그 안에는 이야기 전승자들의 신분 상승 욕구와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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