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전상국

■ 전체 줄거리
 강원도 산골의 눈 덮인 밤길을 함께 가게 된 낯선 두 사람은 어제 있었던 춘천 근화동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큰 키의 사내는 형사이고 작은 키의 사내는 살인 사건의 범인인 억구이다. 둘은 길을 걸으며 어릴 적의 체험담을 주고받는다. 큰 키의 사내는 중학교 2학년 때 전교생이 나무를 심으러 갔다가 새끼 토끼 한 마리를 붙잡은 일을 들려준다. 토끼를 해부한 다음 술안주로 삼을 것이라는 생물 선생의 말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빠져 나왔는데, 도덕적 규범 때문에 생물 선생님 집의 얕은 담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억구가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홉 살 때였다. 억구는 자신을 멸시하고 자존심을 짓밟은 득수의 장갑을 낀 손을 물어뜯어 살점이 드러나게 했고, 그 벌로 계모한테 붙들려 광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후로 그는 추위와 어둠의 공포를 강박 관념처럼 갖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동네의 천덕꾸러기로 따돌림당하던 억구는 6 · 25 전쟁 때 빨갱이로부터 감투를 얻어 쓰고 득수를 죽인다. 국군이 동네에 들어왔을 때 억구의 아버지는 득수 동생 득칠에게 죽음을 당하고, 억구는 도망친다. 억구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수십 년을 살다가 어제 득칠을 만나 춘천 근화동에서 죽이고 아버지 무덤에서 죽으려고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를 놓칠까 경계하던 큰 키의 사내는, 남의 담을 넘는다는 건 나쁜 짓이라며, 나쁜 놈이 되기 싫어 끝내 토끼를 구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담배 한 갑을 억구에게 건넨 다음 몸을 돌려 큰 길을 향해 걸어간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여로형소설
• 배경 : 시간적- 1960년대 어느 해 정월, 
        공간적 - 강원도 눈 덮인 어느 산골
• 시점 : 3인칭 관찰자 시점
• 성격 : 회고적, 사실적
• 제재 : 서로 다른 삶을 산 두 사람의 동행
• 주제 : 6 · 25 전쟁이 남긴 상흔과 인간적 연민
• 등장인물의 특징
 - 억구(작은 키의 사내) :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6.25 전쟁 때 빨갱이가 되어 득수를 죽였다. 이 일로 인해 득수의 동생 득칠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자, 얼마 전에 그 복수로 득칠이를 죽이고 아버지 무덤에서 자살하려고 귀향하고 있는 인물이다.
 - 형사(큰 키의 사내) : 나중에 억구의 정체를 알고 갈등을 겪는 형사. 그러나 토끼를 살리지 못했던 자신의 안타까운 과거를 회상하며 억구에게 인간의 연민을 느껴 그를 체포하지 않는다.
• 특징 :
 ① ‘떠남 - 돌아옴’의 여로형 구조를 띰.
 ②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의 중간에 과거의 사건을 삽입함.
 ③ 객관적 시점과 간결한 문체로 극적 효과를 높임.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살인범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가 서로의 신분을 감춘 채 어느 눈 내리는 산골의 고갯길을 동행하는 여로형 소설이다. 형사는 동행 중에 범인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가 지닌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 형사 또한 어린 시절 규범을 지키려다가 생명을 구하지 못했던 아픈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형사는 결국 범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를 놓아줌으로써 자신이 지닌 상처를 동시에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자 범인인 억구의 삶과 상처는 6 · 25 전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억구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살인을 하고 보복을 당하며 그 후 다시 보복 살인을 하고 쫓겨 다니는 인물로, 겉으로는 얼핏 가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상징하는 역사의 피해자이다. 작가는 이러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휴머니즘을 제시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196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반적인 전후 소설의 성격과 함께 인간의 내면 심리를 수준 높게 묘사하였다는 특징을 지닌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죄인인 억구와 그를 쫓는 형사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죄인 억구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사람이며, 전쟁으로 인해 비뚤어진 성격을 외부에 대한 폭력 행위로 발현시켜 살인범이 된 애처로운 운명의 소유자이다. 
 반면에 형사는 아무런 인연도 없이 죄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를 쫓지만, 의무감과 마음 깊은 곳의 도덕적 의식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의 토끼 사냥 체험은 그의 이러한 성격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죄인이 된 존재를 의무감에서 쫓는 형사가 그의 운명을 연민하고 마침내 그를 개인적으로 용서하게 되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여로(旅路)라는 형식과 고개 넘기라는 인물의 행동으로 형상화하여 밀도 있는 작품 수준을 보여 주었다. 흔히 전후 소설이 빠지기 쉬운 단순한 현실 묘사나 전쟁 비판의식을 넘어서, 전쟁을 통한 인간의 의식 성장 과정을 심도 있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윤희재 전공 국어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공간적 배경과 대립적 인물의 설정(지학사 자료실 참고)
 이 작품의 핵심적인 공간은 ‘구듬치 고개’이다. 이 고개를 향해 오르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다가 내리막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서서히 풀리면서 결말에 이른다. 이처럼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통해 구성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두 인물의 대립적인 구성은 더욱 치밀하게 짜여 있다. 억구가 쫓기는 범인이라면 키 큰 사내는 그를 쫓는 형사이다. 키가 작고, 춥고 험한 길을 나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 반면에 큰 키의 사내는 키가 크고,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억구가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저돌적이고 잔인한 성격이라면, 큰 키의 사내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고민하는 차분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조적인 두 인물을 같은 길 위에 놓음으로써 위기와 긴장감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구성상 안정감을 얻는 효과를 낳는다.


2. ‘동행’의 의미

 제목 ‘동행’은 단순히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우연한 동행을 의미하기보다는 분단 현실의 지평을 의미한다. 두 이물이 동행하는 여로에는 궁극적으로 분단 상황에 의해 삶이 뒤틀린 최억구의 현실과 그것의 과정 내에 포함된 제3자(형사)의 현실이 포개어져 있다. 작가는 6.25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억구를 통해 6.25 전쟁의 아픔을 사실적이고, 상세하게 고발한다. 또한 형사는 6.25 전쟁에 대한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두 사나이의 동행의 길은 물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분단 문제를 핵심으로 감싸 안은 채 흘러가는 역사적 현실의 상징적 모습이다. 이들은 과거에 풀지 못한 한과 상처가 있고 이 둘은 ‘동행’하게 됨으로써 이를 풀고 치유하는 동시에 제3자인 형사로 하여금 역사적 아픔과 한을 이해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동행’은 분단 현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이 휴머니즘임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동행’에서 ‘고갯길’의 상징적 의미

 이 작품은 두 인물이 등장하여 함께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고개를 넘는데, 고개를 넘은 과정에서 대화의 긴장도 가장 절정에 이른다. 이는 작가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상응하도록 배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범인과 형사인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감춘 채 구듬치 고개를 넘어 마을 어귀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걷는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인물들의 심리가 달라진다. 고갯길의 오르막에서는 범인인 억구가 끔찍한 과거를 고백하여 갈등이 고조되고, 내리막에서는 형사가 억구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인해 그를 용서하기로 한다. 따라서 고개를 넘는 행위는 갈등의 고조와 해소에 상응한다. 


4. 여로형 소설의 구조와 ‘동행’

 여로형 소설은 인물이 걷는 여정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소설을 의미한다. ‘동행’은 고갯길을 오르는 두 인물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로형 소설에 속하는데, 그 여정이 작품의 갈등 양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둘의 갈등이 고개를 오르는 과정에서 점차 고조되다가 고개를 내려오면서 서서히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효과적인 내용 전개에 기여하며 형식적인 안정성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 작가 소개

전상국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엮어 읽기

황석영, ‘삼포가는 길’
황순원, ‘학’

 

전상국 - 동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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