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 조지훈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요점 정리

성격 : 전통적, 주정적, 선적(禪的), 불교적, 율동적, 고전적

제재 : 승무

구성 :

1~3: 춤추는 찰나의 모습(도입)

4: 무대와 배경(전개1)

5~8: 춤의 동작(전개2)

9: 춤의 종료(결미)

특징 :

고전적 정서와 불교의 감각, 유장한 율조와 다듬어진 시어가 융합되어 전아(典雅)한 종교적 분위기를 빚어내고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춤을 추려고 하는 찰나의 모습과 춤의 완급의 변화와 율동을 작자 특유의 솜씨로 재현시켰다.

수미 상관의 구성

유장한 리듬

전아한 시어 사용

세속의 이미지와 천상의 이미지의 대립

유음 사용 : 부드러운 느낌

언어의 조탁 : ‘하이얀’, ‘감추오고’, ‘살포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 묘사 중심의 서술, 유장한 가락

주제 : 인간 번뇌의 종교적 승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33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발표된 작품인데, 승무라는 불교적 춤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이겨내려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고전적 소재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한국적 정조를 되살려낸 시로, 세속을 떠난 젊은 여인의 삶의 고뇌와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3연은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이다. 고깔의 아름다움(1)과 고깔을 쓴 머리의 모습, 고깔을 쓴 여승의 애련한 볼의 모습(3)이 차례대로 드러난다. 춤추기 직전의 정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나빌레라, 파르라니, 감추오고' 등의 표현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교묘히 살린 것으로, 시의 고전적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얇은 비단으로 만든 하얀 고깔의 곱게 접힌 모습이 너무 고와 한 마리의 나비라고 해야 옳은 것 같다. 파르스름한 윤기가 감도는 깎은 머리를 고깔에 감춘 여승의 상기된 양볼은 너무 아름다워 도리어 서러운 느낌을 준다.

4연은 무대 배경이다. 텅 빈 무대에서는 황촉불이 소리 없이 타고 오동나무 잎새가 떨어질 때마다 달빛이 가리워지는 은은한 달밤이다. 번뇌의 인간을 해탈시키기 위한 적절한 무대 공간의 배치이다.

5연에 들어서면 여태까지의 정적인 묘사가 동적으로 바뀌며, 비교적 빠른 박자로 진행되는 춤의 율동미가 날렵하고도 경쾌한 동작으로 묘사된다. 하늘의 공간까지 펼쳐지는 팔의 동작과 사뿐이 돌아가며 외씨 버선이 얼핏 보이는 발의 동작이 나타난다.

6연은 춤의 동작이면서도 거의 정지한 순간의 장면이다. '별빛'은 종교적인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는 단순한 춤의 동작을 넘어선 종교적 명상의 자세인 것이다.

7연의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구절 속에 주제가 있다. '복사꽃 고운 뺨'이라는 관능적인 모습이 '별빛'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부분이다.

8연은 춤이 끝날 즈음의 느린 가락에 맞춘 완만한 춤의 동작을 묘사하고 있다. '거룩한 합장'은 승무가 단순한 춤이 아닌 구도의 자세임을 나타내 보인다. 정한(情恨)과 번뇌를 눈물로 분출한 뒤에 오는 고요와 안정감을 표현하는 정리 단계의 춤의 모습이다. 그것은 마음이 잠잠해진 뒤 가슴으로 모아지는 합장(合掌)이다.

9연은 춤이 끝난 뒤의 정적감을 표현한 것으로 귀뚜라미만이 울어대는 한밤의 고요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마음 속 저편에는 아직도 귀또리의 울음으로 정한이 남아 있고 번뇌는 단칼에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비와 같구나'로 새로운 고행(苦行)을 출발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2

이 시는 <문장>에 추천되어 발표되었다가 후에 <청록집>(1946)에 재수록된 작품으로 조지훈의 초기의 시 세계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표작이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깊은 가을 달밤에 산사에 촛불을 밝히고 승무를 추고 있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 모습은 속세에서 느끼는 모든 번뇌를 초월하여 높은 곳을 지향하는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 번뇌를 종교적으로 초월하는 승화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장면은 이승(尼僧-비구니)의 춤 광경이다. 배경은 고적한 밤, 황촉불과 고즈넉이 타는 빈 무대에서의 춤사위는 신비감과 동양적 아름다움을 전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춤사위는 춤을 위한 동작이 아니다. 세사에 찌들린 번뇌. 그 고뇌의 끝에서 그것을 초극(超克)하려는 강렬한 기구(祈求)의 몸짓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춤사위는 우아함 저편에 인간적 고뇌가 짙게 깔려 있다. 즉 황홀한 춤사위 안에 젖어 든 여인의 상처를 감지하는 것이다.

감추어진 아픔. 그것을 우리는 한()이라 부른다. 한국인에게 한의 정서는 뿌리 박힌 민족 정서이다. 그러한 한의 정체는 버림받음이다.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는 수동적, 타율적 속성의 것이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이었든 연인과의 아픈 이별이었든 상실감에 기초하는 감정이다. 독자는 이런 한의 정서에 동감하며 그러한 세계에서 내면적으로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애절한 기도를 엿듣게 된다.

슬픈 여인의 눈물에서 발견되는 비극적 아름다움, 인간에게 비극적 아름다움만큼 미감(美感)을 자아내는 것도 드물다. 비극의 시대가 갔다고는 해도 여전히 우리의 은밀한 가슴 속에 내려 앉은 비극 체험은 순수한 아름다움의 미감을 자극한다.

인간은 어쩌면 숙명적으로 이런 비극 체험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비감의 주인공이 바로 이승(尼僧)이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분명 순수함과 아울러 관능적 미감도 자아낸다.

또한 불교적 소재의 차용은 한국의 전통적 문화 습속에서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전통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전통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불교라는 종교만이 아니라, 달밤이 주는 애상감, 복사꽃의 색채 심상, 다소곳한 여인의 자태, 한의 아픔 등과도 연관되어 있음도 물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뇌를 안고 산다. 그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누구나 해탈을 염원한다. 해탈 후의 느긋한 평화를 꿈꾸어서가 아니라 아픔 현실의 무게를 들어보자는 간절한 심정에서 그렇다. 이승(尼僧)의 해탈의 염원은 바로 이런 면에서 독자를 동감의 세계로 몰고 간다.

이 작품은 시적인 의장(장치)에서도 고전적 분위기와 순수 미감, 한국적 유장함, 선미(禪味)를 한껏 높이고 있다.

'나빌레라'의 예스럽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말은 이승(尼僧)의 아름다움을 고양시키고, 음보율의 변화는 시상 전개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시의 의미와 적극적인 조화를 이루어낸다. 수미상관(首尾相關) 기법을 통한 감동의 재인식과 응결, 빛의 상징적 의미로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상화하는 기법 등은 이 시를 그야말로 절창(絶唱)이게 한다.

 

시의 구조

이 시는 양방 구조(兩方構造)로 되어 있다. '하늘'의 세계를 향하는 상방 구조(上方構造)''의 세계로 향하는 하방 구조(下方構造)가 그것이다. 하늘은 해탈의 세계이며 땅은 세속이다. 지상에서의 세상사는 번뇌로 표현되는 상실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주를 이룬다. 지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때. 인간이 안식의 공간으로 설정할 곳은 천상이다. 천상은 물론 추상적 세계이다. 지상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천상인 만큼 그 곳은 구체적 세계가 아니라, 번뇌가 없는 곳으로 설정된다. 지상에서의 세속사에 지치면 지칠수록 하늘을 향한 염원의 크기는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천상의 추상 공간을 화자는 '별빛'으로 상징했다. 이 때의 별은 천체로서의 구체적인 별이 아니라, 번뇌가 없는 해탈의 공간을 상징한 사물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 별빛에 합일하여 상호 교감할 때, 별빛의 내면적 확립이 가능해질 것은 자명하다.

위 시의 구조를 살펴보면, 여승은 아직도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춤을 추고 있는 한 세사는 여전히 고통으로 남는다. 이 고통을 잊으려는 것이 승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여승은 속세와 해탈의 경계면에 위치하며, 그렇기 때문에 고뇌와 염원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자는 그러한 여승의 번뇌를 읽고 있지만, 화자에게 다가오는 승무의 모습은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자는 이 여승의 외형적 모습(비극적 모습)에 매료됨과 동시에 그의 고뇌에도 아픔을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상의 전개

여승의 첫인상

(1)

여승의 외모

(2, 3)

, 공간적 배경

(4)

 

 

 

계속되는 승무

(9)

 

 

 

승무의 춤동작

(5: )

 

 

 

승무의 춤동작

(8: )

여승의 눈물

(7: )

여승의 시선

(6: )

 

승무의 창작 과정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입적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曲折)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靜止)하는 찰나의 명상(冥想)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官能)의 샘솟는 노출( 복사꽃 고운 뺨)을 정화(淨化)(별빛)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翹翹)한 달빛과 동 터 오는 빛으로써 끝맺을 것.

이것이 그 때의 플랜(계획)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데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長衫)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 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요약하고 말았다.

조지훈 <나의 시 나의 시론>

 

조지훈(趙芝薰, 1920.12.31968.5.17)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 본명 동탁(東卓).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惠化專門)을 졸업하였다. 1939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봉황수(鳳凰愁)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시집으로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 역사(歷史) 앞에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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