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정지용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요점 정리

성격 : 향토적, 감각적, 묘사적

제재 : 고향에서의 추억

주제 : 고향에 대한 그리움

특징 : - 선명하고 세련된 이미지들을 활용하고 있으며, 대상을 감각적으로 묘사함.

- 일정한 후렴구를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시의 전체 구조에 안정감을 줌.

- 토속적 소재와 향토적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시어들을 사용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정지용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으로, 평화롭고 다정했던 어린 시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와 비유적 표현을 통해 생생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백이 황소가 울음을 우는 한적한 벌판의 모습을, 2연에서는 시선이 방 안으로 이동하면서 질화로가 식어 가면서 짚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는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추억하고 있다. 3연에서는 어린 시절 파아란 하늘빛을 꿈꾸던 순수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4연에서는 다시 벌판으로 이동하면서 구김살 없는 어린 누이와 사철 발 벗은 아내를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가난한 고향 집과 그 곳에서 화목하게 살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는 각 연의 마지막에 후렴구를 삽입하여 시상을 정리하고, 화자의 정서를 집약하고 있다.

 

보충 학습

후렴구의 기능

이 시는 각 연의 마지막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후렴구를 배치함으로써 각 연의 시상을 매듭지어 연과 연의 관계를 구별하고, 시 전체에 안정적인 통일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또한 동일한 구절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며, 고향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을 심화시키고 있다.

 

각 연에 담긴 고향의 모습

중심 소재

고향의 모습

1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고향 마을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

2

질화로, 아버지

겨울밤 풍경과 늙으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

3

파아란 하늘

아름다운 꿈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화자의 유년 시절 회상

4

어린 누이, 아내

어린 누이와 소박한 시골 아낙네인 아내에 대한 회상

5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고향 마을의 단란한 가족의 모습 회상

 

감각적 심상이 사용된 표현과 그 효과

감각

구절

시각

1

얼룩백이 황소

2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3

파아란 하늘 빛

4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5

성근 별,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청각

1

실개천

5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도란도란거리는

촉각

4

따가운 햇살

공감각

1

금빛 게으른 울음

2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소재를 참신한 비유를 통해 감걱적으로 제시함

* 독특한 느낌을 줌

* 감각적 이미지가 지닌 서정성을 극대화함

* 고향에 대한 정서적 환기력을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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