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에 서서 - 신석정

들길에 서서 신석정(2007년 수능 기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화자가 자신과 동일시 하는 존재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이상과 희망을 상징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직유법

푸른 산처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삶의 숭고함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현실 속에서의 자신 젊은 패기굳센 의지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굳센 의지와 긍정적인 삶의 자세

연약하지만 굳은 의지로 삶을 살아가려는 자세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절망하지 않는 굳센 의지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억압과 고통의 현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

고단한 현실에서도 밝은 미래를 그리며 슬픔을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이상추구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


‣ 요점 정리

어조 의지적 어조

제재 

특징 :

① 직설적 표현이 주류를 이룸

② 대립적 이미지를 지닌 두 세계를 대조시켜 주제를 강조함

주제 희망과 이상을 잃지 않는 굳센 삶의 의지와 이상추구

출전: <문장> 5, 1939.6

 

‣ 이해와 감상

 1930년대는 우리 민족에게는 무척이나 암담한 시대였다일제의 경제적인 수탈과 착취 민족정신의 말살정책 등이 점점 심해지던 시대였다그런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 시의 시적 화자는 그렇지 않다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화자의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적 화자는 우선 과 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푸른 하늘을 이고 살아가듯 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한마디로 시적화자는 에서 삶의 자세를 깨달은 것이다그 결과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에 만족을 하고나아가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고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그러기에 그는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별을 바라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여기서 저문 들길이 암담한 사대 현실이라면 푸른 별을 바라보자는 것은 희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라 할 수 있다.

 

‣ 보충 학습

1. 자연물과 화자의 관계

푸른 산 화자는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푸른산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다.

푸른 하늘 산이 하늘을 향해 솟는 것처럼 화자는 밝은 미래를 지향하려고 한다.

저문 들길 : ‘저문은 어둡고 절망적인 상태를 연상시키는 시어로, ‘저문 들길은 결국 화자를 둘러싼 암울하고 어두운 사회상황을 가리킨다.

푸른 별 화자가 항시 바라보려고 하는 것으로, ‘저문 들길과 대립함을 이루는 밝은 희망을 뜻한다.

 

2. 자연물을 통한 인생의 교훈

우리는 자연물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이황의 <도산십이곡>에도 청산물을 통해 변함없는 학문추구의 자세를 배우고 있다이 시도 마찬가지다들길에 서서는 산에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의지를 배우고 있다두 시 모두 시적 화자가 자신의 지속적인 가치의 추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고 살자는 태도로 <도산십이곡>에서의 어려운 학문세계를 중도에 포기하지 말자는 태도가 그것이다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함없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시이다.

 

3. 도출되는 연습문제

1. 이 시에서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중심 시어는 무엇인가.

☞ 

 

2. 이 시의 소재들 중에서 ''은 '하늘', ''과 그 함축적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그 차이를 서술하라.

☞ ''은 현실의 세계, '하늘'과 ''은 이상의 세계 혹은 초월의 세계를 표상한다.

 

3. 이 시에서 화자의 삶의 자세가 직설적으로 표출된 시구 둘을 찾아 쓰라.

☞ 숭고한 일기쁜 일

 

4. 이 시의 이미지가 지닌 구조적인 대응 관계를 찾아 35자 정도로 설명하라.

☞ 이 시에서 산과 구름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는 수직 구조를 지니고 있다이러한 수직 구조는인간이 직립하여 설 수 있는 것을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지니고 사는 것으로 보는 것과 대응된다.

 

5. 이 시의 화자가 지향하는 삶은 어떠한 것인지 20자 내외로 쓰라.

☞ 굳건한 삶의 의지로 이상을 추구하는 삶.

 

신석정(辛夕汀, 1907.7.7 - 1974.7.6)

전라북도 부안(扶安출생본명 석정(錫正).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약 1년간 불전(佛典)을 연구하였다. 1931년 시문학》 3호부터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화그해에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계속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8 ·15광복 후에는 시작(詩作)과 후진양성에 전념했고저서로는 초기의 주옥 같은 전원시가 주류를 이룬 제1시집 촛불(1939)역시 8 ·15광복 전의 작품을 묶은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1947), 그 뒤 계속 빙하(氷河)》 《산의 서곡(序曲)》 《대바람 소리》 등의 시집을 간행했다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참고

신석정의 시세계

파밭을 지나고 사철나무 울타리를 넘어 기와 지붕을 얹은 낡은 집 한 채가 현대식 양옥을 뒤편에 배경으로 거느리고 서 있다카메라 파인더 속에 잡히는 그 집은 아무리 구도를 애써서 조절해도 낭만적인 시인의 옛집으로 들어오진 않는다아무래도 낡은 옛집을 압도할 듯 서 있는 양옥 때문이다이리저리 렌즈 방향을 옮기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한 사내의 심상치 않은 고함소리가 들린다. "왜 함부로 남의 집을 찍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백배사죄한 뒤 주변을 둘러보니 이 집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84호 신석정(辛錫正고택(古宅)임을 알리는 안내판조차 일찌감치 뽑혀서 저만치 팽개쳐져 있다문인 협회에서 현대문학 표징 사업의 일환으로 박아 놓은 화강암 돌덩어리는 차마 어쩌지 못했는지 무성한 잡풀 속에 외롭게 앉아 있다네모 반듯한 화강암 윗면에 새겨진 이 집의 사연이 집은 <시문학동인 및 전원시인으로 우리 나라 서정시의 큰 맥을 이룬 신석정(辛夕汀)(본명 석정(錫正), 19071974)선생께서 시집 [촛불], [슬픈 목가(牧歌)] 등 대표작을 쓴 집필 산실이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우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중에서

 

전원적인 목가풍의 시로 30년대 시단에 우뚝 솟았던 신석정 시인그는 26세 때 이곳 전북 부안읍 선은리에 초가집을 지어 정원에는 은행벽오동목련산수유철쭉시누대등나무 등을 심어 놓고[청구원(靑丘園)]이라 명명한 뒤 주옥같은 시편들을 쏟아 냈다식민지 치하의 암울한 현실에서 전원에 의탁해 나름의 울분을 삭이며 저항을 모색했던 시인의 땀과 회한이 배어든 현장이다시인은 그러나 덧없이 흐른 세월 속에서경쟁력만을 앞세운 채 정신적 유산은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후대의 빈곤한 문화 정책 속에서 이토록 쓸쓸하게 홀대받고 있었다.

 

부안읍 동종리에서 한학자 집안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신석정은 초등학교 때 수업료를 안낸 학생을 벌주는 일본인 교사에 항의하는 운동을 주도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정의감이 강했다이 때문에 무기정학까지 당했다가 간신히 졸업을 한 그는 한학 공부와 초등학교 수학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독서 편력은 넓고 깊었다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일찌감치 고향에서 결혼하고 지역 청년들과 더불어 동인지를 내면서 문학 수업을 했다그 동안 틈틈이 중앙의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필명으로 투고도 한다. 1930년에는 서울에 올라와 조선 불교 중앙 강원에서 공부했지만 자연귀의적 정서에 젖어 있던 시인은 서울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향과 전주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낙향하던 해인 1931년 신석정은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이후 1974년 작고하기까지 40여년 동안 첫시집 [촛불](1939) 이후 [슬픈 목가(牧歌)](1947), [빙하(氷河)](1956), [()의 서곡(序曲)], (1967), [대바람 소리](1970)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낙향한 뒤 그의 생활은 청빈한 도연명의 생활을 연상시키는 일면이 있다김기림은 그를 두고 "현대문명의 잡답을 멀리 피난한 곳에 한 개의 에덴을 음모하는 목가 시인"이라고 평했다김기림이 '동경한다'는 표현 대신 '음모한다'는 수사를 동원한 까닭은 신석정이 현실도피의 시인이 아니라 전원 속에서 나름-의 울분을 자연으로 포장했음을 에둘러서 지적하려는 의도였다고 후대의 연구자들은 분석하기도 한다신석정은 1940년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라는 작품을 <문장(文章)>()에 보냈다가 검열에 걸려 원고가 되돌아오자 8.15 해방까지 붓을 꺾었다.

 

성근 대숲이 하늘보다 맑아

대잎마다 젖어드는 햇볕이 분수처럼 사뭇 푸르고

 

아라사의 숲에서 인도에서

조선의 하늘에서 알라스카에서

찬란하게도 슬픈 노래를 배워낸 바람이 대숲에 돌아들어

돌아드는 바람에 슬픈 바람에 나는 젖어 온 몸이 젖어

 

―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중에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들의 애타는 호흡이 바람을 타고 시인의 초가집에까지 날아오고시인은 청죽 하나를 가슴 깊이 심어 두고 식민지의 어둠을 헤쳐 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잡히는 시편이다.신석정의 시작(詩作전반기가 6.25를 기점으로한 이른바 [청구원(靑丘園시대]라면 중.후반기는 전주의 [비사벌초사 시대]로 일컬어진다. 6.25를 만나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던 시인은 부안 지역에서 인망이 높은 인물로 지목돼 인민군 치하에서 불행하게도 억지춘양의 감투를 쓴다식민지의 고난에서 벗어나자마자 닥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이 시인에게 두고두고 멍에를 지우게 된다그는 이후 고향인 부안을 떠나 전주로 거처를 옮기고 죽을 때까지 고향을 떠나 살았다.

 

석양녘의 들판을 다시 가로질러 어두워지는 가을 저녁에 찾아 든 전주시 남노송동 175의 25번지 비사벌초사 또한 이미 남의 집이었다주택가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한옥의 대문을 열고 들어선 40평 남짓한 작은 정원에는 그러나 시인의 체취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2년 전에 이사왔다는 집주인 김남용(金南容(46, 전주 중앙초등학교 교사)는 청구원(靑丘園)의 주인과는 달리 시인에 대한 사려 깊은 애정으로 방문객을 환대한다어둑신한 정원에 불을 밝히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수목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다호랑가시나무태산목백목련후박나무메타세피아동백모과나무,사철나무라일락남자나무청목팔손이나무산수유주목모란철쭉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그 속에 시심의 뿌리를 내렸던 시인은 답답한 도심에서도 이처럼 마음의 창문 하나를 마련했던 것이다그는 이곳에서 시누대의 대바람소리를 들으며 날아드는 온갖 새들의 노래를 벗삼기도 하고 태산목에 꽃이 피면 정다운 사람들을 불러 그 꽃잎에 술을 부어 마시면서 한없이 호기로운 이야기로 시간을 잊었다.

 

그는 병상에서도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불러 주면 이를 받아쓰도록 하여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도 시를 지었다시인은 와병 중에도 "내가 죽거든 무덤 앞에 태산목(泰山木)을 심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청정한 자연에 의탁해 인간사를 노래한 이 시인의 서정적인 시편들은 여러 작곡가들이 - [임께서 부르시면](김재근한만섭 작곡), [산수도](임종길), [작은 풍경](정회갑), [네 눈망울에서는](정회갑등의 노래로 되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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