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 김영랑

 이 작품은

2014년 EBS 수능 완성 B형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EBS 수능 완성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 교재입니다.


오월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요점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묘사적, 서경적, 탐미적, 낭만적, 유미적, 역동적

특징 :

맑고 투명한 서정성이 강조됨

시선의 이동에 의해 시상이 전개됨(들길마을바람햇빛보리꾀꼬리산봉우리)

남도 지방의 토속어에서 느껴지는 향토적 색채가 드러남

사물의 의인화가 두드러짐

섬세한 시어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제시함

역동적 이미지를 통해 봄의 생동감을 강조함

 

시상의 흐름

1~2: 봄이 가득한 마을과 들길의 정경(들길과 마을 길의 대비)

3~5: 바람부는 모습과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의 모습(바람 부는 오월의 들판)

6~11: 꾀꼬리의 정겨운 모습과 산봉우리의 자태

 

시어 및 시구 풀이

- 들길은 마을에 들자 ~ 푸르러졌다. : 붉음과 푸름이라는 색채의 대비가 드러난다. 이를 통해 붉은 꽃이 핀 마을길과 푸른 들길의 모습을 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결국 오월의 생동감을 강조한다.

-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 보리가 막 패기 시작하는 모습을 마치 시골 처녀의 속살인 듯 표현하여 봄의 건강함과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을 드러낸다.(의인화)

-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 꾀꼬리는 푸른 들판, 수양버들과 색채의 대조를 이루며 암수가 늘 짝을 이루고 다니기에 다정한 연인에 비유된다.

-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 산봉우리야, : 고운 물감으로 채색한 산봉우리는 곱게 단장하고 교태를 부리는 새색시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이를 찾아 떠날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음

- 오늘 밤 넌 어디로 가 버리련? : 화자의 감정이 표출된 부분으로,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밤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숨어 있음.

 

주제 : 오월에 느끼는 생명의 약동감(오월의 아름다운 자연)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오월의 들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 봄 들판을 자아는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가 인식하는 들판은 밝고 생기가 넘친다. 봄날의 온갖 자연 현상이 주는 생명감이 시 전편에 넘쳐 흐른다. 불과 11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가 이처럼 활기로 가득찬 분위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역동적인 심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로 푸르러 가는 보리밭 위로 햇살이 가득하다. 햇살 환한 들판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그 바람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듯 보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바람에 보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이 시에서는 신비감과 매혹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막 패어나는 보리의 모습을 그는 성숙한 여인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넘실대는 바람과 햇살 속에서 시적 자아가 발견한 관능적인 아름다움은 꾀꼬리로 이어진다. 오월의 대지가 시적 자아에게 전해주는 생명의약동감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소재가 꾀꼬리다. 푸른 보리밭과 투명한 햇살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날고 있는 꾀꼬리의 움직임 속에서 시적 자아는 허리통이 환기시켜 주는 관능미와 약동하는 생명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김영랑의 주된 장기인 음악성을 통한 시 구성법이 아니라, 회화성을 강조한 시풍이 이채롭다. 그렇다고 시문학파 고유의 음악성에의 경도, 섬세하고 뛰어난 언어의 조탁 등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독 보기 드물 게 회화적 이미지가 앞서 구사되고 있다는 말이다. 붉음과 푸름의 대비를 통해 5월의 한낮에 느끼는 생명의 약동감을 감각적으로 잘 마무르고 있다.

 

보충 학습

영랑의 시에서의 '눈물', '슬픔'의 의미

영랑의 시에서는 '슬픔'이나 '눈물'이라는 용어가 자주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용어들이 나타내는 비애 의식은 그 이전의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있을 뿐만 아니라. 면면한 정조의 율조로 극복되어 있다. 이런 비애 의식은 그의 초기시에 나타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내와 사별했는데, <쓸쓸한 뫼 앞에>에서와 같이 그는 여기서 '죽음'이나 '무덤'을 알 게 된다. 그러나 죽은 아내가 다시 화한 것 같은 '시악시''색시'의 모습은 한국적인 촌리의 그것처럼 소박하고 티없이 맑다. 즉 영랑의 슬픔이나 눈물, 그리움은 모두가 전통 시가나 민요 속에 이어져 온 정한과 율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요를 좋아했고, 민요에 일가견을 가졌던 영랑의 정서와도 관련이 있다.

 

순수시

작품에서 비시적(非詩的)인 불순한 요소를 제거, 순수하게 시적인 차원을 개척하고자 한 시로 그 지향이 절대적인 차원에 도달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 절대시(絶對詩)라고도 한다. 순수시는 1850년에 미국 시인 포우가 발표한 평론 시의 원리에 자극받아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발전시킨 시의 이론이다. 시에는 웅변, 교훈, 관념 등 산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체의 요소를 제거하고, 음악처럼 언어적 의미와 관계없는 효과를 내어야만 진정한 시, 즉 순수한 시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시단에 나타난 시문학파의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등이 순수시를 지향했다

 

김영랑

김영랑(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강진 보통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휘문 의숙을 다니다가 3 1운동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일로 휘문 의숙을 중퇴한 김영랑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강진의 자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진에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영랑에게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찾아와 시 전문지를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박용철은 오랜 숙의 끝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 창간호를 1930년에 발간하게 된다.

 

1930년은 김영랑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해 3월에 간행된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1930년 두 달 동안에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쓰여진 경향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 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김영랑의 시에는 '내 마음'이라는 어휘가 유달리 많이 보이는데 그가 이 말을 많이 사용한 것은 내면의 순결성을 표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직접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그의 초기 시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은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것들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 제시된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은빛의 강물, [제야]에 제시된 맑은 샘물과 밤의 심상, [가늘한 내음]에 제시된 보랏빛 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아실 이]에 나오는 향맑은 옥돌의 심상 등은 모두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김영랑 서정시의 출발은 바로 이 순결성에 있었다. 이 순결성이 그의 시를 아름다운 해조와 서정주의의 극치로 몰아간 것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대응되므로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순결성은 꽃가지의 은은한 그늘이나 봄날의 미미한 아지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통해 마음의 순결성을 보여 주었는데, 자연의 정결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자연을 통한 순결성의 추구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자연은 현실과 대립적 위상에 놓이게 된다. 현실은 고통과 비애가 교차되는 장소로 인식되는 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은 이 모든 현실적인 것을 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많은 시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이 가져다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은 그의 정신을 몽롱케 할 정도로 황홀감을 안겨 준다. 저녁놀이 물드는 보랏빛 하늘, 밤 깊이 흐르는 물소리와 찬란한 별떨기, 은색으로 황홀히 빛나는 달빛, 맑은 가을날의 고요한 정경, 이 모든 것이 자연미의 한 정점을 보인 것이어서 시인은 그 황홀감에 가슴 설레며 몸둘 바 몰라 한다.

 

그런데 이 황홀한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모란이 한번 흐드러지게 피어 그 찬란한 빛을 불태웠다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쉽게 소멸하는지 모른다. 자연의 순결성도 현실 세계의 혼탁함 때문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영랑의 자연 인식은 비극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 비극성이 그의 심혼을 긴장시키고 그의 서정시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비탄과 상실의 감정이 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뚝뚝'이라는 시어를 통해 모란이 무정히 사라져 버리는 정경을 소리로 나타내는가 하면,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라는 시행을 통해 처절한 상실의 순간과 상실 뒤에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백예순 날을 계속 울고 지낸다는 과정적 표현을 배치하여 그리움의 정도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으로 영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시인 자신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장단과 호응을 이루며 하나의 정경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오롯한 미의 원광을 두르게 된다. 가령 영랑의 [오월] 같은 시는 봄 들판의 약동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인데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여 심미감을 높이고 운율의 변화를 통하여 흥겨운 율동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서정적 표현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시의 역사에서 귀중히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표현 상의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김영랑의 시에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중심을 이룬 작품은 아주 적다. 현실에 대한 반응을 보인 예로는 [거문고]라든가, [독을 차고], [우감(偶感)], [춘향] 등의 작품을 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김영랑의 시가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앞에서 말한 [오월]처럼 자연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일관한 작품은 그런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숭원 / 1955년생, 서울대 국문과졸, 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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