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情念)의 기(旗) - 김남조

1. 본문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견디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이제금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종교적, 기원적

• 어조 : 고독, 고뇌, 비애를 극복하려는 기원적 어조

• 제재 : 기(旗)

• 주제 : 순수하고 평온한 삶에 대한 동경과 기원

• 특징 : 

 ① 직유법, 상징법을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② ‘기(旗)’에 화자의 마음을 빗대어 혼란이 아닌 안정되고 순수한 삶을 기원하고 있다.
 ③ 시행을 자유롭게 배열하면서도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 구성 :

 1연 : 고독과 번뇌를 느끼는 화자
 2연 : 마음의 혼란을 느끼는 화자
 3연 : 눈길을 보며 느끼는 마음의 평화
 4연 : 경건한 삶에 대한 소망
 5연 : 순수한 삶에 대한 동경
 6연 : 고독한 정념
 7연 : 경건한 삶에 대한 의지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인간의 고독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고 평화로운 삶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는 시이다. 화자의 마음을 정념(情念)의 깃발에 빗대어 화자의 고뇌를 드러내고 있으며, 경건한 어조를 통해 화자가 바라는 삶에 대한 염원을 진실하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시는 마음 속에 움직이는 갈등, 번민을 넘어서서 영혼의 순수함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의 마음을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비유하여, 간절한 소망과 기도의 자세를 가시적(可視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상의 주축이 되는 부분은 ‘스스로의/혼란과 열기’라는 시구와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그 일’이라는 시구이다. 전자가 인간 존재의 욕망, 번민, 갈등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것들을 고요하게 다스리고 고요한 내면 세계의 평화를 성취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마음을 은유하여 표현한 기(旗)는 바로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전자의 요소들을 극복하고 후자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노래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일반적인 연가(戀歌)의 임과 달리 모든 열정으로부터 초탈한 마음을 지닌 벗이다. 즉, 열정을 초월하고, 무거운 비애조차도 잔잔하게 다스려서 '맑게 가라앉은/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 에까지 도달한 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가 곧 이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현대시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정념(情念)의 기’의 의미(천재교육 참고)

 ‘정념의 기’는 사랑이나 그리움을 동경하는 마음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깃발처럼 흔들리며 방황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깃발은 나부끼는 것으로 인식된다. 정념(情念), 즉 마음이 진중히 자리잡지 않고 현실적인 고뇌 속에서 깃발이 흔들리듯 갈등을 겪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시는 차근차근 나직하게 읊조리지만, 반면에‘깃발’은 깃대에 매달린 채 바람에 맹렬히 흔들린다. 그만큼 치열하게 이상향을 향해 몸부림을 하는 모습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전해 오는 내적 울림은 거의 정적이고 내밀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시인이 시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리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2. ‘정념의 기’의 리듬감(천재교육 참고)

 이 시는 한 행을 ‘3음보’ 내지 ‘4음보’를 기준으로 하고, 이를 변주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3음보 내지 4음보는 우리 시의 전통적 율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행을 1음보나 2음보로 변형시키는 등 의미의 경중에 따라 자유롭게 배열하면서도 유연한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3. 작가와 ‘정념(情念)의 기(旗)’(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작자의 시세계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시는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목숨』(1953),『나아드의 향유』(1955),『나무와 바람』(1958)이 있다. 중기시는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생명력을 확산하는 시기로, 『정념의 기』(1960),『풍림의 음악』(1963),『겨울바다』(1967) 등이 있다. 후기시는 『바람세례』를 기점으로 하는 작품들로,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주제가 되고 있다.
 『정념의 기』는 작자의 중기시에 해당하는 시집이다. 이 시기에 작자는 사랑의 정념과 관능, 외로움과 갈망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정념의 기」에서 작자는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라고 고백함으로써, 이 시집의 주류가 되는 사랑을 향한 갈망과 고뇌를 표출한다. 「너에게」, 「후조(候鳥)」, 「마지막 장미」 등에도 사랑의 갈망과 고뇌가 잘 드러난다.

 

6. 작가 소개

김남조 – 두산백과

 

김남조

사랑의 시학을 노래한 시인.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랑과 인생을 섬세한 언어로 형상화해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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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엮어 읽기

김남조 – 겨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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