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최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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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주요 부분
  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지금 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넉넉한 뱃길에 여태껏 알아보지 못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었던 게 틀림없다. 큰일 날 뻔했다. 큰 새, 작은 새는 좋아서 미칠 듯이, 물속에 가라앉을 듯, 탁 스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되돌아오면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을 이기고 온, 못 잊을 고운 각시들이, 손짓해 부른다. 내 딸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옛날, 어느 벌판에서 겪은 신 내림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자, 언젠가 전에, 이렇게 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 벌판을 지금처럼 떠올린 일이, 그리고 딸을 부르던 일이, 이렇게 마음이 놓이던 일이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

■ 전체 줄거리
 이명준은 대학 철학과 학생으로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다. 그는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편협하게만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 살면서 대남 방송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빌미로 이명준은 경찰서에 불려가 구타를 당하면서 아버지와 현재 어떤 연락이 있는가 조사를 당한다. 형사들은 그를 빨갱이로 몰아붙인다. 이를 계기로 그는 남한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월북한다. 그러나 이명준의 비판적 눈에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 제도의 굳어진 공식인 명령과 복종만이 보일 뿐이며, 활기차고 정의로운 삶은 찾을 수가 없었다. 즉, 진정한 삶의 광장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명준은 남과 북에서 이념의 선택을 시도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일종의 허무주의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명준은 은혜와의 사랑에서 이념의 무의미함을 다소나마 보상받지만, 그것은 개인적 삶의 한정된 행복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의 광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전쟁에 뛰어들지만 거기에서도 새로운 삶을 발견하지 못한다. 포로가 된 그는 포로 송환 과정에서 남이냐 북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을 맞게 되지만 중립국을 택한다.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을 싣고 가는 인도의 상선 타고르 호가 남지나해를 항해하는 어느 날 밤, 그는 바다에 투신자살한다.

 

■ 핵심 정리

• 갈래 : 사회 소설, 분단 소설, 지식인 소설
• 배경 : 인도양으로 향하는 타고르 호 위에서의 이틀간, 
         회상은 8 · 15 광복에서 6 · 25 전쟁 종전 사이의 남한과 북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관념적, 철학적
• 주제 : 분단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 특징 :
 ① 당시에는 금기시되어 왔던 남북한의 대립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파헤친 관념 경향이 짙음
 ②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임
 ③ 철학, 사회학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됨
 ④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 수법이 쓰임.
• 의의 : 6.25 전쟁 이후 냉전 시기의 북한 체제 비판 일변도의 문학에서 최초로 남과 북의 체제를 동시에 비판한 작품으로 두 체제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작품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전쟁에 대해 다소 거리를 두고 전쟁과 분단의 의미를 냉정하게 점검한 것으로서, 남과 북을 오가면서 진실한 삶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을 기울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역사와 민족의 문제 그리고 진정한 인간적 삶의 방향 등에 대한 문학적 모색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북쪽의 사회 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 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남과 북 어느 쪽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두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가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하는 상실감의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주인공의 자살을 통해 이념 선택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읽을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까지의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남과 북을 오가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역사와 민족의 문제, 그리고 진정한 인간적 삶의 방향 등에 대한 모색을 그리고 있다. 소설 작품임에도 분단과 이념 갈등, 개인과 사회의 이상적 관계, 사랑을 통한 인간 구원의 문제 등 묵직하고 심오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관념적인 독백, 철학적인 논쟁, 추상적인 사색 등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남과 북 그 어디도 진정한 인가의 삶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제3국을 선택하지만, 끝내 바다에 투신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이념 갈등 속에서 결국 좌절하고 마는 한 지식인의 비극으로, 이를 통해 작가는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이념 대립의 폭력성과 분단 상황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광장’이라는 제목의 의미
 이 작품은 남북 분단의 문제를 ‘광장’과 ‘밀실’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준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있는 남한의 현실과 ‘밀실’은 없고 ‘광장’만 있는 북한의 현실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광장’과 개인적 삶의 보장이 가능한 ‘밀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찾아 중립국으로 떠나지만 실패하고 만다.

2. ‘갈매기’의 상징성
 선상(船上)에서 맨 처음 갈매기를 보았을 때는 그 새가 감시자의 눈길로 느껴져서 불안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갈매기는 이명준의 아픈 사랑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데, 특히 죽은 은혜와 그의 딸을 상징한다. 또 ‘바다’는 생명 본향(本鄕)이라는 원형적 심상과 죽음 뒤에 오는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3. 작가 최인훈이 말하는 ‘광장’과 ‘밀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을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이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란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치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 최인훈, ‘광장’ 저자 서문 중에서

4. 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한 의미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어느 곳도 자신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중립국으로 향하던 중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곳 역시 이상적 삶의 공간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는 결국 자살을 한다. 이를 통해 명준의 중립국 선택은 이상 실현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아닌 절망적인 현실 인식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소극적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광장’의 문학사적 의의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의 문제를 다루면서 남북 모두를 비판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로서 당시 4.19 혁명과 맞물려 이데올로기나 체제 비판을 기저로 새로운 정신의 차원을 개척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처음 발표한 이래 4번이나 개작(改作)되었다.

6. 명준의 자살의 의미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명준은 죽은 은혜와 딸로 상징되는 갈매기를 보고, 투신자살한다. 이는 현실 어디에도 자신이 살고자 하는 이상적 사회가 없음을 깨달은 결과이다. 결국 중립국의 선택은 이상 현실을 위한 실천으로서의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의 체념이라는 소극적, 부정적 선택이었음을 의미한다.

7. 단어 및 소재의 상징적 의미
- 밀실 : 개인의 내밀한 공간, 사회와의 의사소통이 차단된 공간
- 광장 : 사회적 공간, 사회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
- 부채 : 주인공의 삶
- 사북자리 : 주인공이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 상태
- 갈매기 : 은혜와 딸, 사랑과 자유의 표상
- 바다 : 은혜와 딸이 갈매기가 되어 살고 있는 공간, 진정한 자유와 사랑이 실현되는 공간,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

 

■ 작가 소개

최인훈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최인훈 - 광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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