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농민시
• 성격 : 사실적, 묘사적, 비판적
• 제재 : 농무
• 주제 : 농민들의 고뇌와 비애, 소외되고 억압된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
• 특징 :
① 서사적인 시상 전개가 이루어짐.
② 직설적으로 현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드러냄.
③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심리를 부각시킴.
④ 피폐해진 농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음.
• 구성 :
1~6행: 농무가 끝난 뒤의 답답한 심정
7~10행: 장거리에서 느끼는 소외감
11~14행: 현실에 대한 울분과 좌절감
15~20행: 농무를 통해 달래는 분노와 한
3. 작품 해설 1
이 시는 1970년대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소외되고 피폐해가는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는 농악이 끝나고 구경꾼도 모두 돌아간 후의 ‘텅 빈 운동장’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학교 앞 소줏집에 모여 답답함과 고달픔에 술을 마시고 나온다. 꽹과리를 앞세워 장거리를 지나고 ‘쇠전’을 지나 ‘도수장’앞을 지날 때 그들의 울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따라서 신명이 나서 춤을 추는 그들의 행위는 고달프고 희망이 없는 현실에 대한 착잡한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심화되는 한(恨)과 울분의 처절한 몸짓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서는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이면적으로는 당대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역설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시는 농촌의 절망적인 현실을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시에는 ‘농무(農舞)’라는 놀이가 등장하나 이것은 즐거움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다. 농무는 농민들의 한풀이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학교 앞 소줏집에서 술을 마시는 농민들에게 밀려오는 것은 허탈감뿐이다. 삶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와 ‘이까짓/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라는 구절을 통해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허탈감과 원통함, 울분을 안고 농무를 추면서 쇠전을 거쳐 도수장까지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들이 지닌 한(恨)은 ‘신명’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신명’은 분노를 삭이면서 형성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겉으로 흥겨운 축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울분과 한의 정서에 공감을 하게 된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현대시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농무’가 작품 속에서 지니는 성격은?(천재교육 참고)
농무(農舞)는 원래 농촌에서 일을 끝낸 다음 노동의 피로를 풀고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행해지던 놀이로 농민들이 추는 춤이면서 동시에 농민들이 보고 즐기는 춤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1960 ~ 70년대의 비극적 농촌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로, 삶의 한을 풀어 내는 집단적인 한풀이의 성격을 지닌다.
2. 화자의 현실 대응 방식(지학사 참고)
전통적으로 ‘한’과 ‘신명’은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한에 신명이 섞이기도 하고, 신명에 한이 끼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또, 그 둘이 한 덩어리로 얽히기도 한다. 이 시에서도 한과 슬픔을 ‘신명’이라 표현하며 농무를 통해 농민들의 한과 슬픔을 표출하면서 또한 그것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응 방식은 단순한 체념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암담함과 울분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3.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이를 반영한 작품(지학사 참고)
1960~70년대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경제의 중심은 도시, 공업이 차지하게 되었고, 농촌은 근대화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다. 정부는 쌀값의 인상을 강력히 억제했는데, 도시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쌀의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농약 값이나 비료 값은 해마다 올라가는데 농가의 수익은 전혀 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농촌 사회가 와해되었으며, 도시로 간 농민들은 도시 빈민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당시 이러한 농촌 사회의 실상을 반영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4. 꺽정이와 서림이의 등장과 그 효과(천재교육 참고)
이 시 중반에는 소설 ‘임꺽정’의 등장인물인 꺽정이와 서림이가 등장한다. 이들의 등장은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조선 명종 때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결합시킨다. 즉, 이 시에 임꺽정의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1960~70년대 농민의 현실과 수백 년 전 조선 시대의 농촌 현실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 모순에 저항하는 ‘임꺽정’을 통해 농민들의 적극적인 저항 의지를 나타내려는 의도도 드러내 준다.
6. 작가 소개
신경림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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