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재곤이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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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 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던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산문시
• 성격 : 신화적, 토속적, 낭만적
• 주제 : 장애인을 보살피는 질마재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
• 특징 :
 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② 산문 형식을 통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듯한 방식을 활용함
 ③ 인물의 죽음을 부활과 재생으로 바라보는 신화적 상상력이 드러남
• 구성 :
 1행: 마을 사람들이 앉은뱅이 재곤이를 돌봄.
 2행: 마을 사람들이 앉은뱅이 재곤이를 돌보는 이유
 3행: 재곤이가 사라짐.
 4행: 재곤이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조 선달 영감의 해석
 5행: 마을 사람들이 조 선달 영감의 해석에 동조함.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앉은뱅이’인 재곤이를 돌보아 주는 질마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그린 시이다. 장애를 가진 재곤이를 위해 늘 끼니와 추위를 견딜 옷, 불을 뒤대어 주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재곤이가 없어지자 천벌을 받을까 걱정한다. 질마재 마을의 인정이 바닥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선도에도 알음이 있다는 조 선달 영감이 재곤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살이를 하러 하늘에 갔다며 마을 사람들의 긍정적 인식을 이끈다. 이러한 말에 마을 사람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의 죽음을 신선살이를 간 것으로 긍정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삶의 귀결을 바라는 선인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작품 해설 2

 <신선 재곤이>는 1975년에 출간된 시집 『질마재 신화』에 실린 서정주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체의 서사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장르는 자유시이지만 산문체로 쓰여 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구성을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고 있으며, 인물의 죽음을 부활과 재생으로 인식하는 신화적 상상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의미의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는 가난으로 인해 자기 한 몸을 건사하기가 벅차다. 이를 딱하게 여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그의 끼니를 챙겨주고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그런데 갑술년인가 을해년 즈음부터 재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앉은뱅이였던 재곤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북이로 기억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하늘이 천벌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천벌은 내리지 않았고 농사도 여느 마을처럼 제대로 되었다.  이에 대해 조 선달 영감은 재곤이가 하늘로 신선살이를 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이 말을 믿으며 재곤이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한다. 그렇게 해서 재곤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양쪽 겨드랑이에 두 개의 날개를 단 거북 모양의 신선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바람에는 재곤이가 좋은 곳으로 갔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앉은뱅이 ‘재곤’이라는 인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심성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고 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재곤이라는 인물의 평생을 간추린 것으로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를 이루며,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이야기시의 계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서정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신화적 상상력을 통한 건강한 삶의 회복(이명희, 현대시와 신화적 상상력 참고)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삶의 고통을 감당했을 재곤이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시는 비참한 삶이 신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건강하게 재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부정적으로나 슬픔으로 남겨 두지 않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이 다른 의미의 재생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에 대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에게 날개를 달 수 없는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한적인 한계 상황에서 날개를 달 수 없다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자포자기를 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다만 '신선 재곤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는바, 신선에 대한 재치 있는 상상력을 통해 죽음을 존재의 끝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2. 설화 형식이 주는 효과(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민족 등과 같은 공동체 집단 내부에서 형성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비 문학인 설화에는 전승 집단의 언어와 세계관이 잘 담겨 있어 전통적인 세계관 또는 초월적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설화 형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설화의 종류에는 신성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화, 진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전설, 흥미성을 특징으로 하는 민담 등이 있다.

 

3. ‘신선 재곤이’에 나타난 전통적 사고방식(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① 인과응보적 사고방식

 재곤이를 잘 돌보아 주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질마재 사람들의 생각에서 알 수 있음.

② 공동체적 사고방식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보살피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질마재 사람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음.

③ 죽음을 재생과 부활로 인식

 재곤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음.

 

4. ‘조 선달’의 역할(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이 시에서 ‘조 선달’ 영감은 시상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앉은뱅이 ‘재곤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재곤이’가 하늘로 ‘신선살이’를 간 것이라며 긍정적 인식을 심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 선달’ 영감이 신선도에 알음(지식이나 지혜)이 있다는 것 때문에 ‘조 선달’ 영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더욱 동조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신선도(神仙道) :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생긴 것으로 신선이 되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신선도를 믿는 사람들은 명산(名山) 수행을 통해서, 또는 불사(不死)의 약을 복용함으로써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동해 가에 삼신산(三神山;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있다는 생각, 사람들을 보내 불사의 약을 구하려 했던 진시황의 이야기 등은 이와 관련된 것이다.

 

6. 작가 소개

서정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정주

해방 이후 『귀촉도』·『서정주 시선』·『동천』 등을 저술한 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1925년 줄포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29년 중앙고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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