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타계 싱가포르 국부(國父)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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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동아일보의 고등학생 대상 주간지 PASS에 기고한 글입니다.>


[뉴스읽기]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타계


싱가포르 국부(國父)의 빛과 그림자

 


지난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뉴시스


 

최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이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진행됐다. ‘싱가포르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총 31년간 총리를 지냈으며 그 후에도 2011년까지 고문장관을 맡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지만 권력을 독점해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리콴유 전 총리는 어떤 지도자였는지 살펴보자.

• 윤지혜 기자 yooon@donga.com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카드. AP뉴시스


 


싱가포르 경제성장의 상징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난 후 자원이 풍부한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했으나 2년 뒤 연방에서 쫓겨나 독립 국가가 됐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의 상황은 암담했다. 좁은 국토, 부족한 천연자원, 적은 인구수와 같은 환경에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리 전 총리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말라카 해협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싱가포르를 물류·금융 중심지로 키우려 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법인세를 낮추고 외국 기업도 사업 승인을 받으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국민들이 다국적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직장에서 영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 직에서 물러난 1990년엔 30배 가량 성장한 1만275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다.


 

민주주의보단 경제성장 앞세워

 리 전 총리는 건국 초기 나라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회구성원이 모여 토론하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서구식 민주주의보다는 리더가 중심이 돼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가부장의 권위를 정치에 반영한 ‘유교 자본주의’라 불렀다. 국민들에게 부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권위와 억압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이러한 그의 정치 철학은 민주주의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가 이끈 인민행동당(PAP)은 60년간 장기 집권했으며 그의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 직을 물려받았다. 사실상 리 전 총리가 모든 권력을 독점한 상황에서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는 어려웠다. 또 “언론의 자유는 싱가포르를 온전하게 만드는데 부차적 일”이라며 그의 정책을 반박하는 언론인을 감금하는 등 언론을 탄압하기도 했다.


 리 전 총리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는 외국자본을 들여와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국민 의식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판단해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적용했다. 경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강력한 벌금형과 태형(엉덩이를 때리는 처벌)을 도입하고, 사람들이 껌을 함부로 뱉지 않도록 껌 수입을 중단했으며, 화장실 물을 내리지 않아도 처벌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건물에 게양된 조기(弔旗). 신화뉴시스



부정부패와의 전쟁

 리 전 총리는 취임 후 “세금이 한 푼도 새지 않고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공언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부패행위조사국(CPIB)’의 권한도 강화했다. 사익을 추구하는 고위공무원은 국가 발전에 부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는 1986년 최측근인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싱가포르 달러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구속수사를 지시했다. 측근의 비리도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

 

 1995년엔 총리 일가가 보유한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의도적으로 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부패행위조사국의 조사를 자청해서 받았다. 무혐의 결론이 난 뒤에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 얻은 차익을 모두 기부했다.


 부정부패 조사를 명분으로 야당지도자와 언론인을 사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싱가포르는 2010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덴마크, 뉴질랜드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할 만큼 ‘청렴한 국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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