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사(萬言詞) - 안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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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전략>아마도 할 일 없어 생애를 생각하고
고기 낚기 하자 하니 물머리를 어찌하고
나무 베기 하자 하니 힘 모자라 어찌하며
자리 치기 신 삼기는 모르거든 어찌하리
어와 할 일 없다 동냥이나 하여 보자
탈망건 갓 숙이고 홑중치막 띠 끄르고
총만 남은 헌 짚신에 세살부채* 차면(遮面)하고
남초 없는 빈 담뱃대 소일(消日) 조로 가지고서
비슥비슥 걷는 걸음걸음마다 눈물 난다
세상 인사 꿈이로다 내 일 더욱 꿈이로다
엊그제는 부귀자(富貴者)요 오늘 아침 빈천자(貧賤者)라
부귀자 꿈이런가 빈천자 꿈이런가
장주 호접 황홀하니 어느 것이 정 꿈인고
한단치보(邯鄲稚步)* 꿈인가 남양초려* 큰 꿈인가
화서몽* 칠원몽에 남가일몽 깨고 나서
몽중 흉사(夢中凶事) 이러하니 새벽 대길(大吉) 하오리다
가난한 집 지내치고 넉넉한 집 몇 집인고
사립문을 드자 할가 마당에를 섰자 하랴

철없는 어린아해 소 같은 젊은 계집
손가락질 가라치며 귀양다리 온다 하니
어와 고이하다 다리 지칭 고이하다
구름다리 징검다리 돌다리 토다리라
춘정월 십오야(夜) 상원야 밝은 달에
장안시상 열두 다리 다리마다 바람 불어
옥호 금준*은 다리다리 배반(杯盤)이요
적성 가곡은 다리다리 풍류로다
윗다리 아랫다리 석은 다리 헛다리
철물(鐵物)다리 판자(板子)다리 두 다리 돌아들어
중촌(中村)을 올라 광통다리 굽은 다리 수표(水標)다리
효경(孝經)다리 마전(馬廛)다리 아량 위 겻다리라
도로 올라 중학(中學)다리 다리 나려 향다리요
동대문(東大門) 안 첫 다리며 서대문 안 학다리
남대문 안 수각다리 모든 다리 밟은 다리
이 다리 저 다리 금시초문 귀양다리
수종다리 습다린가 천생이 병신인가
아마도 이 다리는 실족하여 병든 다리
두 손길 느려치면 다리에 가까오니
손과 다리 머다 한들 그 사이 얼마치리
한 층을 조곰 높여 손이라나 하여 주렴

부끄럼이 몬저 나니 동냥 말이 나오더냐
장가락 입에 물고 아니 가는 헛기침에
허리를 굽힐 제는 공손한 인사로다
내 허리 가이없어 비부(婢夫)에게 절이로다
내 인사 차서(次序) 없이 종에게 존대로다
혼잣말로 중중하니 주린 중 들어온가
그 집사람 눈치 알고 보리 한 말 떠서 주며
가져가오 불상하고 적객(謫客) 동냥 예사오니
당면하여 받을 제는 마지못한 치사로다
그렁저렁 얻은 보리 들고 가기 어려우리
어느 노비 수운(輸運)하리 아모려나 저 보리라
갓은 숙여 지려니와 홑중치막 어찌할고
주변이 으뜸이라 변통을 아니하랴
넓은 소매 구기질러 품속으로 넣고 보니
긴등 거리 제법이라 하 괴이치 아니하다
아마도 꿈이로다 일마다 꿈이로다
동냥도 꿈이로다 등짐도 꿈이로다
뒤에서 당기는 듯 앞에서 미옴는 듯
아모리 굽흐려도 자빠지니 어찌하리
머지 아닌 주인집을 천신만고 겨우 오니
존전(尊前)의 출입(出入)인가 한출첨배* 하는고야
저 주인 거동 보소 코웃음 비웃으며
양반도 할 일 없네 동냥도 하시었고
귀인도 속절없네 등짐도 지시었고
밥 싼 노릇 하오시니 저녁밥 많이 먹소
네 웃음도 듣기 싫고 많은 밥도 먹기 싫다
동냥도 한 번이지 빌긴들 매양 하랴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할 일이로다
차라리 굶을진정 이 노릇은 못하리라
무삼 일을 하잔 말고 신 삼기나 하자 하고
짚 한 단 추려다가 신날부터 꼬아 보니
조희 노*도 모르거든 삿기 꼬기 어이하리
다만 한 발 다 못 꼬아 손바닥이 부르트니
할 리 없어 내어 놓고 긴 삼대를 베껴 내어
자리 노를 배와 꼬니 천수만한* 이내 마음
부칠 데 전혀 없어 노 꼬기에 부치었다<하략>

*세살부채: 살이 가느다란 부채.
*한단치보: 한단지보(邯鄲之步). 함부로 자기 본분을 버리고 남의 행위를 따라 하면 두 가지 모두 잃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
*남양초려: ‘남양’은 중국 형주의 지명이며 ‘초려’는 ‘짚이나 갈대 따위로 지붕을 인 집’을 의미함. 남양에서 제갈량은 초려를 짓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잡기 위해 참을성 있게 기다렸음.
*화서몽: 황제가 꾼 꿈으로, 좋은 꿈을 일컫는 말. *옥호 금준: 옥으로 된 작은 병과 금으로 만든 항아리.
*한출첨배: 몹시 부끄럽거나 무서워서 흐르는 땀이 등을 적심. *조희 노: 종이로 꼰 노끈.
*천수만한: 이것저것 슬퍼하고 원망함. 또는 그런 슬픔과 한.

 

■ 핵심 정리

• 갈래 : 가사, 유배가사, 장편 가사
• 성격 : 사실적, 반성적, 애상적
• 제재 : 유배 생활
• 주제 : 유배 생활의 고통과 잘못을 뉘우치는 심정
• 특징 : 유배 생활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 냄
• 구성
 - 서사: 귀양 가는 신세 한탄
 - 본사 1: 자신의 과거 회상
 - 본사 2: 유배를 오는 여정
 - 본사 3: 유배 생활의 괴로움
 - 결사: 유배지에서 잘못을 반성하며 풀려나기를 기원함
• 의의 : ‘북천가’와 더불어 유배 가사의 쌍벽을 이룸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작가가 추자도로 유배되는 과정과 유배지에서의 시련과 고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 등을 노래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배 가사이다. 당시에는 죄인이 유배를 가게 되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집에서 잠자리며 먹거리를 해결해야 했는데, 백성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유배 온 사람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큰 곤욕이었다. 화자 역시 추자도에 거주하는 한 백성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집주인은 죄를 짓고 유배를 온 화자가 양식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허구한 날 신세타령만 한다며 구박한다. 화자는 이러한 집주인의 태도에 원통하고 분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집주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동냥에 나서기도 하는데, 이러한 화자의 모습을 통해 유배 생활의 고난과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만언사」의 여러 이본에서는 작가가 ‘안조환’, ‘안조원’, ‘안도환’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현재는 ‘안도환’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 EBS수능특강 문학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조선 정조 때의 유배 가사로 ‘사고향(思故鄕)’이라고도 한다. 작가가 관직을 수행하던 중 주색잡기에 빠져 나라의 국고를 축낸 죄로 34세 때 추자도에 귀양 가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자신이 지은 죄를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음보를 1구로 볼 때 총 3,500여 구에 이르는 장편 가사로, ‘만언사’ 라는 주가사(主歌詞)에 ‘만언사답(萬言詞答)’, ‘사부모(思父母)’, ‘사백부(思伯父)’, ‘사처(思妻)’, ‘사자(思子)’, 후기 등이 붙은 연작 구성이다.
 대부분의 유배 가사가 양반 사대부로서의 의식을 바탕으로 변함없는 충성심을 노래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자신의 유배 생활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부분적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기는 하나, 연군지정은 약화되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사실적 묘사 및 슬픔과 회한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만언사’의 전체 시상 전개(천재교육)

 이 작품에서 화자는 추자도로 유배당한 신세 한탄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과거사를 회상한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를 잃고 10여 년간 외가에서 살다가 후에 계모를 맞아 효행을 다하였다. 혼인한 뒤에는 행락에 빠졌으나 곧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여 벼슬길에 올랐는데, 국고를 축낸 일로 유배에 처하게 된다. 유배지로 향하는 여정에는 부모 친척과 이별한 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두루 거쳐 유배지인 추자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제시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유배지에서의 생활이다. 허름한 곳에서 지내며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나는 화자의 처지가 신세 한탄과 함께 나타난다.


2. ‘만언사’와 조선 전기 유배 가사의 차이점(천재교육)

 유배 가사는 귀양지를 소재로 하거나 귀양지에서 지은 가사이다. 당쟁(黨爭)에 휘말려 죄 없이 유배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유배지로 오가는 동안의 견문이나 유배지에서의 생활 양상 등 이른바 기행 가사적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선 전기에 지어진 ‘만분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유배 가사는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와 연군지정을 주제로 하는 전형적 특성을 지니는데, 조선 후기에 지어진 ‘만언사’는 유배 생활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3. 화자의 내면적 정서 변화의 추이(천재교육)

 화자는 유배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추자도의 열악한 환경이나 사나운 인심 등으로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해 직설적으로 한탄한다. 그러다가 유배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점차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 등에 주목하며 삶의 의지를 지니게 된다. 이를 통해 유배지 생활의 고통이나 허탈감 등은 점차 사라지고 방면(放免; 붙잡아 가두어 두었던 사람을 놓아줌.)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기대를 품게 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 작가 소개

안도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안조(도)환 - 만언사.pdf
0.1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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