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 김기림



■ 본문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주지기

• 어조 : 감정이 절제된 객관적 어조

• 성격 : 감각적, 상징적, 시각적, 주지적, 회화적

• 제재 : 바다와 나비

• 주제 :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

• 특징 :

 ① 흰색과 푸른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나비의 연약함과 바다의 냉혹함을 동시에 강조함.

 ② 각 연을‘-다’의 종결 어미로 끝맺음으로써 객관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표현함.

 ③ 객관적 시선을 통해 시적 긴장감을 형성함.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거대한 문명의 세계인 ‘바다’와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다가 좌절하는 순진한 존재인 ‘나비’의 이미지 대비를 통해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낭만적 꿈의 좌절을 형상화하고 있는 모더니즘 시이다.

1연에서는 ‘그’로 의인화된 ‘나비’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고 표현함으로써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비의 순수함과 순진함을 드러내고 있다. 2연에서 나비는 푸른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잘못 생각하고 내려갔다가 날개가 바닷물에 절어서 지쳐서 돌아온다. 나비의 순진하고 연약한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나비’를 ‘공주’에 빗대고 있다. 3연에서는 ‘꽃’을 찾을 수 없어서 서글픔을 느끼고 있는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비치고 있다. ‘새파란 초생달’은 냉혹한 푸른색의 이미지인 ‘바다’와 조응하여 지친 나비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바다’와 ‘나비’를 각각 ‘현실’과 ‘인간’으로 치환한다면, ‘바다’는 거칠고 냉혹한 현실이며, ‘나비’는 그런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시집 <바다와 나비>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반발은 벌써 피할 수 없는 ‘근대’ 그것의 파산의 예고로 들렸으며 이 위기에 선 ‘근대’으 초극이라는, 말하자면 세계사적 번민에 우리들 젊은 시인들은 마주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이 가장 절실하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 시이다. 그래서 일단 시인은 이미지 구사부터 특이하게 한다.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미지들, 즉 나비와 바다의 이미지를 상상력 속에서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상상력의 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다와 나비의 이미지의 결합은 선명한 색깔의 대립이다. 즉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주제를 강조한다. 이상 혹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구체화하여 전달한 것이다. 즉 대상(나비)속에 화자가 이입하여 바다(근대 문명)앞에서 위태롭고 무기력한 나비의 모습을 통해 문명 비판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다’로 끝나는 냉정한 어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시적 화자의 나비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즉, 시적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관조적인 태도로써 나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 심화 내용 연구

1. 객관적 시선과 그 효과

시적 화자는 작품 밖에서 나비를 관찰하면서 대상인 ‘나비’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뿐 주관적 감상이나 판단은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각 연을 ‘-다’로 끝맺는 종결 어미에도 잘 나타나는데, 이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효과가 있다.


2. 한국 문학에 미친 외국 문학의 영향

나라 간의 문화적 교섭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직접 접촉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매개자를 통한 간접 접촉의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근대 이후 한국 문학이 서구 문학을 수용하는 방식은 주로 간접적인 방식으로의 교섭이었다. 김기림은 1930년대 엘리엇의 주지주의 등 20세기 초반에 세계 문학을 풍미한 사조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시‘바다와 나비’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스티븐 스펜더(1909~1995)의 ‘바다 풍경(Seascape)’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펜더의 시를 단순히 차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스펜더의 시에 나오는 바다의 냉혹성은 김기림의 시에서는 ‘나비’가 극복해야 하지만 극복하지 못한 장벽으로서의 ‘바다’로 그려진다. 스펜더의 시에서 ‘나비’가 죽음을 맞는 것과 달리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의 ‘나비’는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다가 좌절하고 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3. ‘나비’의 의미

 이 시에서 나비는 희고 연약한 존재이다. 흰색에서 우리는 나비가 순수하고 낭만적인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공주처럼에서도 곱고 연약함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나비는 곤경에 처했다가 큰 상처를 입는다. 괴로운 과정을 거치면서 현실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는 시적 화자를 대신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시적 화자는 자신의 처지나 정서를 나비에 이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4. 청(靑)과 백(白)의 이미지와 그 의미 : ‘바다와 나비’, ‘청포도’

 -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 이 시는 흰색의 나비 이미지와 청색의 바다 이미지의 대조를 통하여, 순진한 시인과 냉혹한 시대 현실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때 나비의 이미지는 김기림 자신의 청년기적 자아를 표상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일제 강점기의 근대적 지식인 일반이 가지고 있던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낭만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 이육시의 ‘청포도’ : 이 시도 청색과 흰색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는 이미지의 대조가 아니라 모두 시인이 바라는 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즉, 청과 백의 맑고 밝으며 선명한 색채적 대비를 통하여 희망찬 미래에 대한 염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5.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징

① 19세기적인 주정주의에 반기를 들고 지성을 중요시하는 20세기 문학 운동

② 병든 문명이 빚어낸 현대의 위기는 지성으로 구해내는 도리밖에 없다는 주장

③ 사상과 정서보다는 지성(이성)의 우세를 강조함.

④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적극적 비판성

⑤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

 

 6. 김기림의 이미지스트로서의 성격

 김윤식은 <한국 현대 시론 비판>에서,  “흔히 한국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라 했고 새타이어(satire, 풍자), 위트, 이질적인 두 이미지의 결합등을 지적 방법이라 했지만 그 밑바닥에 하나의 철학이 없을 때는 말장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기림의 지적 감상이 어느 정도 균형을 취한 작품으로는 ‘바다와 나비’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스펜더(S.Spender)의 작품과 유사성을 가진 것이며, 이미지스트 시의 한 특징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평하고 있다.


■ 작가 소개

 김기림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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