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 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이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어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零下)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고백적, 회상적, 애상적, 감각적
․ 제재 : 아버지
․ 주제 :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 특징 :
① 시간의 변화가 시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침
② 어머니에게 말하듯이 표현(대화체)하여 고백적 성격을 드러냄
③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대조적인 이미지들을 표현함
④ 명사형 종결과 생략법을 활용한 시의 마무리로 여운을 남김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유년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 추위를 막아 주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성인이 된 화자가 자신의 자식을 돌보며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어머니에게 고백하듯이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강물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단단하게 얼어붙어 표면을 이루고 있는 얼음이 마치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온갖 어려움과 추위를 덮어 주고 품어 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 2017년 EBS 수능특강 해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성인이 된 화자가 유년기의 기억을떠올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백하듯이 이야기하며 시상을 전개하는 작품이다. 1연에서는 화자가 어렸을 때 춥고 힘들었던 가정 형편에 대해서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아들의 시린 발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가랑이를 내어주시던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2연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이잘 드러난다. 3연에서 성인이 된 화자는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꽁꽁 얼어붙은 강물을 본다. 화자는 이 강물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단단하게 얼어붙어 표면을 이루고 있는 얼음이 마치 아버지와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자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모두 자신이 덮어주고 품었던 아버지의 모습과 얼음의 공통점을 찾은 것이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해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의 전개
이 시는 시상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 과거 : 가난하고 추웠던 어린 시절. 외풍을 막아주던 아버지의 사랑
- 요즈음 : 아이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화자의 아버지를 떠올림
- 오늘 : 한강의 얼음이 마치 아버지의 희생으로 느껴짐
2. 시상의 마무리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아버지’를 반복하여 부르면서 말줄임표를 활용해 여운을 주고 있다. 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고조된 감정을 잘 드러내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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