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벽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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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참고)

 취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날밤 박준을 나의 하숙방까지 끌어들인 데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박준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고 기괴한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하려 했다 해도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돌발적인 사건들을 만나고 있었다 십여 일 전쯤 일이었다. 밤 11시 50분 경 술이 만취가 되어 나의 하숙방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두운 골목에서 웬 사내가 나타나더니 자신을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을 겨를도 없이 그를 내 하숙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방안에 우뚝하게 서 있으면서 오히려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사연을 말해 주겠다던 그는 자신이 정신병자라며 나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먼저 잠자리에 들면 따라 잠자겠지 생각하고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분명 형광등을 끄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면 불이 켜져 있고 또다시 끄고 자면 다시 켜져 있기를 반복했다. 분명 그 사내였을 것이다. 방안에는 그와 나 뿐이었으니깐.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는 말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사내의 정체를 알아내기는커녕 궁금증만 잔뜩 더 늘어갔다. 그가 한 말 중에 자신이 정신병자라고 한 말이 기억이 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하숙방 뒤쪽에 하나의 정신병원에 있던 걸 본 것 같았다. 아침에 하숙방 뒤쪽에 있는 정신병원을 찾았다. 접수처에 있는 간호원으로부터 그가 박준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헌데 그 박준일이 바로 박준이었다. 그는 그의 소설에서 이름 석자가 거추장스럽다며 두 자로 간소화 시켰다. 박준은 그의 필명이었다.
 나는 한 잡지의 편집자였고 박준은 언제고 그 잡지에 글을 쓰게 되거나 글을 써 주어야 할 필자의 입장이었다. 편집자와 필자가 뜻이 같아 일이 잘 이루어지기란 힘이 드는 작업이다. 그와 나 또한 상관관계에 있었다. 나는 병원의 의사를 만나 보았다. 김박사라고 불리는 의사는 박준에 대해서 건성으로 말해 주었다. 박준 스스로 찾아와 자신을 진찰해 달라며 애원했다는 것이다. 김박사가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임상심리 검사를 해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박준은 진술 거부를 하여 김박사가 진단을 내리기를 미친 척하는 노이로제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박준이 내 앞으로 원고를 보내 왔다. 그리곤 일 이년 동안 통 작품을 내놓지 않고 그 뒤로 사라졌다.
 나는 안형에게 박준에 대해 물었다. 나의 질문을 수상쩍게 받은 그의 앞에서 박준의 일을 말하기 싫어졌다. 그는 자신만의 편집이 강한 편이었다. 그에게 박준의 원고와 원고료를 부탁했다. 원고료 핑계로 박준의 집으로 가 보려고 한 것이다. '괴상한 버릇'의 소설에는 괴상한 버릇을 가진 사내가 숨을 참아 가며 죽는시늉을 하고 나중에는 그런 버릇으로 숨이 멈춰서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읽고 나서 어리둥절했다. 박준의 소설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소설을 내보내지 않고 있는 안형의 태도가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그는 박준에 대해서 너무도 비판적이었다. 편집자와 필자는 서로 공동의 이념에 봉사하고 작업해야 했다. 서로 좀처럼 같은 지점에서 만나지지가 않았다. 박준은 끊임없이 자신을 소설 속에 진술해 놓았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박준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와 있었다. 집으로 가 보았지만 누이는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무심히 대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누이가 나를 찾아와 박준 자신이 정신병자가 되면 팔아 버리라는 원고를 들고 나왔다. 나는 그 원고가 욕심이 났다. 가지고 와서 읽고 난 뒤 박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또한 예전에 실렸던 신문 스크랩을 통해서 박준의 정신세계와 어릴 때 어둠 가운데 불빛으로 인한 공포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25 전란으로 어두운 방안에 손전등의 불빛을 들이대며 어느 편이냐고 어머니를 추궁하던 모습이 박준에게 공포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신문기사의 질문 중에 '지금도 그 전짓불의 간섭을 받고 있다고 말했는데 소설 작업과 관련하여 지금 당신은 어느 곳에서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라는 질문이 있었다. 박준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체를 밝히지 않기 위해 소문의 옷을 입고 있는 것뿐일 것이다. 그래야 그것은 우리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복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소문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선 늘 두꺼운 소문의 벽을 쌓아 주고 있는 것이다' 잡지사에서 쉽사리 거둬들일 수 있는 글이란 그 전짓불빛을 견디려 하지 않은 것 뿐이여서 신통할 리 없었다. 나 또한 사표를 오랜 시간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건 이미 나 자신의 진술의 길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박준뿐이었다.
 박준이 나를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그를 병원으로 다시금 데려다 준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소설과 김박사를 통해 박준을 알아 갔다. 그런데 김박사는 박준이 그의 소설 가운데 주인공 너가 심문관으로부터 추궁받는 장면 가운데 심문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김박사에게 더 이상 박준을 추궁하지 말기를 권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하고 있었다. 처음에 받았던 인상보다 이제는 조금씩 밉살스럽기도 하였다. 박준은 전깃불과 불안한 소문들과 모든 세상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서 병원을 찾아든 것이다. 그러나 그 병원이야말로 진짜 전짓불, 더욱 더 무서운 전짓불의 추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준은 또 다시 병원 탈출해 버리고 만다.
 김박사는 자신의 살인적인 사명감과 자신력으로 그를 끝내 미치게 만 것이다. 전짓불을 두려워한 것을 안 김박사는 마지막 방법으로 그에게 불빛을 들이대며 추궁했던 것이다. 박준을 미치게 한 건 김박사 뿐만 아니라 그를 감박사에게 끌어다 맡긴 나의 책임도 컸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끝나 버리고 만 느낌이었다. 나는 주막에 들어가서는 정신없이 심한 갈증을 끄기 시작했다. 박준이 다시금 나를 찾아주길 바라지만 끝내 박준은 나타나지 않고 말았다. 행길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들이 이따금 골목 이쪽까지 까만 정적을 깨뜨려 오곤 할뿐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액자소설
• 성격 : 실존적, 상징적
• 배경 : 시간적 -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공간적 - 어느 도시
• 시점 : 바깥 이야기 : 1인칭 관찰자 시점, 안 이야기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의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 주제 : 의사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한 인간의 정신적 상처
• 특징 :
 ① 액자 구성으로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음.
 ② 박준의 소설관을 작중 화자인 ‘나’가 추적하는 방법으로 표현함.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박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적 신념과 양심을 지킬 수 없게 하는 외부의 억압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신적 병리 현상을 겪고 있는 인물인 박준은 억압된 현실 상황과 작가의 사명 의식 사이에서 절망하는 인물로, 박준의 정신적 병리 현상의 원인은 그의 세 번째 소설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6 · 25 전쟁 당시 겪게 된 ‘전짓불’의 충격으로, 억압적인 상황에서 선택과 발언을 해야만 하는 공포감이 그를 옥죄고, 결국 이러한 공포감은 그가 소설가가 된 뒤에도 자기 진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대적 통념과 정치적 억압이라는 현실적 공포감과 연결되어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박준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사회적 편견과 억압으로 이루어진 ‘소문의 벽’에 대한 공포를 고발하면서, 자기 진술의 욕망이 억압당하는 현실 사회의 폭력을 비판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작가의 정직한 자기 진술을 억압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박준은 전짓불의 공포에 포획된 채 불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박준은 가장 진실한 자기 진술로서의 소설 쓰기를 하지만,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도 전짓불의 감시를 받게 됨을 자각하게 되고, 결국 박준의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전짓불의 공포로 인한 박준의 불안은 진술 불안으로 이어지고 박준은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박준은 결국 자기를 세상에서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작가로서 자기 진술을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저항한다.

- EBS 수능완성 해설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등장인물(천재교육 참고)

 - 나 : 잡지사의 편집장. 이 글의 관찰자이자 서술자. 정신 병원을 탈출한 박준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추적하는 인물이다.

 - 박준 : 정신 병원에 자청해 들어간 소설가. 본명은 박준일. 담당 의사의 잘못된 치료 때문에 병원을 뛰쳐나가는 인물이다.

 - 김 박사 : 박준의 담당 의사. 환자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잘못된 치료 방법을 고집한다. 고통의 근원을 외면하는 권위적인 인물이다.

2. 액자식 구성의 내용(천재교육 참고)

 - 바깥 이야기 : 서술자인 ‘나’가 ‘박준’을 관찰함

 - 안 이야기 : ① 첫 번째 소설 : 은신처로써의 ‘잠’이 드러남. 주인공의 회피 심리가 드러남.
              ② 두 번째 소설 : 억눌린 진술 욕망이 드러남. 작가적 양심과 현실의 갈등을 소설화 함.
              ③ 세 번째 소설 : 전짓불에 대한 두려움이 드러남. 인물의 과거 경험이 나타남.
              ④ 인터뷰 기사 : 박준의 소설관이 드러남. ‘소문의 벽’의 무서움을 이야기 함.

 

3. 전짓불’의 함축적 의미(지학사 참고)

 전짓불에 대한 박준의 경험은 전짓불 뒤에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쪽과 저쪽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로, 이후에도 현실에서 끊임없이 작가로서의 자기 진술을 간섭받고 억압받으며 ‘전짓불’의 공포는 확대되고, 결국 박준으로 하여금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전짓불’은 한 작가가 지닌 진술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외부의 압력 또는 작가의 정직한 표현을 방해하는 상황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4. 제목의 상징성 - ‘소문의 벽’(지학사 참고)

 일반적으로 벽이라고 하면 격리된 느낌과 함께 답답함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벽이 실체의 벽이 아닌 무형(無形)의 ‘소문의 벽’일 때 더욱더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유형(有形)의 벽은 쉽게 부숴버릴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세 편의 내부 소설을 통해서 진실의 숨통을 조이는 보이지 않는, 편견과 억압으로 가득찬 ‘소문의 벽’의 공포를 고발하고 있다. 즉, 이때의 소문의 벽은 사회적 편견과 정치적인 억압, 그리고 진실의 숨통을 조이는 문학의 허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주인공 박준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다.

 

5. 박준이 정신 병원에서 탈출한 이유(천재교육 참고)

 소설의 후반부에서 박준은 ‘나’에게 자신이 일부러 미친 사람인 척했음을 고백하며 정신 병원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2년 전 박준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여겼으며, 세상 어떤 일로부터도 온통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책임을 추궁당할 일도 없고 협박을 당하며 쫓겨 다닐 일도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정신 병원에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정신 병원에서는 전짓불의 추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를 견디지 못한 박준은 결국 탈출을 하고 사라진다.

 

6. 액자 구성의 효과(지학사 참고)

 이 작품은 액자 구성으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담겨 있는 구성 방식으로 되어 있다. 즉, 중심인물인 박준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지 않고 서술자인 ‘나’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액자 구성에서 안 이야기와 바깥 이야기의 역할은 각각 다른데, 안 이야기에서 삶의 의미가 담긴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면, 바깥 이야기에서는 ‘나’가 등장하여 안 이야기의 의미를 자신의 삶과 결부하여 이해하고 있다.

 

6. 작가 소개

이청준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이청준

1960년대 중반에 문단에 나와 30여 년 동안 기복 없이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은 한국 현대 소설사의 별자리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작가다.

100.daum.net

이청준 - 소문의 벽.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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