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난 곬족 - 백석



■ 본문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 누이 사촌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대의 사기 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계 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핵심 정리

• 갈래 : 산문시, 서정시

• 성격 : 토속적, 회고적

• 제재 : 명절에 친척들이 모인 떠들썩한 풍경

• 주제 : 사라져 가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그리움

• 특징 :

 ① 다양한 소재들과 방언을 통해 향토성을 강하게 드러냄.

 ② 놀이와 음식을 활용하여 동화적이고 풍요로운 분위기를 형성 함.

 ③ 판소리 사설처럼 말을 한꺼번에 엮어 나가는 방식을 구사하여 흥을 돋우고 장면을 부각시킴.

 ④ 반복, 열거, 대구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함.


■ 작품 해설 1

 이 시는 토속적인 소재와 방언을 통해 1930년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삶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명절날이면 여우난골에 있는 큰 집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놀다가 푹 자곤 했다.’라는 내용으로 요약되는데, 그 진술이 다양한 소재와 묘사로 인해 풍요로워지면서 각 장면들이 부각되고 있다는 데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서사적 산문성을 띤 이 시에서 1연은 시·공간적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였다. 2~3연은 간결하고 인상적인 묘사로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고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서 친척들이 흥겹게 노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백석은 고향을 이와 같은 축제의 시공간으로 그려냄으로써 원형적 공동체가 지닌 합일의 정서와 훈훈하고 넉넉한 공동체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의 형식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의 표현을 넘어 공동체적 삶의 원형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여우난 곬족은 여우난 골이라는 골짜기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이라는 뜻이다. 제목에서 느끼다시피 시인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을 보내던 어린 시절의 고향과 가족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일단 이 시에서 두드러진 것은 소박하고 평범한 생활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평범한 친척들이다. 그들은 삶의 상처와 성격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명저랄 함께 음식을 나누고 놀이를 즐기는 단란하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 대상들은 시적 화자에게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근대화되면서 세상은 많은 것이 변했다. 더욱이 1930년대 우리는 일제 강점 하에 있었고 그들의 수탈정책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적 화자는 아마도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름다운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즉 고향이라는 원초적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전근대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윤희재, 전공국어 현대문학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민속적 소재와 평북 방언의 역할  

 이 시에 등장하는 토속적·민속적 소재들은 큰집에 모이는 친척들을 소박하고 친근하게 그려 내는 데 기여하며, 명절의 풍요롭고 흥겨운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토속 음식과 지역의 전통 놀이에 관련된 시어의 잦은 등장은 백석 시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밀착된 그리움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우리 고유의 문화가 급속히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소재는 평북 방언으로 되어 있어 작품의 생동감이나 사실감을 높여 주면서 향토적 정서를 강하게 환기시킨다. 이처럼 백석은 이 작품에서 방언으로 된 이름의 민속적 소재들을 나열하면서 마치 판소리 사설과 같이 장면의 극대화를 통해 정서와 분위기, 나아가 주제까지 형상화하고 있다.


2. ‘고향’의 의미

 이 시는 어린 소년을 시적화자로 내세워 화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고향 사람들과 풍습(민속)을 다양하게 그려 내고 있다. 즉, 이 시의 고향은 친족 간의 우애와 정이 넘치는 공동체적인 제의(祭儀)의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특히 유년의 시각에서 본 동화적 가족 세계는 전체적으로 토속적이고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서정적 분위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시각과 후각의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고 있고, 평북 지방 사투리와 토속적인 소재를 나열함으로써 고향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다.


3. 인물 묘사 방법

 인물 묘사는 2연에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명절날 모인 자신의 친척들을 묘사하는데 한 인물에 대해 여러 가지 이미지를 중첩시켜 나열하는 식으로 묘사하였다. 이때 시적화자는 주관적으로 그것도 어린 시절 자신의 눈에 비쳤던 이미지를 이용하여 묘사한다. 즉, 시인은 철저하게 어린 소년의 눈으로 되돌아가 그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작가 소개

백석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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