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 이성부



■ 본문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성격 : 상징적, 예찬적, 참여적

․ 제재 : 벼

․ 주제 :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예찬

․ 특징 :

 ① 비유, 상징의 기법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② 시적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 시상의 전개 :

 1연 : 서로 어우러져 사는 모습(벼의 외면적 모습)

 2연 :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벼의 내면적 덕성)

 3연 :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앎(벼의 내면적 태도)

 4연 :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벼에 대한 예찬)


■ 작품 해설 1

 이 시는 ‘벼’라는 소재를 통해 민중의 생명력과 공동체 의식을 나타낸 작품이다. 1연에는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민중의 삶이 나타나 있고, 2연에서는 이러한 민중 개개인이 단결하여 공동체가 될 때 더욱 강력한 힘이 발휘됨을 보여주고 있다. 3연에서는 민중들이 어질고 현명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고, 4연에서는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기희생적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 오감도, 최다문항 현대시편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벼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민중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로 유추의 표현 방법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즉, ‘벼’를 통해 이 땅에서 민족적 삶의 뿌리와 역사의 저력을 지탱해 온 우리 민중의 한과 공동체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 디딤돌, 현대시 참고


■ 작품 해설 3

 벼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민중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로 시인들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 관계되는 비유와 상징의 의미를 포착한다. '벼'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벼'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민중, 민족 의식과 생명 의지로 상징된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에서는 온갖 고난을 이겨 낸 민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에서처럼 개인이 공동체가 될 때 민중의 저력은 발휘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강한 민중의 생명력이 함축되어 있다. 시인의 민족 의식과 민중 의식이 '벼'라는 상징을 통해 잘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과 민중의 삶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는 이성부의 작품으로 '벼'는 서로 의지하면서 삶을 꿋꿋하게 일구어 가는 민중들의 생명 의식을 상징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마치 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겸손한 내면적 성찰로 속을 채우는 벼는 분노를 억제할 줄도 알고, 노여움을 참을 줄도 안다. 벼들은 서로 어우러져 의지하고 살며,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떠나는 지혜도 갖고 있다. 겉으로 나약한 것 같으나, 속으로 옹골차게 익어 가는 벼를 통해, 비록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지만,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때 더 큰 힘과 사랑을 갖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자기 희생을 통해 더 큰 이념과 사랑을 구현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벼’의 의미

 우리 민족은 수천 년 간 ‘벼’를 재배해 왔다. 즉 ‘벼’는 우리와 오랫동안 지내왔으며, 김수영의 <풀>의 ‘풀’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적 삶의 뿌리이자 역사의 저력을 상징하는 데 적합하다. 시적 화자는 ‘벼’의 서루 어우러져 기대는 모습으로부터 공동체적 유대와 신뢰감을, 서로의 몸을 묶고 떠나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저력과 희생의 모습을, 서러움을 달래고 노여움을 삭이는 모습으로부터 민중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발견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이성부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문학 이야기 > 현대운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우난 곬족 - 백석  (0) 2017.11.08
절정 - 이육사  (0) 2017.06.28
선우사-함주시초4 - 백석  (0) 2017.06.22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2) 2017.06.09
참회록 - 윤동주  (0) 201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