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 윤동주



■ 본문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상징적, 반성적, 고백적

• 어조 : 담담한 자기 성찰의 어조

• 제재 : 녹이 낀 구리 거울과 나

• 주제 : 자아 성찰을 통한 참회와 순수성의 회복 의지

• 특징 

① 1인칭 독백의 형식으로 고백적 성격이 강함.

② 시간의 흐름(과거→ 현재 →미래)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③ ‘거울’의 상징성을 통해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 줌.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식민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성찰의 자세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화자는 절박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고 욕되게 살아온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고백하고 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현재까지 살아온 화자의 고뇌는 자신에 대한 참회로 이어진다. 그리고 화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성찰하며 현재의 참회가 부끄럽게 여겨질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화자의 반성은 더욱 처절해지며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참회록을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참회가 부끄럽지 않도록 순수한 삶을 생각하며 미래의 순교자적인 길을 걸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희생적 삶을 숙명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자아 성찰을 바탕으로 한 참회의 정신이 전편에 녹아 있는 작품이다. 먼저, 이 시의 화자는 지나간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준엄한 반성으로부터 자신의 참회록을 쓰기 시작한다. 시적 화자는 녹이 낀 구리거울과 이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따라서, 자신의 지난 생애를 반성하는 참회의 글을 쓰게 된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맞이할 조국의 광복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다시 자신을 부끄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물 네살의 젊은 나이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고백만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욕된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에는 또다시 부끄러운 참회록을 쓰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거울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거울을 닦는 것은 온몸으로 자아를 성찰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현재의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우리 정신사적 흐름의 주류와는 다른 정신세계가 깃들여 있다. 그것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곧 참회의 정신이다. 이러한 참회의 정신은 시의 핵심적인 시상을 이루는 ‘거울’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 윤희재, 전공 국어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시어의 상징적 의미

 파란 녹 : 식민지 치하의 치욕스러운 민족의 현실

 왕조의 유물 : 개인적 자아로서가 아닌, 역사적 자아로서의 ‘나’

 즐거운 날 :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하는 날

 밤 : 암울한 일제 강점기의 상황

 운석 : 죽음, 하강, 소멸, 절망의 세계. 식민지의 어두운 현실

 슬픈 사람의 뒷모양 : 암단한 현실 상황 속에서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참회하는 망국인의 슬픈 뒷모습


2. 시상 전개 방식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순서에 따른 추보식의 구성을 취한다. 과거의 부끄러운 삶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시상은 현재의 참회로 이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처절하게 화자는 자아를 성찰하며 미래의 참회록까지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가 부끄럽지 않을 것까지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성찰의 자세는 희생적 태도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마무리된다.


3. ‘참회록’에서 ‘참회’의 의미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던 시적 화자는 조국의 잘못된 역사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한 욕됨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참회의 글을 쓰는 한편, 조국 광복이 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또다시 써야 할 참회록을 생각한다. 미래에 쓸 참회록이란 식민지라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적극적 행위 없이 현실의 고통만을 토로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의 글로, 화자는 온몸을 바쳐 자신을 꾸준히 되돌아보겠다는 의지를 비춘다. 그리고 마침내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과 철저한 자기 참회의 실존적 자아 성찰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게 된다.


4. 이 시의 미래 지향적 시간 인식

 이 시가 표현하고 있는 시간 의식의 특징은 미래의 행위를 현재화하여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시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삶에 대한 참회와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를 다시 참회하는 복합적인 시간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3연 2행의 ‘써야 한다’와 5연 5행의 ‘나타나온다’는 서술어는 미래형인 ‘써야 할 것이다’와 ‘나타나올 것이다’로 바꾸어 써야 한다. 이렇게 시가 미래의 행위를 굳이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은 미래에 다가올 ‘즐거운 날(광복)’이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시인의 당위적 확신이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윤동주 – 국어국문학자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