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떡갈나무 숲 - 이준관



■ 본문

떡갈나무 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 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혼례,

그 눈부신 날갯짓 소리 들릴 듯한데,

텃새만 남아

산 아래 콩밭에 뿌려 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 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 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 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산짐승이 혀로 핥아 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산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 거야, 잎을 떨군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제재 : 떡갈나무 숲

․ 주제 : 자연 안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품는 떡갈나무 숲의 모습

․ 특징 :

 ① 의인화를 통해 대상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내고 있다.

 ② ‘외롭다’, ‘쓸쓸하다’와 같이 시적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③ 6연 – 대화 형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④ 감각의 전이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이준관의 『가을 떡갈나무 숲』(나남, 1991)에 실린 작품이다. ‘떡갈나무 숲’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그 속에 있는 여러 소재들을 통해 자연 친화의 정서가 두드러진다. 시의 성격은 감각적이고 사색적이며, 다소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가 드러난다. 전체는 6연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연부터 5연까지가 독백체로 시상이 전개된다면 6연에서는 대화체를 통해 떡갈나무를 의인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상과의 심리적 교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가을의 ‘떡갈나무 숲’에서 화자가 자연에 대해 느끼는 위안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1연에서는 떡갈나무 숲을 걸으며, 떨어진 잎들이 동물들의 털이 되거나 쐐기집, 벌레의 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2연과 3연에서는 풍뎅이, 텃새, 노루 등의 동물들이 가득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이제 이들이 떠나고 남은 가을 떡갈나무 숲을 묘사한다. 3연에서는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 자신이 별이 되어 이 떡갈나무 숲을 다 차지해버릴 것 같다는 심경을 고백한다. 5연에서는 떡갈나무 숲에 남은 열매 한 개를 보면서 남은 짐승들을 위한 산의 작은 호의를 생각한다. 6연에서는 외로운 심경을 고백하는 화자와 잎을 떨어뜨려 나에게 반응하는 떡갈나무의 위로를 보여준다. 2연의 ‘그 눈부신 날개짓 소리’, ‘노래를 쪼아’나 3연의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 오는’에서는 청각의 시각화를 통한 공감각적 심상을 보여준다. 4연의 ‘이 떡갈나무 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는 부분은 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물아일체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을의 떡갈나무 숲은 지난 여름에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흔적들만을 지닌 채, 고요하고 평안하다. 떡갈나무가 주는 넉넉함과 자기 희생적인 보살핌은 화자에게 인간의 외로움마저도 자연 전체의 질서 안에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떡갈나무 숲을 의인화하여 생명체를 품고 아낌없이 내어 주는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가을날 잎을 떨군 떡갈나무 숲에서 자신의 것을 나누어 다른 생명체들을 품어 주는 떡갈나무의 모습을 떠올린다. 떡갈나무는 외롭고 쓸쓸해하는 화자에게 마지막 남은 잎을 떨구는데, 이는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들처럼 떡갈나무 숲이 품어 주는 여러 생명체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떡갈나무 숲은 숲이라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아울러 모두 품어 줄 수 있는 더 넓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존재를 품고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누는 떡갈나무의 모습은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 2017년 EBS 수능특강 해설 참고


■ 작가 소개

이준관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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