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전 - 작자미상

반응형
728x90



■ 본문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때 사람이다. 얼굴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파리하였으나 마음은 밝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하였다. ▶인물 소개

  평강왕의 어린 딸이 잘 울었으므로 왕이 놀리면서

  “너는 항상 내 귀가 아프도록 울어 대니 커서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는 없겠구나.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 라고 매번 말하였다.

  공주가 16세가 되자, 왕은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그러자 공주가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늘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슨 이유로 예전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匹夫)도 오히려 식언(食言)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至尊)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왕 노릇하는 사람에게는 희언(戱言)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되었사오니, 소녀는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왕은 노하여 말하였다.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실로 내 딸이라 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공주가 온달과 혼인하기로 결심함.

  그러자 공주는 값비싼 팔찌 수십 개를 팔에 매달고 홀로 궁궐을 나와,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온달의 집을 물었다. 그 집에 이르러 눈먼 노모(老母)가 있음을 보고, 다가가서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노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천하여 귀인(貴人)이 가까이할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당신의 체취를 맡으니 향기롭기가 예사롭지 않고, 당신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습니다. 틀림없이 천하의 귀인일 것입니다. 누구에게 속아 여기에 오셨습니까? 내 아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간 것 같은데, 한참 되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온달의 집을 나서서 산 밑에 이르렀을 때, 공주는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오는 온달을 보고서 그에게 속마음을 말하였다. 온달은 발끈 성을 내며 말하였다.

 “이는 어린 여자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너는 사림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임이 분명하다.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그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가 버렸다. 공주는 혼자 온달의 집으로 돌아와 사립문 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공주가 온달의 집에 찾아감.

  이튿날 아침에 공주는 다시 온달의 집으로 들어가 온달 모자(母子)에게 사정을 자세히 말하였다. 온달이 우물쭈물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자식은 미천한 사람이니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없고, 우리 집은 몹시 비좁아서 귀인이 살기에는 마땅치 않습니다.”

  공주가 대답하였다. /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나눠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라도 옷을 지어 같이 입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마음만 같다면, 어찌 꼭 부귀한 다음에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금팔찌를 팔아서 밭, 집, 종, 소, 말, 그릇 등을 사들여 살림을 온전히 장만하였다. / 처음에 말을 살 때에 공주는 온달에게 말하였다.

  “부디 시정(市井)의 말은 사지 말고, 반드시 병들고 야위어서 버려진 국마(國馬)를 사 오세요.”

  온달은 공주의 말대로 했는데, 공주가 부지런히 말을 먹였더니 그 말은 날로 살찌고 건강해졌다. ▶공주와 온달이 혼인을 함.

  고구려에서는 항상 3월 3일이면 낙랑(樂浪)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 그날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날이 되면 왕이 나가 사냥하고 여러 신하들과 오부(五部)의 군사들이 모두 따라 나섰다. 이에 온달도 그동안 기른 말을 타고 따라갔는데, 항상 남보다 앞서 달렸고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짐승을 잡았다. 왕이 불러서 성명을 물어보고는, 놀라고 또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보내어 요동(遼東)을 공격하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배산(拜山)의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쌔게 싸워 적군 수십여 명을 베니, 모든 군사가 승세(勝勢)를 타고 분투하여 크게 이겼다. 공을 논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온달을 제일로 내세웠다. 왕은 가상히 여기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내 사위니라.”

하며, 예를 갖추어 맞아들이고 벼슬을 주어 대형(大兄)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총애가 더욱 두터워지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커졌다.     ▶온달이 입신출세를 함.

  영양왕(嬰陽王)이 즉위하자 온달이 왕께 아뢰기를,

  “신라가 한강 북쪽의 우리 땅을 빼앗아 군현(郡縣)으로 만들어 그곳 백성들은 매우 한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 일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저를 불초하다고 여기지 않고 군사를 주신다면, 한번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온달은 떠날 때 이렇게 맹세하였다.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나는 돌아오지 않겠다.”

  드디어 출전하였는데, 온달은 신라 군사와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에 맞아서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였지만, 관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아아, 돌아가소서.”

  드디어 관을 들어 장사를 지냈다. 대왕이 그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온달이 전투에서 사망함.


■ 핵심 정리

갈래 : 설화(서사), 전(傳)의 형식의 설화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역사적, 영웅적

문체 : 설화체, 역어체

특징 : 

  ① 인물 중심의 전기 형식

  ② 여성 주체 의식과 신분 상승 욕구라는 민중 의식이 두드러짐

주제 :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공주의 주체의식과 온달의 입신양명



■ 작품 해설 1

  ‘온달전’은 평강공주가 미천한 신분의 온달과 결혼하여 그를 출세시킨다는 내용의 설화로 역사적 사실과 민담이 결합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온달전’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것은 온달을 충성스런 신하의 표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천한 신분의 온달이 지닌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입신에 이르게 한 평강공주의 주체적 삶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글은 『삼국사기』<열전(列傳)>에 수록된 작품이다. 신분이 고귀한 공주가 스스로 미천한 바보 총각을 찾아가 결혼을 하고, 남편을 영웅으로 성장시켜 공을 세우게 하는 과정이 실감과 짜임새를 갖추어 그려지고 있다. 공주는 과단성이 있을 뿐 아니라, 상상치 못한 제의를 납득하지 못하는 온달과 그 모친을 지성으로 설득하고 또 좋은 말을 고르게 하여 온달이 영웅으로 입신케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비범한 안목을 가진 여성이다. 아울러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자, "죽고 삶이 결정났으니 돌아가자."고 하여, 초탈한 모습까지 보여 이인(異人) 같기도 하다. 반면 공주의 도움이긴 하나 세상이 바보라 했던 온달에게 영웅적 능력이 잠재해 있었음이 밝혀져 사람을 신분이나 겉모습으로 판단할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온달’은 역사서인 ‘삼국사기’ 열전의 하나이므로 그 내용은 객관적 사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유(類)이야기 자체는 설화로 민간에 전승(傳承)되었다 예컨대 숯을 구워 살아가던 총각이 우연히 찾아온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살면서 부자가 되고 출세도 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승되어 왔다.

- 김윤식·김종철 공저 문학(상) 한샘출판사



■ 심화 내용 연구

1. ‘온달전’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전승하는 심리

  ‘온달전’은 역사적 사실의 문학적 형상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전기 형식의 설화라고 할 수 있다. 구전되는 ‘바보 온달 전설’은 ‘온달전’과 내용이 같으나 공주가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쳤다는 내용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등 민중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온달과 공주의 결연, 말을 고르는 방법,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설화적 요소로 볼 수 있다. 미천한 신분의 입지적인 인물이었던 온달의 비극적인 죽음을 더욱 극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구전 설화의 평강공주 이야기를 삽입하여 ‘온달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2. 온달설화의 주제 의식

 이 설화의 주된 주제는 부녀간의 갈등을 통해서 부권 중심의 전통적인 도덕률을 비판하고 스스로의 독자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주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여성 자체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성취와 아버지의 인정에 의한 것이므로, 일정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그리고 온달설화는 유기적 대립구조로 형상화(形象化)되었을 뿐 아니라, 바보 온달과 울보 공주에 대한 표면적 인식의 한계가 온달 장군과 주체적 삶을 실현한 공주에 의하여 극복됨으로써 기존 질서의 허위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민중의식과 여성 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당대의 설화문학이 가지는 민중적 미의식과 역사를 개척하려는 민중적 역사 의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3. 온달 설화의 유형적 성격

 ‘삼국사기’ 열전의 온달조는 민간 전승을 통해서 형성된 설화가 편찬자에 의하여 다듬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전되는 ‘바보 온달 전설’은 문헌에서 전하는 것과 거의 같으나, 공주가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쳤다는 내용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고소설 ‘온달전’의 줄거리도 이와 같으나 문학적 형상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열전에서 보다 민중 의식이 한층 두드러져 있다. 갈등 구조상 동일 유형인 민담에서는 세 딸을 둔 아버지와 자기 복에 먹고산다고 하여서 쫓겨난 셋째 딸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숯구이 총각이 등장하므로, 인물과 배경은 다르나 그 구조와 주제는 전설과 다름없다. 화소들이 ‘무왕 설화(武王說話)’와 유사하여 동일 유형으로 간주되기도 하나, 이 설화가 남녀간의 신분적 갈등을 다룬 것이라면 ‘온달 설화’는 부녀간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 임재해, '온달 설화의 유형적 성격과 부녀갈등'에서


'문학 이야기 > 고전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산탈춤 - 작자미상  (0) 2016.04.27
하회별신굿 탈놀이 - 작자미상  (0) 2016.04.26
동명왕(주몽) 신화 - 작자미상  (0) 2016.04.19
장국진전 - 작자미상  (0) 2015.10.27
최척전 - 조위한  (0) 2015.06.26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