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모사(慈母思) - 정인보

1. 본문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 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제1수>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저 달려 삽내, <제2수>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 되고 말어라, <제12수>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하올고, <제16수>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 붙어 있단 말가
빈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제40수>

 

* 밤송인 쭉으렁: 우리 속담에 ‘쭈그렁밤송이 삼 년 간다’는 말이 있음. 병이 많은 사람이 그대로 목숨을 이어 가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임.
*바릿밥: 여자의 밥그릇에 담긴 밥으로, 어머니 몫의 더운밥을 뜻함.
*보공: 관 속에 시신을 눕힌 다음 관의 빈 곳을 채우는 물건. 
*욱은: 우거진.

 

2. 핵심 정리

• 갈래 : 현대시조
• 성격 : 회고적, 의고적
• 어조 : 후회와 그리움
• 제재 : 어머니의 희생과 자애
• 주제 :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특징 : 
 ① 3(4).4조 4음보, 3장 6구의 외형률을 잘 보여줌.
 ② 반어와 대조 등 여러 표현법을 활용함.
 ③ 자수율을 맞추기 위해 옛말이나 옛 글에서 시어를 선택, 활용함.
• 구성 : 
 - 제 1 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길러 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함.
 - 제 2 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회고와 그 은혜에 감사함.
 - 제 12 수: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한
 - 제 16 수: 부재하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무덤 속에 계신 어머니를 걱정함.
 - 제 40 수: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에 대한 한탄

 

3.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전체 40수의 연시조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을 지은 정인보는 한민족이 주체가 되는 민족주의적 사관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던 역사학자로서 예스럽고 전아한 표현으로 자신의 고결한 생활 감정을 내면화한 글을 주로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에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정감이 전아한 언어 속에 잘 녹아 있으며, 특히 시어에서 옛말을 현대어로 풀어 쓴 기교가 두드러진다. 정인보는 이 작품의 서문에 “옛날 어떤 효자는 서러우면 퉁소를 불어 퉁소 속에 피가 몹시 나더라는데, 내 이 시조는 설움도 얼마 보이지 못하였거니 피 한 방울인들 묻었으리요마는, 효도야 못 하였을망정 설움은 설움이다.”라고 하여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효도를 다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회한을 고백하였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심화 내용 연구

1. ‘자모사’의 배경

 작자에게는 생모(生母-대구 서씨)와 양모(養母-양자로 간 집, 월성 이씨) 두 어머니가 계셨는데 두 어머니가 다 덕행과 자애가 깊었다고 한다. 이 시조는 두 분이 다 돌아가신 후에 쓴 작품이며, 이 시조에서 읊어지는 어머니는 그 중 어느 한 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느 분이나 생각나는 대로 한 수씩 지어 나간 것이다. 자모사에 붙인 그의 해제에서 ‘생어머니는 높고 양어머니는 크다. 어머니 한 분을 먼저 여읜 뒤는, 한 분 마저 여의면 나는 부지하지 못할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목천서 어머니 상사(喪事)를 당했다. 그 가을에 서울로 이사하여 오니 갈수록 서러워 길 가다가도 가끔 혼자 울었다. 이 시조는 병인년 가을에 지었다.’ 라고 자모사의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

 

2. '자모사’ 전문 
1수.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수.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수.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수.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5수.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수.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7수.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 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8수.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9수.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수.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11수.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12수.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13수.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14수.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수.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수.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7수.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18수.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19수.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수.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21수.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수.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23수.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24수.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5수.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26수.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27수.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수.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9수.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수.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 보니 설워라

31수.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수.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수.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34수.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35수.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兜率天宮) 향하실 제 /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36수.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37수.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38수.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39수.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수.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5. 작가 소개

정인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인보

해방 이후 『조선사연구』, 『양명학연론』 등을 저술한 학자. 한학자, 교육자, 역사가.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유명(幼名)은 정경시(鄭景施). 자는 경업(經業), 호는 담원(薝園)·미소산인(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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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엮어 읽기

고려가요, 사모곡(思母曲) - 작자미상
한시, 사친(思親) -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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