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감의록 - 조성기


■ 본문

 황제께서 장원 급제한 화진을 올라오라 하여 만나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양후를 잃은 뒤로 짐은 항상 마음이 아팠소. 이제 여양후의 아들을 보니 기린의 자식, 봉황의 새끼처럼 범상치 않소.” 

  그러고는 앞에서 술을 내려 마시게 하셨다. 사흘 후에 장원은 한림학사에 제수되었고 성준과 유성양은 각 각 병부 원외랑이 되었다. 그러나 성 원외와 유 원외는 이부 상서 오붕을 찾아가서 말했다. 

  “저희들은 집이 절강이라서 집을 떠나 서울에 와서 벼슬을 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학문도 성글어 많이 부족합니다. 동남쪽의 한가한 고을의 태수가 되어 몇 년간 공부를 더 했으면 합니다.” 

  오붕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에 성 원외는 복건 남정현의 현감이 되었고 유 원외는 귀양부의 통판이 되었다. 이때 함께 급제한 신진들은 모두 승상인 엄숭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화 장원만은 인사를 가지 않아 엄숭이 불쾌해했다. 한림이 상소를 올려 고향으로 돌아가 늙으신 어머니를 뵙겠다고 청하자, 황제께서 허락을 하시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오라고 했다. 한림이 성준, 유성양 두 태수와 함께 소흥으로 돌아오자, 성 부인이 아들과 조카 두 사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희들이 모두 고아로 자라서 이렇게 출세했구나. 먼저 간 사람이 이를 안다면 아마도 땅속에서나마 환히 웃을 게다.” 

  그러자 두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자리를 적셨다. 이에 성 부인이 윤 부인과 남 부인에게 봉관, 화리와 함께 조정 대신의 어머니와 부인에게 내리는 명부의 직첩을 주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큰 잔치를 열어 유 태 수 부자도 초대했다. 이날 소흥부의 지부도 풍물과 기녀들을 데리고 왔다. 새로 급제한 세 사람은 인삼, 계지를 들고 사당에 절하였는데, 한림이 슬프게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아! 효자는 슬픈 일이 있어도 부모를 그리워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부모를 그리워하니 그 슬픔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이때 심 씨 모자는 한림의 급제 소식에 배가 아파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화춘의 부인 임 씨는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손수 진수성찬을 마련하면서, 한편으로 슬프기도 했지만 기쁜 표정으로 정성 을 다했다. 성 부인이 이 모습을 보고 여러 번 그 사람됨을 칭찬했다. 성 태수가 행장을 꾸려 임소에 가려 할 때 성 부인이 아들에게 말했다. 

  “춘이와 그 어미가 성품이 포악하니 화진 부부는 내가 없으면 아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게야. 너는 요 씨만 데리고 혼자 가라. 이 늙은 어미는 아들을 위해서 죽은 동생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구나.” 

  성 태수가 깜짝 놀라 울면서 애걸했다. 

  “어머니, 소자가 손에 못이 박이고 혀가 닳도록 어렵사리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한 것은 모두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한 고을의 태수가 되었는데 하루도 봉양치 못한다면 소자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형옥도 이제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되어 며칠 안 있으면 두 제수씨를 데리고 떠날 텐데, 숙모님께서는 틀림없이 따라가지 않으실 겁니다. 한번 서울과 시골에 떨어져 있게 되면 해를 입히려 해도 방법 이 없을 것입니다. 설사 조금 분란이 있더라도 제수씨가 현명하고 지혜로우니 두루 살펴서 잘 보호할 것 입니다. 어머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소자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 주십시오.” 

 부인은 그래도 듣지 않았다. 한림이 눈치를 채고 성 부인에게 그냥 떠나시라고 정성스레 권하니 성 부인 이 눈물을 흘리며 허락했다. 아, 이제부터 효자의 고난이 이루 말할 수 없겠구나! 조물주의 의도는 무엇인가? 

  두 태수가 떠나는 날, 요 씨와 화빙선은 윤 부인과 남 부인의 양손을 잡은 채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차 마 말을 하지 못했다. 성 부인이 심 씨 모자에게 간절하게 타이르고 여러 번 반복하여 부탁을 하니 돌 같은 심장이라도 감동하고 귀신도 눈물을 흘릴 만했다. 성 부인 일행이 떠난 이후로 심 씨는 등에 있던 가시를 빼 버린 듯 후련하여 휘파람을 불면서 그 아들과 모의했다. 

  “예전에 정 씨는 어질고 아름다워 인심을 얻은 데다가 또 화진처럼 기특한 아들을 낳아서 그 권세가 날로 높아만 갔지. 나리께서는 화진을 장자로 세우려는 뜻마저 두어 집안 하인들까지 우리 모자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진이의 두 아내는 미모와 덕성이 정 씨보다 빼어난데다가 또 진이가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으니, 종족(宗族)들이 우러러보고 종놈들까지도 꼬여드는 모습이 예전보다 더하구나. 저놈이 한번 서울로 가서 위로는 천자의 총애를 얻고 아래로는 친구들을 동원하여 세력을 얻는다면, 용이 구름을 타고 호랑이가 바람을 얻은 것 같아서 그 세력을 어찌하지 못할 게야. 그러니 이곳에 머물게 해 놓고 괴롭히면서 상춘정의 원한을 갚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네,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 춘이 대답했다. 그리하여 하루는 화춘이 한림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조정에 계실 때에 특별히 어려운 일이 없었는데도 너는 아버지께 벼슬에서 물러나시라고 권했다. 그런데 이제 나라의 정치가 나날이 어지러워져서 벼슬하는 것이 위태로운데도 너는 오히려 양양 자득하여 출세하려고 하는구나. 참으로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게냐?” 

  한림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 “형님이 그리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찌 명심하지 않겠습니까?” 

  한림은 즉시 고을 관아를 통해서 고향에 남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청하는 사직서를 올렸다. 천자는 간곡 한 청을 보고 불쌍히 여겨 일 년의 말미를 주었다. 한림은 이로부터 죽우당에 홀로 머물면서 책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심 씨가 계향 등을 시켜 유언비어로 선동하여 온갖 욕을 해댔고, 사람이 차마 먹을 수 없는 쓴나물과 상한 밥을 주었지만, 한림은 태연하게 견뎠다. 심 씨는 또 두 부인에게 바느질과 베 짜기, 수놓기 등 온갖 힘든 일을 시켰는데, 두 부인이 타고난 재주로 심 씨의 분부대로 일을 척척 해내니 아무리 포악 한 심 씨라도 꼬투리를 잡기 힘들었다. 


■ 전체 줄거리

 화욱은 심 씨, 요 씨, 정 씨 세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요 씨는 딸을 낳고 일찍 죽고, 정 씨는 아들 화진을 낳았지만 그가 장성하기 전에 죽는다. 심 씨가 낳은 맏아들 화춘이 변변치 못하여 화욱은 화진을 편애하고, 이 때문에 심 씨와 화춘은 불만을 가진다.

 화욱은 조정에 간신이 득세하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화춘을 결혼시킨 후 화욱이 죽자, 심 씨와 화춘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화진과 그의 아내를 괴롭힌다. 화진은 과거를 치르고 벼슬을 하지만, 화춘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화진의 아내도 누명을 쓰고 내쫓긴다. 화진은 유배지에서 도사인 곽 공을 만나 병서를 배우는데, 해적이 노략질을 일삼자 백의종군하여 해적을 토벌한다. 이로 인해 조정에서는 화진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고, 화진은 정남 대원수가 되어 남방을 모두 평정한다. 한편 심 씨와 화춘은 개과천선하고, 쫓겨났던 화진의 아내도 돌아와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 핵심 정리

• 갈래 : 가정 소설, 도덕 소설

• 성격 : 교훈적, 유교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중국 명나라 때

• 제재 : 일부다처(一夫多妻)와 대가족 제도 아래에서 일어나는 가정의 풍파

• 주제 : 충효(忠孝) 사상의 고취와 권선징악(勸善懲惡)

• 특징 :

 ① 교훈적 주제 의식을 지님.

 ② 인물의 개성을 부각하고 치밀하게 구성하여 소설적 흥미가 풍부함.

• 연대 : 조선 숙종 때


■ 작품 해설 1

 ‘창선감의록’은 사대부 가문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함을 다룬 가정 소설이다. 악한 처와 착한 첩 사이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한 사대부 집안의 가장의 삶과 가문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어 충효와 형제간의 우애라는 유교적 이념과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교훈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창선(彰善)’은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뜻이며, ‘감의(感義)’는 의리에 감복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은 ‘착한 행실을 세상에 알리고 의로운 일에 감동받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람의 성품은 본래 선하다는 작가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반동적 인물 ‘심씨’와 그녀의 아들 ‘화춘’은 한때 악행을 저지르지만 나중에는 잘못을 스스로 뉘우친다. 이는 주동 인물(주인공)은 승리하고 반동 인물은 패망한다는 고전 소설의 일반적 구성과는 달리, 반동 인물도 끝내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구제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천재교육, 천재학습백과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사대부 가문에서 일어나는 부인들 간의 갈등과 모함을 다루고 있는 가문 소설이다. ‘착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의로운 일에 감동받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의미와 같이, 부인들 간의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도 한 사대부 집안을 배경으로 형제간의 우애,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 EBS수능특강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작품의 의미

 이 소설은 플롯이 복잡하지만, 주제 의식은 남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를 근본으로 해야 하며 형제간의 우애나 선행은 다 여기서 나온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시종일관 교훈적이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진은 큰어머니 심씨와 이복형 춘이 터무니없이 자신을 모함하여도 변명하려 하지 않는데, 이는 자기가 변명하여 사실을 밝혀 심씨와 춘이 화를 당하게 하깁다는 차라리 자기가 누명을 쓰는 쪽을 택한다. 이것은 뛰어난 효성심의 발로이며, 작가는 이런 인물을 독자가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다른 고전소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이 50여명이나 되며, 인물의 유형은 고전소설이 다 그렇듯이 선인과 악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인물들은 전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개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개성적인 인물들을 표현하여,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이 되고 있다.


 2. 인물 처리 방식

 고전 소설에서 악행이 드러나는 방식이 대개 ‘춘향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처럼 선인이 악인의 죄를 밝히는 것이 있고, ‘창선감의록’처럼 악인들 사이의 내부 갈등에 의해서 그들의 죄상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는 것보다 악인을 선별 처리하여 개과시켜 구제하고 있다.


 3. 문학적 의의

 14회장(回章)의 한문소설로 작품의 구상과 묘사가 치밀하여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 버금가는 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내용은 중국 명(明)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일부다처와 대가족제도 아래서 일어나는 가정의 풍파, 즉 제2부인 소생(所生)을 제1부인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는 줄거리로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주제이다.


 4. 작품 속 등장인물

* 화욱 : 개국 공신 화운의 칠대손. 엄숭이 정권을 장악하고 언관을 탄압하자 사직하고 소흥으로 귀향한다.

* 성 부인 : 화욱의 누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화욱의 집에서 함께 산다.

* 심씨 : 화욱의 첫째 부인이며 화춘의 친모. 화춘의 장자 자리를 지키고자 온갖 악행을 저지르나 훗날 개과천선한다.

* 요씨 : 화욱의 둘째 부인. 화빙선을 낳고 요절한다.

* 정씨 : 화욱의 셋째 부인. 화진의 친모이다.

* 화춘 : 화욱의 맏아들. 어리석고 거친 성품을 가지고 있다.

* 화진 : 화욱의 둘째 아들. 총명하고 어진 성품을 가지고 있다.

* 화빙선 : 화욱의 딸. 화진과 함께 심씨와 화춘에게 구박을 받는다.


 5. ‘창선감의록’의 개성적 인물

 ‘창선감의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유형을 크게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 천편일률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특성을 부각하여 개성을 살린 것이다. 예컨대 화진과 그의 처남 윤여옥은 둘 다 선인이지만 서로 대조적이다. 화진은 성현 군자답게 점잖은 반면, 윤여옥은 담대하고 적극적이다. 화진의 두 부인 윤 소저와 남 소저도 둘 다 고귀한 가문 출신의 재자가인(才子佳人)이지만 윤 소저가 순종적이고 참을성이 많은 데 비해 남 소저는 엄격하고 모가 난 성품이다. 이처럼 고전 소설의 전형적 인물상에서 벗어나 각 인물의 개성이 부각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주체적 인간상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6. 인물 간의 갈등 양상

 - 심씨 VS 화진 : 화욱의 정실 부인과 셋째 부인 아들 간의 갈등

 - 화춘 VS 화진 : 이복형제 간의 갈등

 - 화춘 VS 임씨 : 부부 간의 갈등

 - 조씨 VS 남채봉 : 동서 간의 갈등

 - 성 부인 VS 심씨 : 시누이와 올케 간의 갈등


■ 작가 소개

조성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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