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 - 김만중



■ 본문

  유 상서(劉尙書)가 역마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다가 서주 땅을 지나가게 되었다. 상서는 교 씨의 일을 알아보려고 일부러 며칠 동안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하인 여러 명을 주막으로 보냈다. 곧 ‘교 씨가 냉진을 따라갔다가 냉진이 죽은 후 창기(娼妓)가 되어 그곳까지 온 실상’을 자세히 알아보게 하였다.

  이윽고 상서는 매파(媒婆)를 불러 많은 상금을 하사하고 그녀에게 일렀다.

  “조칠랑을 만나 이러이러하게 이야기하거라.”

  매파는 즉시 떠나 교 씨를 만났다.

  “지금 예부 최 상서(崔尙書)께서 천자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시는 길이라네. 이곳을 지나가다가 칠랑의 명성을 듣고 그대를 취하여 소실(小室)로 삼았으면 하시네. 상서는 당조(當朝)의 이름난 재상이지. 연세는 마흔이 채 되지 않았으며 집안도 또한 매우 부유하네. 다만 부인께서 병으로 집안일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지. 칠랑이 그 댁으로 들어간다면 이름은 비록 첩이라 하나 실은 부인과 다름이 없을 것이야. 칠랑의 의향은 어떠한가?”

  교 씨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유 상서가 계략으로 교 씨를 잡아들이려 함.

  매파가 다시 말했다.

  “상공께서 부인과 동행하는 중이시지. 일을 주선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어. 그래서 칠랑으로 하여금 조금 뒤에 상경하여 함께 성친(成親)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신다네.”

  “알겠습니다.”

  매파가 돌아가 상서에게 그대로 아뢰었다.

  상서는 즉시 의상 · 패물 · 거마 · 교군 등을 갖추게 하였다. 그리고 칠랑을 이끌고 뒤따라오게 하였다.

  상서는 서울에 도착하여 천자에게 사은(謝恩)하였다. 그리고 옛집으로 물러가 안팎을 청소하고 종족을 모두 모이게 하였다.

  사 부인은 그제야 비로소 두 부인을 만났다. 두 사람의 희비의 정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 부인이 임 씨를 불러 두 부인에게 배알(拜謁)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지난번 사람과는 다릅니다. 부인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어질다 해도 끝내 이로울 일은 없을 것이네.”

  두 부인도 역시 인아의 일 때문에 임 씨에게 사례하였다.

  마침 상서가 미소를 지으며 두 부인에게 고했다.

  “소질(小姪)이 산동 노상에서 가인(佳人)을 한 사람 얻었습니다.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하시겠습니까?”

▶유 상서가 잡아들인 교 씨를 두 부인에게 보이려 함.

  아환(丫鬟) 둘이서 교 씨를 인도하고 섬돌 아래로 나아갔다. 이윽고 비로소 얼굴 가리개를 걷으며 교 씨에게 말했다.

  “상공과 부인께서 당상에 계십니다. 예를 올리시지요.”

  교 씨가 눈을 들어 당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본디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 유 상서와 사 부인이 두 부인을 모시고 앉아 있었다. 좌우의 사람들도 모두 유씨 종족이었다.

  교 씨는 간담이 서늘하여 땅바닥에 엎드린 채 무수히 머리를 조아렸다.

  “상공!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교 씨가 살려 줄 것을 간청함.

  상서는 목소리를 높여 교 씨를 꾸짖었다.

  “음부(淫婦)는 죄를 알고 있느냐?”

  “어찌 모르겠습니까? 첩의 죄는 비록 머리카락으로 헤아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남는 죄가 있을 것입니다.”

  상서가 다시 꾸짖었다.

  “너에게는 열두 가지 큰 죄가 있느니라. 처음 부인께서 너에게 경계하여 ‘음란한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은 호의로 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너는 인체(人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에게 참소하였다. 그것이 첫 번째 죄이니라. 너는 이십랑과 함께 요망한 짓을 하여 장부를 고혹하게 하였다. 그것이 두 번째 죄이니라. 음란한 종년을 사주하여 동청과 사통하게 하고 그들과 결탁하여 한패를 이루었다. 그것이 세 번째 죄이니라. 스스로 죄를 저질러 놓고 그 화를 부인에게 전가하였다. 그것이 네 번째 죄이니라. 스스로 동청과 사통하여 문호(門戶)에 욕을 끼쳤다. 그것이 다섯 번째 죄이니라. 옥환(玉環)을 몰래 훔쳐 간인(奸人)에게 주고 ‘부인이 음행을 저질렀다.’고 모함하게 하였다. 그것이 여섯 번째 죄이니라. 스스로 아들을 죽여 놓고 부인을 대악(大惡)에 빠지게 하였다. 그것이 일곱 번째 죄이니라. 도적을 보내 부인을 해치려 하였다. 그것이 여덟 번째 죄이니라. 간부(奸夫)와 공모하여 나를 엄 승상에게 참소하였다. 그것이 아홉 번째 죄이니라. 유씨 집안의 재물을 모두 탈취한 후 간부를 따라갔다. 그것이 열 번째 죄이니라. 인아를 물속에 던지게 하였다. 그것이 열한 번째 죄이니라. 장사 노상에서 도적을 보내 나를 해치려 하였다. 그것이 열두 번째 죄이니라. 음부는 이와 같이 천지 사이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열두 가지 죄목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고도 오히려 살기를 바라느냐?

      ▶유 상서가 교 씨의 죄를 추궁함.

  교 씨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들은 모두 첩의 죄입니다. 하지만 장주를 해친 것은 납매가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옥환을 훔쳐 냉진에게 준 것, 상공을 엄 승상에게 참소한 것, 상공에게 도적을 보낸 것 등은 모두 동청이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교 씨는 다시 사 부인에게 목숨을 빌었다.

  “첩은 실로 부인을 저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부인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첩의 잔명을 살려 주십시오.”


■ 핵심 정리

• 갈래 : 국문 소설, 가정 소설, 풍간 소설, 목적 소설

• 성격 : 비판적, 교훈적, 상징적

• 배경 : 중국 명나라 초기, 중국 북경 금릉 순천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처첩 간의 갈등

• 주제 : 처첩 간 갈등에 따른 사 씨의 고행, 권선징악 / 인현왕후 폐출에 대한 부당함 풍자

• 인물

 - 사씨 ; 현모양처로서 성품이 곱고 착한 여인의 전형

 - 교씨 ; 위선적이며 교활하고 표독스런 악인의 전형

 - 유연수 ; 판단력이 없고, 양반 사대부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봉건적 사고방식을 지닌 전형적 인물이나 본성은 착하다.

 - 동청 ; 교씨의 정부(情夫)로써 악인의 전형

 - 엄숭 ; 유한림을 제거하는데 앞장을 서는 간신.

• 특징 :

 ① 중국을 배경으로 제시하여 당대 부정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함.

 ② 처첩 간의 갈등을 통해 당대 사회적 분위기와 풍속을 짐작할 수 있음.

 ③ 선악의 성격이 분명한 인물형을 대립시킴.


■ 전체 줄거리

  중국 명나라 세종 때 금릉 순천부에 사는 개국 공신 유기의 후손 유현은 늦게야 아들을 얻는데, 유현의 부인 최 씨는 연수를 낳고 이내 세상을 떠난다. 연수는 열다섯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신성현에 사는 사후영댁의 사 소저와 결혼하였으나 구 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자, 사씨 부인이 유연수에게 첩을 들일 것을 권하여 마침내 교채란을 첩으로 맞아들인다.

 간악학 교 씨는 아들을 낳자, 집사로 있는 동청과 사통하면서 정실부인이 되기 위해 온갖 흉계를 꾸며서 사 씨 부인을 모함하기 시작한다. 사 씨 부인이 친정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간병 차 친정으로 가고, 유연수가 산둥 지방으로 파견되자 교 씨와 동청은 사 씨 부인의 옥지환을 훔쳐서, 사 씨 부인이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한 듯이 흉계를 꾸민다. 그리고 교 씨는 둘째 아들 봉추를 출산하자, 시비인 납매와 상의하여 큰아들 장주를 독약 먹여 주인 뒤에, 그 혐의도 사 씨 부인에게 뒤집어씌운다. 이러한 계교를 알지 못하는 유연수는 사씨 부인을 내치고 교 씨를 정실부인으로 삼는다.

 쫓겨난 사 씨 부인은 친정으로 가지 않은 채, 시아버지의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지내다가, 교 씨가 보낸 일당에게 쫓겨 동정호에서 자결하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신만고 끝에 수월함에 머물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유연수도 동청과 교 씨의 모함으로 엄승상에 의해 유배되고, 동청은 엄 승상의 도움으로 지방관이 된다. 시녀 설매는 교 씨로부터 사 씨 부인의 아들 인아를 죽이라는 사주를 받으나, 양심의 가책으로 죽이지 못하고 숲 속에 감추어 둔다.

 유배에서 풀려난 유연수는 설매를 통해 그동안 교 씨가 행한 모든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러나 동청 일당의 추격을 받고 강물에 투신하게 되는데, 마침 묘혜와 사 씨 부인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부부가 마침내 상봉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엄 승상의 죄가 폭로되어 삭탈관직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냉진은, 동청을 밀고하여 옥에 갇히게 한 뒤, 교 씨와 함께 달아나다가 보물을 모두 빼앗기게 되고, 이후 도적들의 무리에서 섞여 살다가 죽임을 당한다.

 황제로부터 이부 시랑을 제수 받은 유연수는 군산사에서 7년이나 소복을 입고 지내던 사 씨 부인을 정실부인으로 다시 데려오고, 사 씨 부인의 청을 들어 묘혜 스님의 질녀인 임 낭자를 후처로 맞아들이는데, 후처인 임 씨가 사 씨 부인의 아들 인아를 맡아 기른 은인임을 알게 된다. 유연수는 임씨에게서 세 아들을 얻고, 예부 상서로 승차되며, 교 씨는 낙양에서 창기 노릇을 하다가 유연수 일족들에게 잡혀 죽음을 맞는다. 유연수는 좌승상을 거쳐 사 씨, 임 씨 두 부인과 함께 네 명의 자녀를 두고, 팔십여 세까지 부귀영화를 누린다.

- 타임 기획, 소설 119플러스 참고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양반 사대부인 유한림의 가정에서 벌어진 처첩 간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었으며, 후처의 모략으로 고생하던 본처가 남편과 재회하여 행복하게 살고 후처는 처형당한다는 내용을 통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한편 이 작품의 ‘사 씨’를 인현왕후로 본다면, 인현왕후를 옹호하다 귀양을 간 김만중이 인현왕후 폐위의 부당성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숙종 15년~18년 사이에 작자가 유배지에서 지었다고 하는 작품으로, 한 가정 안에서 처첩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암투를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작가 김만중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품성 가운데 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교 씨와 동청을 중심으로 한 음모자들의 활약과 그들의 욕망 실현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사 씨 부인을 등장 시켜서, 부인의 부덕(婦德)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을 따르는 시비들의 역할을 통해 한 가정 안에서 구성원 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씨남정기’는 다른 고전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연성의 개입과 전기적(傳奇的) 구성을 면하기 어렵지만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문 투의 어려운 표현을 피하고, 속담이나 격언을 적절히 이용하였으며, 우리말 구사가 뛰어난 구어체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권선징악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에서 정실인 사 씨 부인을 이상적인 인물로 형상화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가정 소설로 숙종의 후비인 인현 왕후와 희빈 장 씨의 사건과 유사하여, 숙종이 인현 왕후를 폐위시키고 장 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것을 작가 김만중이 왕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풍자적으로 지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 타임기획, 소설119 플러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작품 창작의 동기 - 인현왕후 폐위 사건에 대한 우회적 풍자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사건을 우회적으로 풍자하여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숙종은 장희빈의 무고(誣告)로 인현왕후를 폐위시킨다. 이후 장희빈의 모함을 알아차린 숙종이 장희빈을 처형하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킨다. ‘사씨남정기’도 첩 교 씨의 모해로 정실 부인인 사 씨가 폐출되고 이후 유연수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 씨를 복권시킨 뒤, 교 씨를 처형한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사 씨 부인은 인현왕후를, 유연수(유한림)은 숙종을, 교 씨는 장희빈을 각각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사씨남정기’에서 꿈

 이 소설의 구성면에서는 다른 고전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천우신조(天佑神助)와 우연성이 사건 전개에 큰 역할을 한다. 서부인이 쫓겨나 있을 무렵 두 부인의 위조 편지를 받고 비몽사몽간에 최부인이 현몽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 외 유연수의 중병을 고치는 일, 위기에서 구출되는 일 등이 모두 현몽의 덕분이다. 이는 소설의 필연성을 약화시켜 사실감을 감퇴시키고 있다.


■ 작가 소개

김만중 –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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