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술법 높은 학대사는 괴이한 꾀 나는지라, 동자 시켜 짚 한 단을 끌어내어 허수아비 만들어 놓고 보니 영락없는 옹고집의 불측한 상이렷다. 부적을 써 붙이니 이놈의 화상, 말대가리 주걱턱에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옹가였다.
허수아비 거드럭거드럭 옹가집을 찾아가서 사랑문 드르륵 열며 분부할 제,
"늙은 종 돌쇠야, 젊은 종 몽치, 깡쇠야, 어찌 그리 게으르고 방자하냐? 말 콩 주고 여물 썰어라! 춘단이는 바삐 나와 발 쓸어라."
하며 태연히 앉았으니,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분명한 옹좌수였다.
이 때 실옹(實擁哥)가 들어서며 하는 말이,
"어떠한 손이 왔기로 이렇듯 사랑채가 소란하냐?"
허옹가(虛擁哥)가 이 말 듣고 나앉으며,
"그대 어쩐 사람이기로 예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주인인 체하느뇨?"
실옹가 버럭 성을 내며 호령하되,
"네가 나의 형세 유족함을 듣고 재물을 탈취코자 집안으로 당돌히 들었으니 내 어찌 그저 두랴! 깡쇠야, 이놈을 잡아내라."
노복들이 얼이 빠져 이도 보고 저도 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나 이옹 저옹이 같은지라, 두 옹이 아옹다옹 맞다투니 그 옹이 그 옹이요, 백운심처(白雲深處) 깊은 곳에 처사 찾기는 쉬울망정, 백주당상 이 방 안에 우리 댁 좌수님 찾을 가망 전혀 없어, 입 다물고 말 없더니, 안채로 들어가서 마님께 아뢰기를,
"일이 났소, 일이 났소! 아씨님 일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둘이 되었으니 보던 중 처음입니다. 집안에 이런 변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마님이 이 말 듣고 대경실색하는 말이,
"애고 애고, 이게 웬 말이냐? 좌수님이 중만 보면 당장에 묶어 놓고 악한 형벌 마구 하여 불도를 업신여기며, 팔십 당년 늙은 모친 박대한 죄 어찌 없을까보냐? 땅 신령이 발동하고 부처님이 도술 부려 하늘이 내리신 죄, 인력으로 어찌하리?"
마나님은 춘단 어미를 불러들여 분부하되,
"바삐 나가 네가 진위(眞僞)를 가려 보라."
춘단 어미가 사랑채로 바삐 나가, 문틈을 열고 기웃기웃 엿보는데,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다!' 하고 서로 고집하여 호령호령하니 말투와 몸놀림이 똑같은데, 이목구비(耳目口鼻)도 두 좌수가 흡사하니, 춘단 어미 기가 막혀 하는 말이,
"'뉘라서 까마귀 암수를 알아 보리요?' 하더니, 뉘라서 어찌 두 좌수의 진위를 가리리요?"
춘단 어미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마님! 두 좌수님 모두가 흡사하와, 소비는 전혀 알아볼 수 없사옵니다."
마나님이 생각난 듯 하는 말이,
"우리집 좌수님은 새로이 좌수 되어 도포를 성급히 다루다가 불똥이 떨어져서 안자락이 탔으므로, 구멍이 나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면 진위를 가릴지라, 다시 나가 알아 오라."
춘단 어미 다시 나와 사랑문을 열어 제치면서,
"알아볼 일 있사오니 도포를 보사이다. 안자락에 불똥 구멍 있나이다."
실옹가가 나앉으며 도포 자락 펼쳐 뵈니, 구멍이 또렷하니 우리댁 좌수님이 분명하것다. 허옹가도 뒤따라 나 앉으며,
"예라 이 년! 요망하다, 가소롭다! 남산 위에 봉화 들 때 종각 인경 뗑뗑 치고, 사대문을 활짝 열 때 순라군이 제격이라, 그만 표는 나도 있다."
허옹가가 앞자락을 펼쳐 뵈니 그도 또한 뚜렷하것다. 알 길이 전혀 없는지라, 답답한 춘단 어미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불러 아뢰기를,
"애고 이게 웬 변일꼬? 불구멍이 두 좌수께 다 있으니 소비는 전혀 알 수 없소이다. 마님께서 몸소 나가 보옵소서." <후략>
■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소설, 판소리계소설
• 성격 : 해학적, 풍자적
• 관련설화 : 장자못 설화
• 구성
- 발단 : 고약하고 인색한 옹고집이 어머님께 불효하고 스님을 능멸함
- 전개 : 도사가 옹고집을 벌 주려고 가까 옹고집을 만듦
- 위기 :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이 진위를 다툼
- 절정 : 진짜 옹고집이 송사에서 쫓겨나 거지가 되어 떠돎
- 결말 : 도사의 용서로 진짜 옹고집이 가정을 되찾고 개과천선하여 행복하게 삶
• 주제 : 인간의 참된 도리에 대한 교훈, 권선징악(勸善懲惡)
■ 전체 줄거리
옹정 옹연 옹진골 옹당촌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질이 괴팍하여 고집이 세고 인색하기만 해서, 팔순의 병든 노모가 냉방에 누워 있어도 돌보지 않았다.
이 때, 월출봉 비치암에 도통한 도승이 있어, 학대사라는 중을 보내 옹고집을 꾸짖으려 하였다. 그러나 학대사는 옹고집에게 매만 맞고 돌아온다. 이에 도승은 옹고집을 징벌하기 위하여, 허수아비에 부적을 붙여 가짜 옹고집을 만들었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의 집에 나타나자, 둘은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다투게 된다.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까지 나섰으나 누가 진짜인지를 판별하지 못해 마침내 관가에 소송을 하게 되었다. 원님이 옹가의 족보를 가져오라 해서 물어 보니, 가짜가 더 잘 알았다. 진짜 옹고집은 가짜 옹고집으로 몰려 곤장을 맞고 내쫓긴 다음에 걸인 신세가 되었다.
가짜 옹고집은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편안하게 살았다. 그러나 진짜 옹고집은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쳤으나 때가 너무 늦어 어쩔 도리가 없어 자살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가 산 속으로 들어가 막 죽으려 할 때, 바로 월출봉 비치암의 도승이 나타나 옹고집을 훈계한다. 옹고집이 진심으로 뉘우치자, 도승은 부적을 하나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옹고집이 집에 돌아가 그 부적을 던지니, 그 동안 집을 차지하고 있던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한다. 진짜 옹고집은 비로소 새 사람이 되어 착한 일을 하고 또한 불도를 열심히 믿게 되었다.
■ 작품 해설 1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원래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였다고 하지만 판소리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발견되지 않고, 김삼불(金三不)이 1950년에 필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주석본을 출간한 바 있다. 그 때 사용한 필사본은 전하지 않는다. 그 밖에 최내옥본(崔來沃本) · 강전섭본(姜銓 瓏 本) ·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본(舊 金東旭本)의 필사본이 있다.
옹정 옹연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곳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고약해서 풍년을 좋아하지 않고, 매사에 고집을 부렸다. 인색하기만 해서, 팔십노모가 냉방에 병들어 있어도 돌보지 않는다.
월출봉 비치암에 도통한 도승이 있어서, 학대사라는 중에게 옹고집을 질책하고 오라고 보낸다. 그런데 학대사는 하인에게 매만 맞고 돌아간다. 도승은 이 말을 듣고 옹고집을 징벌하기로 한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부적을 붙이니 옹고집이 하나 더 생겼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의 집에 가서, 둘이 서로 진짜라고 다투게 된다.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이 나섰으나 누가 진짜 옹고집인지를 판별하지 못해서 마침내 관가에 고소를 하게 된다. 원님이 족보를 가져오라고 해서 물어보니, 가짜가 더 잘 안다. 진짜 옹고집은 패소(敗訴)하고 곤장을 맞고 내친 다음에 걸식을 하는 신세가 된다. 가짜 옹고집은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산다.
옹고집의 아내는 다시 아들을 몇 명이나 낳는다. 진짜 옹고집은 그 뒤에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나, 어쩔 도리가 없어 자살하려고 산중에 들어간다. 막 자살을 하려는데 도승이 나타나서 말린다. 바로 월출봉 비치암의 도승이다. 옹고집이 뉘우치고 있는 것을 알고 부적을 하나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 그 부적을 던지니, 그동안 집을 차지하고 있던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한다. 아내가 가짜 옹고집과 관계해서 낳은 자식들도 모두 허수아비였다. 그러자 진짜 옹고집은 비로소 그동안 도술에 속은 줄 알고서, 새사람이 되어서 착한 일을 하고, 또한 불교를 열심히 믿는다.
이 작품은 우선 설화소설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냥 온 중을 괄시해서 화를 입게 되었다는 설정은 ‘장자못이야기’ 와 상통한다. 부자이면서 인색하기만 한 인물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도승이 도술을 부렸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러면서 가짜가 와서 진짜를 몰아내게 되었다는 줄거리는 쥐를 기른 이야기와 같다.
쥐에게 밥을 주어서 길렀더니 그 쥐가 사람으로 변하여 주인과 진짜 싸움을 한 끝에 주인을 몰아냈다는 유형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인데, 이 작품에 수용되었다. 이처럼 설화를 적극 수용한 것은 판소리계 소설의 일반적 특징과 연결된다. 옹고집이라는 인물은 놀부와 상통한다.
심술이 많고 인색한 점에서 이 둘은 공통적인데, 금전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인간형으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오직 부를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여 윤리도덕이나 인정 같은 것은 온통 저버린 부류가 나타나자, 이에 대한 반감이 작품을 통해서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반감이 새로운 사회윤리를 제시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전래적인 가치관과 불교신앙을 다시 긍정하고 만 것은 작품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흥부전〉 에 비한다면, 작품 설정도 단순하고, 수법도 수준이 낮다 할 수 있다.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로 불리다가 전승이 중단되고, 필사본마저도 널리 전파되지 않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작품 전개에 도술을 개입시켜 현실감을 살리지 못한 편이고, 과장이나 말장난에서 흥미와 웃음을 찾으려고 하였다. 좀 더 사실적인 소설이 나타나자, 이런 특징 때문에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리라고 추정된다.
■ 심화 내용 연구
1. ‘옹고집’과 ‘놀부’의 인간형
흥부전의 ‘놀부’와 옹고집전의 ‘옹고집’은 심술이 많고 인색하다는 점에서 그 인간형이 비슷하다. ‘옹고집’과 ‘놀부’ 모두 조선 후기 계층의 분화에 따라 등장한 신흥 서민 부자 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극단의 이기적인 행동과 사회 윤리를 무시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옹고집전’은 ‘흥부전’과 함께 바로 이런 악덕 서민 부자에 대한 일반 서민들의 반감을 기반으로 한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소설로 볼 수 있다. 현대 소설에서도 이와 같은 놀부형 인물이 등장하는데,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윤직원은 일제가 조장한 상업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자신의 부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에서의 ‘이중성’ 같은 인물을 옹고집과 놀부의 후예로 볼 수 있다.
2. 장자못 설화
인색한 부자가 중에게 쇠똥을 주었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의 설화. 증거물을 동반한 지명설화로 흔히 장자의 악행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몰래 시주한 며느리가 중이 제시한 금기를 어겨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붙어 있다. 이 설화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지명전설의 하나이다.
현재 장자못이 있다고 확인된 곳만 하여도 강원도 태백시의 황지못을 비롯하여 백여 군데가 된다. 풍부한 구전설화에 비하여 문헌자료는 거의 없는 편으로 ≪조선읍지≫에 구전 자료를 기록한 두 편이 있을 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주 인색하고 포악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중이 와서 동냥을 달라고 하자, 장자는 외양간을 치고 있다가 쌀 대신 쇠똥을 바랑에 넣어 주었는데 중은 그냥 받아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장자의 며느리가 몰래 쌀을 퍼다가 바랑에 담아 주었다. 그러자 중이 “당신이 살려면 지금 나를 따라오되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 는 금기를 주었다.
며느리는 집을 떠나(혹은 기르던 개를 데리고, 아기를 업고, 베틀을 이고) 산을 오르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참고 돌아보지 않았으나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보았다. 며느리는 자기가 살던 집이 못이 되었으므로 놀라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 지금도 그 부자의 집터가 변한 못과 바위가 남아 있다.
이 설화에서 중은 도승, 또는 거지로 변이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며느리는 딸·아내·하녀로 변이되기도 한다. 결구에서 며느리바위는 미륵바위·벼락바위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장자의 집이 못이 될 때에 장자는 구렁이로 변해서 그 못에서 살고 있다는 변이형도 있다. 이 설화는 크게 부자가 중을 학대한 벌로 집이 함몰하였다는 장자못 부분과, 며느리가 금기를 어겨 돌이 되었다는 화석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증거물에 따라 때때로 어느 한 부분만이 따로 이야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대체로 앞의 장자못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타난다. 이 설화의 앞부분인 인색한 부자의 악행과 그에 대한 징벌로서의 패망은 몇 가지 유사한 설화 유형으로 변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색한 부자가 지나가는 중을 학대하였더니, 그 중이 부자에게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속이고는 현재 발복(發福)의 근원인 명당의 혈(穴)을 자르게 하였다. 탐욕스러운 부자는 욕심이 나서 그대로 하였다가 망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징벌의 수단으로 풍수리지설을 이용한다. 유사한 설화로는 자기 집 종을 학대하자 종의 자식이 집을 나가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주인집의 명당혈(明堂穴)을 자르게 하여 망하게 하였다는 유형도 있다.
이러한 변이형은 악행을 저지른 부자의 탐욕을 역이용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악행에 대한 응징이라는 주제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장자못 설화는 단순한 악행응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등장하고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은 각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중은 초자연적인 세계의 절대선적(絶對善的)인 질서를 대변하는 존재이고, 장자는 세속적인 본능적 욕망의 표상이며, 며느리는 초월적 질서와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장자못설화가 권선징악적 교훈 이상의 인간의 존재 양상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담은 설화임을 말해 준다. 이 설화는 구약성서의 ‘소돔과 고모라’ 와도 비교된다. 두 이야기는 문화적 · 종교적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설화의 세계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이 설화는 광범위하게 전승되므로 향유층의 의식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폭넓은 분포와 전승 과정에서 파생된 변이는 설화 변이의 연구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고대소설 〈옹고집전〉 이 형성되게 한 근원설화이며, 현대소설 〈인간문제〉와 〈돌〉의 소재가 됨으로써 설화의 소설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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