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할 만한 자리 - 박지원



■ 본문

7월 초8일 갑신일


 맑다.


 정사와 한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조반을 먹었다. 십여 리를 가다가 산기슭 하나를 돌아 나가니 태복(泰卜)이란 놈이 갑자기 국궁(鞠躬)을 하고는 말 머리로 쫓아와서 땅에 엎드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현신하였기에, 이에 아뢰나이다.”

한다. 태복은 정 진사의 마두이다.

 산기슭이 가로막고 있어 백탑이 보이지 않기에 말을 급히 몰아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났는데, 안광이 어질어질하더니 홀연히 검고 동그란 물체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란 본래 의지하고 붙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이리저리 나다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했더니 정 진사가,

 “천지간에 이렇게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서는 별안간 통곡할 것을 생각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그렇긴 하나, 글쎄. 천고의 영웅들이 잘 울고, 미인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하나,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굴러떨어진 정도에 불과하였지, 그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 하는 등의 소리를 질러 대지.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느껴서 나오는 지극하고 진실한 통곡 소리는 천지 사이에 억누르고 참고 억제하여 감히 아무 장소에서나 터져 나오지 못하는 법이네.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적당한 통곡의 자리를 얻지 못해 울음을 참다가 견뎌 내지 못하고 갑자기 한나라 궁실인 선실(宣室)을 향해 한바탕 길게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정 진사는,

 “지금 여기 울기 좋은 장소가 저토록 넓으니, 나 또한 그대를 좇아 한바탕 울어야 마땅하겠는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에 감동받아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나는,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칠정 중 어느 정에 감동하여 우는지? 갓난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와 달을 보고, 그다음에 부모와 앞에 꽉 찬 친척들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화를 낼 이치가 없을 것이고 응당 즐거워하고 웃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도리어 한없이 울어 대고 분노와 한이 가슴에 꽉 찬 듯이 행동을 한단 말이야. 이를 두고, 신성하게 태어나거나 어리석고 평범하게 태어나거나 간에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있고, 살아서는 허물과 걱정 근심을 백방으로 겪게 되므로, 갓난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갓난아이의 본마음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거짓과 조작이 없는 참소리를 응당 본받는다면,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동해를 바라봄에 한바탕 울 적당한 장소가 될 것이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모래 사장에 가도 한바탕 울 장소가 될 것이네. 지금 요동 들판에 임해서 여기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이백 리가 도무지 사방에 한 점의 산이라고는 없이, 하늘 끝과 땅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고금의 비와 구름만이 창창하니, 여기가 바로 한바탕 울어 볼 장소가 아니겠는가?”


 한낮에는 매우 더웠다. 말을 달려 고려총(高麗叢), 아미장(阿彌庄)을 지나서 길을 나누어 갔다. 나는 주부 조달동, 변군, 박래원, 정 진사, 겸인(傔人) 이학령과 함께 옛 요동으로 들어갔다. 번화하고 풍부하기는 봉성의 열 배쯤 되니 따로 요동 여행기를 써 놓았다. 서문을 나서서 백탑을 구경하니 그 제조의 공교하고 화려하며 웅장함이 가히 요동 벌판과 맞먹을 만하다. 따로 백탑에 대해 적은 〈백탑기(白塔記)〉가 뒤편에 있다.


■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 수필, 한문 수필, 기행 수필

• 성격 : 비유적, 교훈적, 사색적, 체험적

• 제재 : 광활한 요동 벌판

• 주제 :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며 느끼는 감회

• 특징 :

 ①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작가의 참신한 발상이 돋보임.

 ② 문답에 의한 구성 방식을 통해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함.

 ③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예시로 대상을 실감나게 표현함.


■ 작품 해설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문집 『연암집』 제11권 『열하일기』 중 「도강록」의 7월 8일자 일기(日記)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44살이 되던 1780년(정조 4년)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북경(北京)과 열하(熱河)를 여행하면서 쓴 일기인데, 6월 25일에 출발하여 10월 27일에 귀국하기까지 약 4개월간의 기록이다. 이 중 「도강록」은 압록강(鴨綠江)으로부터 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 동안의 체험을 일기로 쓴 것으로, 전문 1200여 자의 긴 글로 전날 7월 6,7일의 일기에 비하면 2배 정도의 많은 분량이다.

 제목 ‘호곡장론’은 ‘통곡할 만한 자리’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연암이 따로 붙인 제목이 아니고 후인들이 본문의 핵심 내용에 의거해 붙인 것으로,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좋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의 내용 중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이마에 얹고, “아.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 하구나.”라고 하였다.[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라는 구절에 의해서 붙여진 제목이다. 여기에 ‘논(論)’이 붙여진 까닭은 동행했던 정 진사와 ‘울음[哭]’과 ‘울어볼 만한 자리’에 대해서 논의(論議) 또는 의논(議論)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에 의하여 제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론하자면 ‘진정한 울음에 대한 논의’ 또는 ‘진정으로 울기 좋은 장소에 대한 논의’라고도 할 수 있다.

 한문 산문의 문체 분류상 기(記)는 잡기(雜記)와 필기(筆記)로 나뉘며, 본 작품은 잡기에 속한다. 나아가 잡기류는 산천(山川)·누대(樓臺)·대소사(大小事)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글이 대부분이고, 내용상 다양한 성격을 띠기 마련이어서 서사·의론·우언 형식 등으로 쓰는 소품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기사(記事: 사실을 기록)와 이에 의한 깨달음을 위주로 하며 ‘잊어버림에 대비’하기 위해 쓴다.

 아울러 『열하일기』는 작가가 중국을 다녀온 단순한 기행문 형식의 일기가 아니라, 당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청나라의 번창한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한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집대성한 사상사적 의의가 큰 글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문의 구성은 서두에 이어 기 - 서 - 결의 3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먼저 서두에서는 일기의 전형적인 내용으로, 맑은 날씨와 간단한 여정(旅程)이 제시된다. 그리고 마두 태복이 백탑이 보이기 시작함을 알린다.

 본문의 시작인 기(起)에서는 탁 트인 요동들녘을 난생 처음 본 순간의 충격적인 감회로 시작한다. 앞과 뒤가 산으로 막힌 조선의 비좁은 땅만 보면서 살아온 작가에게 던져진 광막한 대평원에 대한 충격적인 감상은, 인생이란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떠돌이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벅찬 감격의 순간을 작가는 “아! 울기 좋은 곳이로구나,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라고 하면서 별안간 ‘울음’을 생각한다. 벅찬 감격의 순간에 감탄 대신에 울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반인다운 발상이 아닌 작가만의 특이한 발상임은 물론이다.

 이어지는 서(敍)에서는 작가의 ‘울고 싶다’는 말에 대해 의아하게 느낀 동행하던 정 진사의 첫 번째 물음과 이에 작가의 답변으로 되어 있다. 답변 내용의 요지는 ‘울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보통사람들은 ‘울음’은 슬플 때만 우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칠정(七情: 사람들이 느끼는 일곱 가지의 감정) 모두가 극에 이르게 되면 울게 된다.

 즉, 기쁘고[喜], 화가 나고[怒], 슬프고[哀], 즐겁고[樂], 사랑하고[愛], 밉고[惡], 욕심이 일어[欲] 극에 이르게 되면 운다는 것이고,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버림에는 울음보다 빠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극한 정(情)이 이치(理致)에 맞으면 울음과 웃음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억지로 참고 억누르며 살다가, 상을 당했을 때나 억지로 슬퍼하면서 울부짖으며, 일상에서는 감히 나타내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울음에 대한 작가만의 사려 깊은 성찰과 분석력이 돋보이는 내용이다.

 결(結)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울음에 대한 분석에 대해, 다시 정 진사가 묻기를, 그러면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울어야 하는 울음은 칠정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작가는 갓난아이의 울음을 예로 들면서, 갓난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는 것은 태중에 있을 때의 캄캄하고 갑갑함에서 벗어나 훤한 곳으로 나온 시원함 때문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인간들도 갓난아이의 ‘꾸밈없는 울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도 비로봉(금강산의 정상)이나 황해도 장연(탁 트인 바닷가 마을)같은 곳도 울어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 요동의 들녘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서의 내용이 ‘울음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라면, 결에서는 ‘울음의 성격’과 ‘울만한 장소’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곧 갓난아이의 울음처럼 ‘꾸밈없는 울음’을 울 수 있는 ‘사방인 탁 트여 시원 곳’이 적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전문의 주 내용의 전개는 작가와 동행자인 정 진사와의 대화로 전개되며, 묻고 답하는 문답법이고 의론체(議論體: 각자 의견을 주장하거나 논의함)문장으로 전개되고 있다. 표현 면에서는 적절한 비유와 예시가 돋보이며, 성격 면에서는 사색적, 교훈적이다. 이 글의 빼어난 점은 울음에 대한 일반인의 보편적인 인식의 전환을 새롭게 유도하는 작가만의 참신하고 개성적인 발상이며, 깊은 사색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는 요동벌판을 보고 느낀 감회이다.

 -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호곡장론(好哭場論)


■ 심화 내용 연구(미래엔 국어교과서 참고)

1. 박지원의 가치관

 박지원은 조선의 낙후된 현실과 혼탁한 정치 상황, 양반 사회의 타락상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북학론을 통해 청나라의 앞선 문물제도 및 생활양식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으며,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이라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연암에게 요동 벌판은 개방적이고 다양한 선진 문물이 있는 공간이자 고루한 인습이 존재하지 않는 해방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2. 작품의 구성


3. 대상에 대한 관점의 차이


4. 비유적 표현의 의미

■ 작가 소개

박지원 – 인물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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