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머니 다리 곁에 가 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로 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事務)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질러 지난다. 구보는 그 사내와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위태롭게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구보는, 이렇게 대낮에도 조금의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자기의 시력을 저주한다. 그의 코 위에 걸려 있는 24도의 안경은 그의 근시를 도와주었으나, 그의 망막에 나타나 있는 무수한 맹점(盲點)을 제거하는 재주는 없었다. <중략>
구보는, 2주일간 열병을 앓은 끝에, 갑자기 쇠약해진 시력을 호소하러 처음으로 안과의와 대하였을 때의, 그 조그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시야 측정기’를 지금 기억하고 있다. 제 자신 강도(强度)의 안경을 쓰고 있던 의사는, 백묵을 가져, 그 위에 용서 없이 무수한 맹점을 찾아내었었다. / 그래도,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젊은 내외가, 너덧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낏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 게다. /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리고, 닫히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壽男)이나 복동(福童)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과 ─ 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안전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전차가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는 잠깐 머엉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기와 더불어 그곳에 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저 차에 오른다 보았을 때, 그는 저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구보는, 움직인 전차에 뛰어올랐다.
▶일상적인 행복을 생각하면서도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구보
<중략>
조그만
한 개의 기쁨을 찾아, 구보는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불어 드는 바람도 없이 양옆에 웅숭그리고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지게꾼들의 그 모양이 맥없다.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와 친하여야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직업의식은 어떻든 좋았다. 다만 구보는 고독을 삼등 대합실 군중 속에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고독을 느끼고 생기와 활력을 찾아 경성역으로 향하는 구보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구보가 한 옆에 끼어 앉을 수도 없게스리 사람들은 그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어도, 그들의 누구에게서도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거의 옆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 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 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 그것은 자기네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네들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그네들은 변소에 다녀올 동안의 그네들 짐을 부탁하는 일조차 없었다. 남을 결코 믿지 않는 그네들의 눈은 보기에 딱하고 또 가엾었다.
▶삭막한 경성역의 풍경
구보는 한구석에 가 서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노파를 본다. 그는 뉘 집에 드난을 살다가 이제 늙고 또 쇠잔한 몸을 이끌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어느 시골, 딸네 집이라도 찾아가는지 모른다. 이미 굳어 버린 그의 안면 근육은 어떠한 다행한 일에도 펴질 턱 없고, 그리고 그의 몽롱한 두 눈은 비록 그의 딸의 그지없는 효양(孝養)을 가지고도 감동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 노파 옆에 앉은 중년의 시골 신사는 그의 시골서 조그만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을 게다. 그의 점포에는 마땅히 주단포목도 있고, 일용 잡화도 있고, 또 흔히 쓰이는 약품도 갖추어 있을 게다. 그는 이제 그의 옆에 놓인 물품을 들고 자랑스러이 차에 오를 게다. 구보는 그 시골 신사가 노파와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 만약 그에게 옅은 지혜와 또 약간의 용기를 주면 그는 삼등 승차권을 주머니 속에 간수하고, 일, 이등 대합실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을 게다.
▶고독이 심화되는 경성역 대합실 풍경
문득 구보는 그의 얼굴에 부종(浮腫)을 발견하고 그의 앞을 떠났다. 신장염. 그뿐 아니라, 구보는 자기 자신의 만성 위확장(胃擴張)을 새삼스러이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구보가 매점 옆에까지 갔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도 역시 병자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40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의 광범한 팽륭(澎隆). 돌출한 안구. 또 손의 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세도우씨병.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좌우에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두 간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매점 앞의 병자와 사람들의 반응
■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세태소설, 모더니즘 소설
• 배경 : 시간적 - 1930년대,
공간적 – 서울, 경성의 거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관찰적, 사색적
• 제재 : 1930년대 서울의 모습
• 주제 : 소설가의 눈에 비친 서울의 일상적인 모습
• 특징 :
①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세태를 묘사함.
② 주인공의 하루의 생활을 소재로 삼음.
③ 몽타주 기법 등 실험적인 장치들을 사용함.
■ 전체 줄거리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 종로를 배회하다가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구보는 동대문행 전차 속에서 예전에 회담을 했던 여자를 발견한다. 구보는 그 여자를 모른 체했지만, 그 여자가 내리자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서 차를 마시다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보는 다시 고독을 피하기 위하여 경성역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본래의 온정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눈길들에 슬픔을 느낀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곳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게 된다. 그 동창은 중학 시절 열등생이었는데, 그와 동행하는 예쁜 여자를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강도와 방화범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느낀다. 구보는 다방에서 나와 동경에서의 옛사랑을 추억하고 그 여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또, 전보를 배달하는 차를 보고, 친구에게 편지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보는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이 모든 일이 가난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새벽 두시 경,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서 이제는 어머니를 위하여 결혼도 하고 창작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 작품 해설 1
이 소설은 1930년대에 시도되었던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소설 분야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는 아무런 목적과 계획 없이 도시를 배회한다. 그의 손에는 노트 한 권이 들려 있는데, 그에게는 자기가 겪은 우연한 일상들을 노트에 적는 것이 유일한 할 일이다. 자신의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의 일상적 풍경과 군중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고민한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을 통해 일제 강점하에서 돌파구가 없었던 지식인들의 고독과 도시인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작가의 실제 삶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로,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일과를 통해 당대의 타락한 현실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울 거리를 다니며 대상을 관찰하는 구보의 시각과 의식이 소설을 진행하는 중심 요솔, 전통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진술도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에 의존하고 있다. 이 기법은 이상의 초현실주의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기법으로 과거의 사랑을 회상하는 대목이 대표적인 예이다.
구보씨가 관찰한 것은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 노파, 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식민지의 도시 풍경이 있는가 하면, 종로통의 가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풍경을 보여 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시 풍경보다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그의 내면 의식이다. 구보의 내면세계는 회의에 젖어 있다. 만사를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며 번민과 방황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의식과 과잉상태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다만, 작품의 끝에 이르러서 고민과 방황의 긴 수렁에서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자기 극복의 모습이 구체화되고 있는 점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 윤희재의 현대소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서술 시점
이 작품은 전통적 구분법에 의한 시점 유형에 의하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 해당되지만 내용이 오직 주인공 구보의 행동 및 사고에 제한되고 있으며, 구보가 느끼는 세계와 연상된 추억 등을 객관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는 1인칭 서술자 시점의 특성을 지니며, 스토리가 주인공 구보에 의해서 이야기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그것은 스토리 밖에 있는 화자에 의해 서사되고 있지만 스토리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작중 인물인 까닭이다.
2. ‘경성역’의 공간적 성격
① 당대 문명의 집결지
② 구보의 고독이 심화되는 장소
③ 공동체적 인간관계가 파괴된 공간
→ 인간 단절과 교감 포기가 보편적인 생활 양식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공간
3. 주인공의 심리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내면 의식은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 행복을 동경하면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독에 빠져 있는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구보의 내면세계는 자의식의 과잉 때문에 만사를 회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지나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현상적 자아와 반성적 자아의 대면에서 그 둘의 간격이 클 때 자의식의 크기는 커지고, 그로 인해 내적 번민은 심화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구보의 심리 추이를 서술해 가는 소설이다.
4. ‘구보’의 사고에 나타난 양면성
구보는 한 가지 사태에서 양면을 보고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예컨대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깨닫는 진실은 없다. 그저 그런 회의에 빠질 뿐이다. 이런 것은 모든 사태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고 패턴을 통해 작가는 무기력과 회의감에 빠져 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려 한 것이다.
5. 소설가 구보씨의 ‘고독’의 의미
구보의 고독은 정신적인 징후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신경쇠약증이 있다. 믿기 어려운 시력과 청력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무의식을 뚫고 의식되는 많은 연상을 후에 느끼는 두통은 매번 그에게 피로한 삶을 환기시킨다. 억압된 욕망이 의식의 영역을 뚫고 나온 것들을 의식하면서 정신적으로 피로한 구보는 점점 망가져 가는 육체를 느끼게 되며 고독감은 심화된다. 이렇듯 소설가 구보는 세속적 일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고,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고독한 삶은 그 증후로 모든 신경 조직의 불편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구보는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는 일상적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적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보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거부하며 화해를 꿈꾸기도 한다. 이것은 고독 때문에 억압된 욕망들이 무의식 저편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의 한 양상이다. 구보의 갈등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뚫고 억압된 욕망들이 구보의 의식 속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에게 대답을 못해 드린 것을 자책하는 구조는 바로 무의식 저편에 삶에의 욕망을 꿈꾸는 고독한 소설가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다.
- 강진호 외, ‘박태원 소설 연구’ 참고
7. 박태원의 창작 방법론
박태원은 자신의 창작 방법을 ‘고현학(modernology)’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고현학이란 현대인의 생활을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현대의 풍속을 분석, 해설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그의 작품에서 고현학은 실재하는 인간의 사생활을 소설화 하는 것, 소설 작법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이 작품에서 ‘이상’과 ‘김기림’이라는 실존 인물의 사생활을 다루고 있다는 점, 대학 노트를 끼고 서울을 배회하며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음을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으로 고현학의 방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8. 자전적(自傳的)소설로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지닌 특징
주인공 ‘구보’는 작가인 박태원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우선, 그이 필명 내지 아호가 곧 구보이며, 그의 집은 이 작품에서의 구보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청계천변 부근이었다. 이 작품에서 구보가 네 번이나 들른 곳은 다방인데, 구인회의 일원이었던 그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 글을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구보가 단자오가 대학 노트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박태원이 이른바 고현학적 방법을 기초하여 창작 활동에 임하고자 서울 풍경과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 내기 위해 항상 대학 노트를 들고 다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4년 당시 박태원의 실제 나이 또한 이 소설 속의 구보와 마찬가지로 26세라는 점 역시 특이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결혼을 하고자 하는 구보의 의지가 피력되는데, 실제로 박태원은 이 소설이 발표된 해인 1934년 이정애와 결혼을 한다.
9.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문학사적 의의
한 칼에 잘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예술가로서 그가 택하는 방식이 바로 박태원의 상징인 ‘단장’과 ‘노트’이다. 현대적 삶을 쫓아다니면서 삶의 양태를 기록하고, 그럼으로써 현대적 삶의 의미와 그것을 지배하는 질서를 발견하려는 것, 그것을 구보는 ‘모더놀리지-고현학’이라고 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우리 문학사에서 의미를 갖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삶의 의미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소설의 방법론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 이것을 우리는 미적 자의식이라 부를 수 있고, 이 미적자의식으로 해서 그는 모더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가치를 회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끝은 어떠한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말미에서 구보는 더 이상 나돌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생활을 갖겠다고 한다. 나돌아 다니지 않겠다는 것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드러낸 자신의 소설 방법론을 버리겠다는 것이고, 이제까지는 불확실했던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갖겠다는 생활로서 낭만적 사랑 대신에 ‘가정’과 소시민적 ‘행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채호석, ‘지식인의 도시 체험과 식민지 시대의 삶의 윤리 참고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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