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아니야요. 나는 살 사람이 아니야요. 죽어야 할 사람이야요. 가만히 지나간 일생을 생각해 보니까 암만해도 나는 살려고 난 것 같지를 아니해요. 아버지와 두 오라버니는 옥중에서 죽고, 나만 혼자 남아, 그러고 칠팔년 고생이 모두 속절없이…….” / 하고 흑흑 느낀다.
“얘, 글쎄 웬일이냐. 곧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기뻐하다가 왜 갑자기 야단이냐……. 네가 그렇게 그러면 이 언니는 어쩌게……. 자 울지 마라!”
“암만 생각하여 보아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생각이 없어요.”
“왜? 그러면 너는 아직도 이형식 씨를 못 잊는 게로구나. 네가 그때에 날더러 실상은 이형식 씨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니?”
“아니요. 다만 그 일만 아니야요. 이 세상이 내 원수가 아니야요. 내 부모를 빼앗고, 내 형제를 빼앗고, 내 어린 몸을 실컷 희롱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마침내 내 정절을…… 내 정절을 빼앗고…… 그러고는 일생에 생각하던 사람은 아랑곳도 아니 하고……. 이렇게 구태 나를 없애고 말려는 세상에 내가 구태 붙어 있으면 무엇 해요. 세상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세상을 미워하지요. 세상이 나를 싫다 하면 나도 세상을 버리고 달아나지요……. 하늘로 올라가지요.”……
하는 울음 섞인 말에 병욱도 부지불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깐 말이다─ 그만치 세상한테 빼앗겼으니깐 또 세상에 좀 찾아 가져야지. 내 것을 주기만 하고 말아! 네가 이십 년이나 고생을 했으니깐 그 값을 받아야 아니 하겠니?” / “값이 무슨 값이오? 하루라도 더 살아 있으면 더 빼앗길 뿐이지…….”
“아니다! 왜 그래? 이제부터는 찾는다. 아직도 전정이 구만 린데 왜 어느새 실망을 한단 말이냐. 살 수 있는 대로 힘껏 살면서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야지……. 사업으로 찾고 행복으로 찾고……. 왜 찾을 것을 찾지도 않고 죽어?”
“행복? 행복? 내게 행복이 올까요? 이 세상이 내게다 행복을 줄까요!”
하고 병욱의 눈물 흐르는 눈을 본다.
병욱은 수건으로 영채의 눈물을 씻어 주면서,
“얘, 다른 손님들이 이상하게 여기겠다. 울지 말아라……. 이 세상이 왜 행복을 아니 주어……. 아니 주거든 내라지. 내라도 아니 주거든 억지로 빼앗지. 빼앗아도 아니 주거든 원수라도 갚지! 또 생각을 해 봐라. 이 세상에 너와 같이 설움을 당하는 사람이 너뿐이겠니?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 안 된 사회 제도를 고쳐서 우리 자손들이야 행복을 얻고 살게 해야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느냐. 그런데 만일 네가 제 고생을 못 이겨서 죽고 만다 하면 이것은 네가 우리 자손에게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많이 하자……. 자, 울지 말고 딸기나 내 먹자.” <중략>
이윽고 서장이 무대 곁으로 가더니 일동을 둘러보며,
“이렇게 모이시기를 청한 것은 다름이 아니외다. 여러분! 저 산기슭을 보시오. 저기는 수재를 당하여 집을 잃은 불쌍한 동포가 밥도 못 먹고 비에 젖어서 방황합니다. 그런데 아까 어떤 아름다운 처녀가 경찰서에 와서 저 불쌍한 동포들에게 한 끼라도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하여 음악회를 열게 하여 달라 합데다. 우리는 그 처녀가 얼마나 음악을 잘하는지를 모르거니와 그의 아름다운 정성이 족히 피 있고 눈물 있는 신사 숙녀 제씨를 감동시킬 줄을 확신합니다.”
하며, 서장은 눈물이 흐르고 말이 막힌다. 일동의 얼굴에는 찌르르 하는 감동이 휙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코를 푸는 부인의 소리도 난다. 서장은 말을 이어
“여러분! 우리는 그 처녀의 정성에 대답함이 있어야 할 것이외다. 이제 그 처녀를 소개합니다.”
하고 저편 구석에 가지런히 섰던 세 처녀를 부른다. 바이올린을 든 병욱을 선두로 하여 세 처녀는 은근히 일동에게 경례를 한다. 대합실이 터져라 하고 박수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사람은 감격함이 극하여 소리를 치는 이도 있다.
병욱은 세 사람을 대표하여,
“저희는 음악을 알아서 하려 함이 아니올시다. 다만, 여러 어른께서 동정을 줍시사 함이외다. 더구나 행리(行李) 중에 보표(譜表)가 없으니 따로 외워 하는 것이라 잘못되는 것도 많을 것이올시다.”
하고 고개를 기울여 바이올린 줄을 고른 뒤에 ‘아이다’의 비곡(悲曲)을 시작하였다. 일동은 잠잠하다. 끊이는 듯 잇는 듯한 네 줄의 슬픈 소리만 여러 사람의 가슴속을 살살 울린다. 그 곡조는 이러한 경우에 가장 적당한 곡조였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슬픔에 가슴이 눌렸던 일동은 그만 울고 싶도록 되고 말았다. 병욱의 손이 바이올린의 활을 따라 혹은 자주, 혹은 더디게 오르고 내릴 때마다 일동의 숨소리도 그것을 맞추어서 끊었다 이었다 하는 듯하였다. 그 슬픈 곡조를 듣는 맛을 내가 길게 말하는 것보다 천고의 시인 강주사마(江州司馬)의 ‘비파행(琵琶行)’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편할 것이다. 애원한 가는 소리가 영구히 끊기지 아니할 듯이 길게 울더니 병욱은 바이올린을 안고 고개를 숙였다. 아까보다 더한 박수성이 일어나고 한 곡조 더 하라는 소리가 일어난다. 병욱의 얼굴에는 복숭아꽃 빛이 비치었다.
다음에는 영채가 병욱에게 배운 찬미가 ‘지난 일 생각하니 부끄럽도다’의 독창이 있었다. 병욱의 바이올린에 맞춰서 영채는 얼굴에 표정을 하여 가며 부른다.
십여 년 연단한 목소리는 과연 자유자재하였다. 바이올린의 고상한 곡조를 들을 줄 모르던 사람들도 영채의 고운 목소리에는 취하였다. ‘흐르는 두 줄 눈물 뿌릴 곳 없어.’ 할 때에는 일동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다음에 영채가 한문으로 짓고 형식이가 번역한 노래를 셋이 합창하였다. 그것은 집을 잃고 비에 젖은 불쌍한 사람들을 두고 지은 것인데 이 노래는 듣는 사람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주었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소설, 계몽소설
• 성격 : 계몽적, 민족주의적, 사실적
• 배경 : 시간적-일제 감점기하의 개화기, 공간적-서울, 평양, 삼랑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서구적 자유연애와 민족 계몽
• 주제 : 자유연애와 민족의식의 고취, 세속적 사랑을 계몽적 민족주의로의 승화,
민족적 현실의 자각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 특징
① 현대 장편 소설의 효시
② 한글 전용의 구어체로 문어체와 서술체를 탈피하여 거의 완전한 산문적 묘사체 사용
③ 유교적 구질서를 탈피하여 지향적 가치관과 과학 문명의 수용에 대한 의지가 엿보임
④ 최초로 사실적 표현기법을 시도, 성과를 거둠
⑤ 자아각성에 바탕을 둔 자유연애 및 민족주의 등 근대적 사상을 나타냄
■ 전체 줄거리
이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의 가정교사가 되기 위해 가다가 친구이자 기자인 신우선을 만난다. 신우선과 헤어져 김장로 집에서 선형을 가르치고 하숙집에 돌아 와 자신을 찾아온 어렸을 때 헤어진 과거 은사의 딸인 영채를 만나 고생했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영채는 형식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몰라 자신의 기생 처지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다급히 떠난다. 형식은 영채가 떠난 뒤로 영채의 아름다움에 취한 자신과 기생인 것 같아 거부하는 자신과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영채와 선형을 비교해 본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잘 따르는 교사인 형식은 학생들이 실력도 없고 독선적이며 화류계에 다니는 배학감에 반발하여 동맹휴학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가 배명식에게 충고했으나 서로 어긋나게 되고 교사들과 이야기하다, 계월향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영채인 듯 싶어 배학감의 뒤를 밟았던 학생의 인도로 월향의 집을 찾아 간다.
월향이 손님과 함께 청량리로 갔다는 말을 듣고 예감이 이상하여 월향을 찾아가다 신우선을 만나게 된다. 신우선은 형식이 다니는 경성학교 교주 아들 김현식과 배명식이 월행을 범하려는 것을 알고 둘의 계교를 깨뜨리든가 그것이 안되면 돈이라도 뜯을 셈치고 종로 경찰서에서 형사를 데리러 나오던 것이었다. 형식의 이야기를 듣고 월향이 형식에게 어릴 때부터 마음을 받쳤다는 것을 알고 청량사로 함께 갔다. 그러나 월향은 형사와 함께 도착했을 때 이미 정조를 잃고 말았다. 형식은 월향이 영채인 것을 확인하고 가련한 월향을 집으로 데려다 준다.
월향은 아버지를 도울 목적으로 어려서 기생이 되었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던 아버지는 기생이 됐다는 말을 듣고 금식하다가 돌아가시고 두 오빠도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죽게 되었다. 월향은 정조를 지키며 자기에 맞는 위인를 기다리며 기생으로 살다가 그런 위인을 보았으나 기생으로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대동강 물에 빠져 죽은 월화의 영향을 받았고 형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계속 결심해 왔다. 월향은 자신의 순결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죽을 것을 결심을 하고 평양으로 떠나간다.
다음 날 신우선이 찾아와 형식을 데리고 월향의 집으로 간다. 거기에서 형식은 영채가 정조를 지키며 자신을 기다리며 살아왔고 정조를 잃어 죽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식은 기생 월향의 어머니라는 노파를 데리고 평양으로 가나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학교에 출근한 형식은 배명식의 계교로 인해 형식이 계월향을 만나러 학교도 나오지 않고 평양에 다녀 왔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고 놀리는 것을 수업시간에 당하고 학교를 나와 버린다. 학교에서 돌아온 형식은 집에 찾아온 우선에게 돈을 꾸어 영채의 시체를 찾으러 떠나려고 할 때 김장로의 집에서 보낸 사람이 선형과의 약혼을 승락하라고 한다. 선형과 약혼하고 싶은 열망의 마음을 가졌으나 영채로 인해 주저하는 형식을 신우선이 영채는 이미 죽었으니 승락하라고 한다.
형식은 김장로의 집으로 가 약혼을 하고 성례는 유학 후에 하기로 한다. 한편 영채는 죽으러 평양으로 가다 병옥이라는 일본 유학생을 만나게 되고 영채의 이야기를 들은 병옥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부모의 말로 인해 남편을 결정하는 구습으로 인해 죽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자기 집으로 영채를 데려가 집에서 같이 있다 유학을 같이 하자며 동경으로 영채와 함께 떠난다.
형식이 선형과 함께 미국유학을 하러 부산행 기차 안에서 학교 선배인 병옥과 후배인 선형과 영채는 만나게 된다. 선형이 송별하러 부산까지 따라가는 우선을 만났다고 하자 우선은 형식에게 이 말을 전한다. 이형식이 결혼을 하고 미국유학을 간다는 말을 들은 영채는 배신감을 느끼고 마음을 주었던 자이기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형식은 선형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고 영채를 만나러 간다. 형식은 영채에게 죄인이며 미안하다고 하자 영채는 걱정시켜 미안하다고 한다. 선형이 있는 차실로 돌아온 형식은 지키고 있던 우선에게 미국 가는 것을 중단하고 영채와 혼인하겠다고 하니 영채도 유학을 하러 가는 입장이니 서로를 위해 그러지 말라고 한다.
형식이 영채를 만나러 갔을 때 선형은 질투를 느끼게 되고 형식의 인간됨을 의심하다가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형식이 자는 체하는 선형에게 돌아와 손에 입을 맞추었을 때 선형은 형식이 몹시 미웠다.
다음 날 삼랑진 역에 닿았을 때 홍수가 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형식, 선형, 영채, 병옥은 수재민을 돕게 되고 선형과 영채는 이 과정에서 서로 협십하게 된다. 병옥의 생각에 의해 즉석해서 음악회를 열어 돈을 모아 서장에게 주며 수재민을 도우라고 한다. 여관 방에 모인 일행에게 형식 우리의 이런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배워 조국을 위해 살자고 한다. 선형은 영채의 손을 잡고 자신이 형식과의 관계를 오해한 것을 영채에게 사죄한다. 후일 형식과 선향은 9월 시카고 대를 졸업해 돌아오며 우선은 문명이 전국에 떨쳤으며 병옥은 음악가가 되었고 영채는 동경에서 음악회를 열어 성공했다.
이들이 조선을 떠난 후 조선은 많이 발전했으며 이들과 같이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이 조국에 돌아오면 조선은 그 미래가 밝을 것이다.
■ 작품 해설 1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서, 신소설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한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창작 당시의 배경이 되는 개화기의 시대상과 함께 민족주의적, 계몽적 성격을 잘 나타냈으며, 신 · 구질서가 충돌하던 격변기의 조선 사회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하여 당시의 가치관 혼란을 보여준다.
전반부는 이형식을 중심으로 박영채와 김선형으로 이어지는 애정의 삼각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민족을 위해 헌신하리라는 정신적 각성이 중심 내용을 이룬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이 소설은 현대적인 문체 확립, 근대적인 주제 의식의 반영, 근대적인 인물 설정, 사건의 역순행적 배열을 통해 신소설에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무정’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첫 장편소설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정열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 독자들에게 민족주의 사상과 근대 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 사상의 고취, 자유연애의 실천과 같은 새로운 주제를 드러내었다. 현대 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이 강한 이 작품은 신소설과 비교하여 인물들의 내면 공간 확대를 통한 심리 묘사, 생생하고 개성적인 인물의 창조 등이 발전된 점으로 지적될 수 있으나, 빈번한 직유적 표현과 서술자의 격앙된 영탄이 드러나고 일부 문어체적인 문투와 극적인 필연성이 다소 미흡한 점은 한계라 볼 수 있다. 또한 삼랑진 자선 음악회 이후 벌어지는 토론에서 네 사람의 포부를 피력하는 장면은 신소설의 티를 벗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며, 특히 결말에서 작중 인물의 미래에 대한 편집자적인 개입은 문학적으로 미숙함이 드러난 것이다.
- 윤희재, 전공국어 현대소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무정’의 배경
• 시대적 · 사회적 배경: 서구와의 수교와 갑오개혁, 한일 합방 등을 거치면서 서구 문물이 들어오자, 개화 의식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유길준의 ‘서유견문’, 이인직의 신소설, 최남선의 잡지 간행, ‘혁신단’을 위시한 신극 공연 등은 새 시대의 고동을 알리는 용트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기타 배경: ‘개화 계몽 사상’이라는 주제를 살리기 위해 종교는 유교와 기독교를, 지적 수준은 지식층을, 경제적 수준은 중산층을, 직업은 교사, 기자, 학생, 기생 등 다양한 직업을 선정하였다.
• 실제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시대나 역사적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고, 내적 배경으로 작자의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 등이 나타나 있다.
2. 주제와 관련한 ‘무정’의 주요 내용 전개
• 이형식의 변모 과정
- 이형식은 영채와 선영의 애정 대상이었지만 영채와 선영으로 하여금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교사(敎師)의 위치로 옮겨 가고 있다.
• 영채와 선영의 갈등 해소
- 영채와 선영은 형식을 사이에 두고 연적(戀敵)의 관계에 놓여 있었으나 민족의식에 대한 깨달음과 민족적 일체감에 눈뜨면서 이러한 갈등이 해소된다.
• 민족주의, 계몽주의가 등장인물들에게 주는 감동
- 무지한 동족을 교육으로 계몽해야 한다는 인식은 영채, 선영, 형식, 병욱 등에게 선구자적인 소명 의식을 일깨우면서, 강한 일체감에서 오는 감동을 주게 된다.
• 지식인의 시혜적 성격
- 시혜적 성격은 상대방을 피동적이고 열등한 상태로 파악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수재민에 대한 이형식의 시혜적 성격은 이광수 민족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민족에 대한 긍지와 민족 현실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개량주의적인 사고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후에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 등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3. 무정에 나타난 인물의 특징과 시대적 전형성
‘무정’의 인물은 사회 현실에 대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그리고 개화 의식을 위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시대적 전형성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 이형식 : 두뇌가 명석하나 고아이고 전통을 모르는 개화 지식인이다. 급걱한 사회 변동으로 인한 전통 단절을 반영하고 있다.
- 박영채 : 실패한 개화 운동가의 딸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일제 강점으로 인해 몰락하는 민족의 운명을 상징한다.
- 김선형 : 서구식 종교인 기독교 장로의 딸이다. 개인적 자각을 보여 주지 못하는 외면적 신여성이다.
- 김병욱 : 개화사상을 지닌 신여성으로 영채를 구원한다. 민족의 미래가 개화에 달렸음을 암시하는 실질적인 신여성이다.
4. ‘무정’이라는 제목의 의미
작품 끝 부분의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도 아니요, 무정할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하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로 보아, ‘무정’이란, 극복해야 할 어두운 현실이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무정’과 계몽 소설
‘무정’은 시대적 이념이 강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계몽 소설이다. 중세의 봉건적 경제 체제와 신분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사조인데, 근대 초기의 자본주의적 사유의 발달과 자아 각성으로 인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이념은 소설로 흔히 표출되었으며, 한국 문학사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 초기에 이르기까지 선명한 주제 의식으로 부각된다. 이 글에서도 구여성인 영채가 삼랑진의 수재민을 도우면서, 그리고 근대 교육을 통한 민중 강석이라는 시대 이념을 고취하는 형식의 말을 들으면서 깨어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밖에 계몽주의 계열 작품으로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등이 있다.
■ 작가 소개
'문학 이야기 > 현대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상의 눈물 - 전상국 (0) | 2017.06.12 |
---|---|
큰 산 - 이호철 (0) | 2017.06.02 |
동백꽃 - 김유정 (0) | 2017.04.10 |
국물 있사옵니다 -이근삼 (0) | 2017.04.10 |
눈길 - 이청준 (0) | 2017.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