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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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주요 부분

  다음 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감성 소설, 모더니즘 소설

• 배경 : 1964년 서울의 어느 겨울 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성격 : 현실 고발적, 사실적, 객관적, 상징적, 암시적

• 구성 :

  발단 - '나'와 '안'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나눔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하고 '나'와 '안'은 승낙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위기 - 택시를 타고 가던 세 사람은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지고, 돌아가려는 '나'와 '안'에게 혼자 있기가 무섭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함.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세 사람은 '나'는 같은 방에 들어가기를 제안하고 사내 역시 같은 방에 들어가자고 하나 '안'의 주장으로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이 밝혀지고 그 일에 관련되기 싫다고 '나'와 '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곳에서 헤어진다.

• 주제 : 사회적 연대감과 동질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소외

• 특징 : 

 ① 익명화된 인물이 등장함

 ② 상투어를 쓰지 않고 참신하고 인상적인 언어를 사용함

 ③ 설명적인 언어가 아닌 상징적, 비유적 언어를 사용함

 ④ 무의미한 대화의 연속으로 독자들에게 오히려 역설적인 충격을 줌.



■ 전체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安)'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다. 부잣집 아들인 '안(安)'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明滅)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 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셋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 구경에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나'와 '안(安)'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셋은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안(安)'의 고집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고, '안(安)'과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 '안(安)'은 사내가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나'와 '안(安)'은 "우리는 스물 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나'는 '안(安)'과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 작품 해설 1

  세 명의 등장인물이 벌이는 하룻밤의 놀이를 통하여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분리되어 사회의 한 기계 부품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을 냉정하게 파헤치고 있다.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양태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문명 사회(혹은 도시)의 거대한 질서로부터 소외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소외로부터 짙은 절망감과 권태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세 인물은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지만, 기능적 합리성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는 인간의 삶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분할해 버린 상태여서 이들의 열망은 실현될 수가 없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복이나 명예 혹은 이름을 버린 익명적인 존재나 기호화된 존재여야 하며, 개인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실현하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호이기를 거부해야 한다.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 속에서 세 인물은 절망과 권태를 견디는 것 외의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없다. 이들은 이 절망과 권태를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를 통해 넘어서고자 한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나’, ‘안’, ‘사내’는 모두 익명화되어 있는 인물이다. 이는 현대 도시인의 삶이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언어 불소통을 암시하는 작가의 문학적 의도이다. 또한 그들의 신원만 단편적으로 제시될 뿐 개개인의 개성이 서술되지 않은 것도 소외 의식을 심화시키는 문체적 특징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의미 없는 말의 유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의사소통과 잠정의 교류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때, 세 사람의 대화는 그러한 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표피적이고 본질에서 벗어난 헛된 이야기이다. 포장마차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한 수단으로써 말을 하고 있거나, 말을 장난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언어적 진실을 통한 관계 맺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쓸데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는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본질적 관계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공간(포장마차, 여관)이 지니는 상징성 또한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포장마차는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아드는 곳이다. 허무주의자인 안과 속물적 사고의 ‘나’, 생활고에 지친 외판원은 모두 서울의 쓸쓸한 군상들이다. 여관은 나그네가 깃들이는 곳이다. 그들에게 여관은 안식의 터전이 아닐, 나그네라는 의식만 더 강화시켜 주는 공간이며, 파편화된 단독자임을 확인시켜 주는 공간에 불과하다.

 - 윤희재, 전공국어 현대소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등장인물의 특징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된 인물 유형들이 익명화되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인간적인 만남이 아니라 익명적인 존재끼리의 비개성적이고도 무덤덤한 만남을 뜻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화된 인간 관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 : 작중 화자(話者)로서 25세로 육사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 근무함. 확실한 주관이 없는 회색적인 인물. 시골 출신으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들의 표상, 아저씨와 안의 중간적 존재

'안(安)' : '나'와 동갑내기로 25세인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지식인으로 염세주의적이며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물로 당대 지식인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냄

사내(아저씨) : 서른 대여섯 살의 가난한 사내,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서적 외판원으로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여관방에서 자살한다.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하는 인물 / 타인에게 인간적 유대감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하는 인물


2. 제목의 의미

 이 작품은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현실에서 소외된 고독한 세 인물이 서로 무심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 연대성을 잃은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과 서적 외판원 사내는 결국 19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전형적 인물 유형인 것이다.


3. 공간적 배경의 이동과 내용 구조

 작중 인물들은 황량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술집에서 무덤덤하게 만나 의미 없는 희화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공유점이 없고 인간적 유대로 없는 소외 외식을 발견한다. 이 점은 장소가 이동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선술집’은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어떤 유의미한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벽이 있는 여관방에 제각각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벽을 쌓아 인간적인 유대를 갖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현대인의 대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


4. ‘나’와 ‘안’의 대화의 의미

 대화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두 사람은 이상한 말놀이만 한다. 시간은 다른 시간과 이어지지 못하고, 다른 사건을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공간 역시 사건이나 문체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 공간 역시 사건이나 문체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은 단절되어 다른 타인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람은 고독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당대 도시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 작가 소개

김승옥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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