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야구도하기 -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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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하수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나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서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흘연(屹然)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 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강물의 기세와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물소리

 산중의 내 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비가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거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노한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급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文武)가 겸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로운 탓이요, 거문고가 궁(宮)과 우(羽)에 맞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의심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마음속의 뜻에 따라 달라지는 물소리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 · 황화(黃花) · 진천(鎭川) 등 모든 물과 합쳐 밀운성 밑을 거쳐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하류(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 리 밖에서 폭우(暴雨)가 온 것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默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낮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물을 건너는 이유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 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에 밟혀서 뒤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

▶깨달음을 얻은 후의 초연함

 옛날 우(禹)는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으로 떠받치니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의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이거나 크거나 작거나가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 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올바른 인생의 태도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세인에 대한 경계

 

2.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 수필, 기행문
• 성격 : 체험적, 사색적, 분석적, 교훈적
• 제재 :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넌 체험
• 주제 :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삶의 자세,  이목(耳目)에 구애됨이 없는 초연한 마음,  마음을 다스리는 일의 중요성
• 특징 : 
 ①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이끌어 냄.
 ② 예리한 관찰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봄.

 

3. 작품 해설 1

 글쓴이는 이 글에서 자신의 도강(渡江) 체험과 평소 관찰을 바탕으로 깊은 인생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있다. 묘사와 서사를 이용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인간의 내적 세계와 연결 짓는 방식은 주제를 매우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일상생활에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가운데 현상에만 얽매여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글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4. 작품 해설 2

 ‘일야구도하기’는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경험을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실려 있는 글로, 여정과 견문을 기록한 기행 수필이다. 여기에서 글쓴이는 단순히 여행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여행의 체험을 통해 사색하고 깨달은 바를 기록했다. 함께 여행을 한 이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체험을 했음에도 글쓴이만이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유는 글쓴이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사고 때문이다.
 이 글은 남성적인 문체, 산만해 보이지만 내적 질서가 정연한 구성, 물의 흐름이나 소리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깨달음을 전하고 있어 구체적인 경험이나 묘사만 있고 깨달음이 없는 허식적인 글이나, 구체적인 경험 없이 깨달음만을 전하는 관념적인 글에 비해 교훈적이며 설득력이 강하다.
 이 글에는 큰 강물을 건너면서 겁을 먹게 되는 것은 강물의 흐름이나 소리만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글쓴이 나름의 답도 구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눈과 귀를 통해 지각된 외물(外物)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며, 사물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글쓴이는 이를 통해 외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밤이 되어야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
 밤에 물소리를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인지되는 강을 낮에 본 강물에 대한 기억과 연관시켜 머릿속에서 연상을 하게 된다. 낮에 그 두려웠던 장면을 연상은 하되 구체적으로 그 강물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므로 더욱 물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밤이 되어야만 물소리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관심이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외적인 사물〔외물(外物)〕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글쓴이의 의도이다.

 

2. ‘일야구도하기’의 전체 구성(해냄에듀 교과서 참고)
[기] 강물이 산과 산 사이로 흘러나와 급한 경사와 바위 등의 굴곡에 의해 부딪혀 울부짖는 듯하고 전차 만 대가 굴러가는 것처럼 큰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이곳이 옛날에 전쟁터였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난다고 하지만,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 듣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강물 소리가 달라짐.
[승] 낮에 요하(遼河)를 건널 때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거친 파도 때문에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요하를 건널 때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눈에 거친 파도가 보이지 않아 귀로 위협적인 소리만 듣기 때문이다.
 → 외물(外物)에 현혹되기 쉬운 인간들
[전]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을 평정하면 사나운 강물에도 익숙해짐을 깨닫게 된다.
→ 글쓴이가 깨달은 진리
[결] 우리의 감각 기관은 외물에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상태에서는 사물의 정확한 실체를 살필 수가 없다. 그러한 인식의 허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과 그것에 의해 움직이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 인생의 바른 태도와 세인(世人)들에 대한 경계

 

3. ‘일야구도하기’에서 보여 주는 바람직한 인간상(천재교육 참고)
 ‘일야구도하기’에는 서로 상반되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난다. 첫 번째 인간형은 외물(外物)에 매인 사람이다. 이들은 외적인 것에 이끌려 본질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유형으로,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이다.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두 번째 인간형은 외물에 초연한 사람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은 외물에 구애받지 않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禹)’와 같은 사람으로, 글쓴이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4. “열하일기”(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26권 10책. 필사본.
 간본(刊本)으로는 1901년 김택영(金澤榮)이 ≪연암집 燕巖集≫ 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A5판 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 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고 1956년 자유중국의 대만대학(臺灣大學)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
 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각 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강록>은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는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은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는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은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이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은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금료소초>는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옥갑야화>는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은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은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을 기록하고 있다. <앙엽기>는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은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은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은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은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는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은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은 주로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은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며, <산장잡기>는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은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열하일기≫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 北學議≫와 함께 “한 솜씨에서 나온 것 같다(如出一手).”고 한 평을 들었다.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정조로부터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

 

6. 작가 소개

박지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지원

조선후기 한성부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열상외사(洌上外史).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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