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갓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비극적, 회고적, 묘사적, 서사적
• 제재 : 아버지의 죽음
• 주제 : 아버지의 비참한 임종과 유랑민의 비애
• 특징 :
① 절제된 어조에 서글픔을 담아 냄
② 청각적인 표현으로 비극성을 강조함
③ 수미 상관식 구성 방식을 취함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이국땅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모습과 그로 인한 가족의 애통함을 형상화한 시이다. 이 작품 속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처지를 잘 보여 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인 서술로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절제된 어조를 띤 점, 여운을 남기는 수미상관의 구성을 취한 점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 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시는 이국땅에서 갑작스레 맞이한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과 그로 인해 가족들이 느낀 비통함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버지는 러시아 땅에서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자식을 길렀지만 결국 침상조차 없는 누추한 곳에서 유언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숨을 거둔다. 젊은 날엔 꿈도 지녔을 두 눈은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로 가라앉고, 너무 늦게 모셔온 의원은 이미 싸늘해진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말없이 돌아선다. 가족들은 그 머리맡에서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울어 보지만 그 역시 때늦은 통곡일 뿐이다. 이 작품 속의 아버지는 특정한 개인을 넘어, 고된 삶을 살았던 일제 강점기 유이민 전체를 대변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시는 이와 같은 격렬한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절제된 어조를 통해 담담한 듯 그리고 있다는데 특징이 있다. 3연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든지, 1연과 4연의 풀벌레 소리에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그러하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때로는 극한의 슬픔을 애써 누르며 담담한 듯 서술하는 편이 직접적이고 격정적인 감정 표출보다 오히려 더 비극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작품의 정서와 지배적 심상의 관계(지학사 참고)
이 시의 지배적인 심상은 아버지의 임종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풀벌레소리’이다. ‘통곡 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고 말해야 할 법한 상황에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고 말한 것은 이 상황을 담담하게 진술하려는 시적 화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적 상황과 대조되는 듯한 이러한 청각적 심상이 오히려 작품의 애상적 정서 형성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이 풀벌레 소리 자체가 남은 가족들의 통곡 소리를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2. ‘풀벌레 소리’의 의미(천재교육 해법문학 참고)
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풀벌레 소리이다. 풀벌레 소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화자의 슬픔을 대변해 주는 대상 : 풀벌레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울음에 가까운 것으로, 화자는 자신의 슬픔을 ‘풀벌레 소리’에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음.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소 : 한밤중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적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극적인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어 비극성을 고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
3. 시간 순서에 따른 장면의 전개 과정(천재교육 해법문학 참고)
① 아버지가 이국땅에서 힘들게 자식을 키우며 고생함
② 아버지가 객지에서 갑작스럽게 임종을 맞이함
③ 한마디 유언도 없이 아버지가 숨을 거둠
④ 뒤늦게 도착한 의원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돌아감
⑤ 이웃집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림
⑥ 가족들이 아버지의 머리밑에 엎드려 눈물을 흘림
4. 이 시에 나타난 당대의 시대상(천재교육 해법문학 참고)
이 시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30년대는 일제에 의한 수탈이 극심했던 시기로, 이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일제의 강제 징용에 의해 국외로 강제 이주되는 등 민중들의 국외 이동이 빈번했다. 특히 많이 이주한 지역으로는 만주(간도 지방 개척)와 일본(강제 징용), 구소련(사할린, 연해주 → 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과 하와이(최초의 계약 이민, 사탕수수 농장)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가족 역시 당시 러시아에서 곤궁하게 살았던 유랑민들로, 결국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타국을 유랑하던 한 가장의 비극적 죽음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6. 작가 소개
이용악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2
이용악
서정주, 그리고 앞서 시집을 낸 오장환과 더불어 삼재(三材)로 불린 이용악(李庸岳, 1914~?)도 1937년 이에 질세라 첫 시집 『분수령(分水嶺)』을 낸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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