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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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상적, 주지적
• 제재 : 성탄일의 추억
• 주제 : 아버지의 정성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
• 특징 :
 ①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시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함
 ② 과거와 현재, 시골과 도시라는 배경에 대칭구조가 나타남
 ③ 시간적 순서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장년이 된 화자가 성탄절 가까운 어느 겨울날, 옛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변해 버린 도시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어릴 적 아버지가 보여 주셨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이다. 눈을 매개로 한 회상의 구조,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의 대비 등을 통해 세상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 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시에서 화자는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 준 헌신적인 사랑을 회상하고 있다.전체 10연 중에서 7연을 분기점으로 하여 전반부에는 화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후반부에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대칭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전반부를 보면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온 붉은 산수유 열매(해열제)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생각한다. 여기서 '붉은 산수유 열매'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후반부에서는 어른으로서의 화자가 이제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을 되살려 내는 계기는 성탄제 가까운 어느 날 서른 살의 성인이 된 화자의 이마에 와 닿는 눈의 서느런 감촉이다. 이 감촉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연상케 하는 회상의 매개체인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흥청거리는 도시의 성탄절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그 의미를 따뜻하게 일깨우고 있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현대시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제목 ‘성탄제’의 의미(천재교육 참고)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이 시에서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아버지의 희생적인 사랑을 인류를 구원한 예수의 사랑과 연결 짓는 소재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 · 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2.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이 시에서는 ‘어두운 방’ ↔ ‘빠알간 숯불’, ‘흰 눈’ ↔ ‘붉은 산수유 열매’와 같이 색채의 대비를 활용하여 방안의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선명한 인상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붉은 산수유 열매’와 ‘혈액’의 색채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화자의 마음과 기억 속에 남아 있음을 강조하며 여운을 형성하고 있다.

 

3. 이 시에 나타난 유가적(儒家的) 전통(천재교육 참고)

 김종길 시의 뿌리를 이루는 것은 유가적(儒家的)인 전통이다. 그의 시의 특성인 절제된 감정과 시어,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 등은 모두 유가적 덕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보여 주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 그의 이런 근본에서 자라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른 화자는 눈을 매개로 하여, 어린 시절 병든 자신을 위해 눈 속을 헤쳐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시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부모의 은덕을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효제(孝悌)라는 원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아버지이며, 화자는 그런 아버지로 표상되는 애정 넘치는 과거의 생활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길 - 성탄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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