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
1. 본문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문명 비판적, 성찰적, 의지적 • 주..
1. 본문 비인 방에 호올로 대낮에 체경(體鏡)을 대하여 앉다. 슬픈 도시(都市)엔 일몰(日沒)이 오고 시계점(時計店) 지붕 위에 청동(靑銅) 비둘기 바람이 부는 날은 구구 울었다. 늘어선 고층(高層) 위에 서걱이는 갈대밭 열없는 표목(標木) 되어 조으는 가등(街燈) 소리도 없이 모색(暮色)에 젖어 엷은 베옷에 바람이 차다. 마음 한구석에 벌레가 운다. 황혼을 좇아 네거리에 달음질치다. 모자도 없이 광장(廣場)에 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화적, 감각적 • 주제 : 도시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과 불안 • 특징 : ① 시간의 흐름, 공간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②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정서를 드러냄 ③ 시적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여 화자의 쓸쓸한 내면을 드..
1. 본문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
1. 본문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1. 본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농민시 • 성격..
1. 본문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사색적, 문답적, 철학적 • 주제 : 시인의 가치와 진정한 모습 • 특징 : ① 문답형식을 활용함 ②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깨달음을 드러냄 ③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드러냄 • 구성 : 1~2행: ‘시가 뭐냐’는 물음에 대한 ‘잘 모..
1. 본문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성격 : 현실참여적, 저항적, 의지적 • 제재 : 민족의 현실 • 주제 : 참되고 순수한 민족의 삶 추구 • 특징 : ① 직설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현실 인식을 드러냄. ② 반복적 표현과 대조적 시어를 사용하여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있음. ③ 상징적 시어를 사용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냄. 3. ..
1. 본문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도 있고 가는 사람도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감각적, 의지적 • 제재 : 투병 생활 • 주제 : 생명에 대한 강렬한 의지 • 특징 : ① 다양한 감각적 심상을 활용함 ② 역순행적 구성을 통해 생명 소생의 의지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줌 ③ 자연을 통해 개달..
1. 본문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의지적, 비판적, 상징적, 희망적 • 제재 : 꽃씨 • 주제 : 전쟁의 폭력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 • 특징 : ① 상징적인 시어를 활용하여 주제 의식을 강조함 ② 대조되는 상황과 태도를 제시하여 특정 대상의 정서와 ..
1. 본문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 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 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 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애상적, 자조적, 대조적 • 제재 : 들국 • 주제 : 임에 대한 그리움과 막막한 기다림 • 특징 : ① 사투리..
1. 본문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 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서정적, 낭만적, 의지적 • 제재 : 이별 • 주제 :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애 • 특징 : ① ‘-거냐’의 의문형 어미와 ‘-련다’와 같은 종결 어미를 통해 의지적 태도를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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