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말쿠지: 말코지.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 성격 : 향토적, 설득적, 비판적
• 제재 : 까치밥
• 주제 : 전통적인 우리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인정과 배려
• 특징 :
① 명령 부정문의 형태, 의미상 대비되는 시어를 활용하여 주제 의식을 강조함.
②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드러냄.
③ 은유적 표현을 통해 구체성을 획득함.
④ 청자를 설정해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함.
• 구성 :
1~10행: 날짐승에게까지 베푼 인정으로서의 까치밥
11~17행: 할아버지께서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남기신 짚신
18~23행: 머나먼 길의 서러움을 달래 줄 등불 같은 까치밥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까치 따위의 날짐승이 먹으라고 따지 않고 남겨 두는 까치밥을 통해 겨울철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푸는 고향의 훈훈한 정을 노래하고 있다. 자신은 신지 않을 짚신을 몇 죽 남기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타적인 마음과 까치밥마저 따려 하는 서울 조카아이들의 모습을 대비하여 각박한 인생길의 등불 같은 까치밥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결국 그런 마음씨가 담긴 까치밥이 앞으로 먼 길을 가야 하는 후손들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어 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작품 해설 2
<까치밥>은 ‘남도의 한’을 남성적인 어조로 구현해 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송수권이 쓴 시이다. 지은이 송수권은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등 다수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까치밥>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삶의 시련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교훈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은 ‘서울 조카아이들’이라는 구체적인 인물을 청자로 제시하고 있다. ‘서울 조카아이들’은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고 까치밥을 따는 존재들로 묘사되는데, 이를 통해 ‘까치밥’과 ‘고향’이 서로 등가의 의미를 지닌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즉, 시인이 까치밥을 따지 말라는 것은 고향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알려주려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이들이 까치밥을 따 버리면 ‘빈 겨울 하늘’만 남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허전할지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까치밥이 세상을 삭막하고 허전하지 않게 하는 의미를 지닌 것임을 알 수 있다.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곤경에 빠져 있는 이에게 까치밥은 “따뜻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때 까치밥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짚신”이 등장한다. 짚신은 홀로 외롭게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나그네들에게 든든한 길 보시가 되어 준다. 화자는 까치밥이 삶이 힘들 때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조카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까치밥을 따지 말 것을 당부하며 시를 마무리한다.
이 작품은 까치밥이라는 소재를 차용하여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러한 배려가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설득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화자는 ‘~아/~말아라’라는 명령 부정문 형식의 반복을 통해 이러한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한편,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세상살이를 ‘물굽이’로, 까치밥을 ‘등불’ 등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표현의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까치밥’과 ‘짚신’
서울 조카아이들이 따려고 하는 까치밥은 높은 나무 위의 과일을 몇 개 남겨 놓은 것이다. 추운 겨울날에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할 새들이나 짐승들에게 한 끼의 먹이가 되라는 의미이다. 이는 결국 다른 생명에게 힘이 되는 존재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짚신’ 또한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나 유랑민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까치밥과 짚신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타인을 위한 배려와 인심이라고 볼 수 있다.
2. 대비되는 시어의 의미
이 시에서 ‘까치밥’과 ‘짚신’, ‘고향’은 따뜻한 인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소재들이다. 시인은 ‘서울’, ‘빈 겨울’, ‘물굽이’, ‘두만강 국경’, ‘눈’, ‘겨울 하늘’ 등의 차갑고 각박하며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는 시어들과의 대비를 통해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우리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인정과 배려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3. 까치밥(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수확기에 높은 나무 위의 과일을 전부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놓은 것을 이르는 말. 이것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문화와 인정,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을 때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에게 한 끼의 먹이가 되라는 의미이다. 그 이름을 ‘까치밥’이라 한 것은 까치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친근한 동물이며, 반가움을 전해 준다고 알려진 길조이기 때문이다.
4. 명령형 어미의 사용 효과(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이 작품에서 화자는 ‘서울 조카아이들’에게 까치밥을 함부로 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사용된 ‘그 까치밥 따지 말라’라는 금지의 명령은 화자의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시에서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가 드러나는 말투를 ‘단정적 어조’라고 하는데, 단정적 어조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닥 잘라서 판단하여 말하는 투를 가리키며, 의지적 어조와도 통한다. 이러한 명령형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다면 특히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6. 작가 소개
송수권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송수권
송수권의 시는 재래의 무력하고 자조적인 한의 정서가 아니라 한 속에 내재한 은근하고 무게있는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40년 3월 15일 전남 고흥 태생. 순천사범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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