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 이형기

1. 본문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 나는 맹목(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단말마: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관념시

• 성격 : 서정적, 관념적

• 제재 : 폭포

• 주제 :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

• 특징 :

 ① 관념적 이미지로 자연적 소재를 바라보고 있음.

 ② 동음 반복, 통사 구조 반복을 통한 내재적 운율을 획득함.

• 구성 :

 1연 : 시퍼런 칼자국 – 산에 형성된 칼자욱과 같은 폭포

 2연 : 벼랑의 직립 – 벼랑에 형성된 폭포

 3연 : 장수 잠자리 – 폭포의 모습

 4연 : 맹목의 눈보라 – 무언가에 떨어져 흩어지는 폭포

 5연 : 2억 년 묵은 칼자국 – 변하지 않는 폭포

3. 작품 해설 1

 이 시는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대입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화자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시퍼런 칼자국'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 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현대시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폭포에서 떠오르는 관념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형상화한 시이다. 화자는 벼랑에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에서 시퍼런 칼자국을 떠올리며, 그로 인한 ‘단말마’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폭포의 모습에서 석탄기에 추락하던 장수잠자리를 떠올리며, 폭포의 물방울을 박살 나는 장수잠자리의 ‘복안’에 비유함으로써 화자가 인식하는 비극적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자연이라는 소재의 의미와 암시성

 전통적 인식과 달리 이 시에서 자연은 아름답게 드러나지 않는다. 산 자체가 화자가 되어 고통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연)에서 '그대'는 사람이고 '나'는 산이다. 자신의 몸에 칼자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2연)에서는 섬뜩한 속도감과 벼랑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3연)에서는 벼랑을 타고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장수잠자리로 묘사되어 드러나고 있다.

(5연)에서는 떨어지는 폭포의 시퍼런 물줄기가 자신에게는 아주 오래된 상처라고 절규하고 있다. 이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자연 현상을 객관적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내적 체험을 바탕으로 주관의 비극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폭포’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천재교육 참고)

 이 시에서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 형상물이다. 즉, 시인은 ‘폭포’라는 일반적 자연 현상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여 준다. 또한 그러한 시인의 인식은 이 시의 시어와 어조를 통해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시인은 떨어지고 부서지는 폭포의 모습에서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포착해 낸 것이다.

 

3. 이형기의 시세계와 ‘폭포’(두산 백과 참고)

 이형기는 감각이 돋보이는 치밀한 언어구사와 더불어 정서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존재에 대한 내밀한 자기인식을 추구해온 시인이다. 이형기의 초기 대표작인 이 시 역시 정교한 언어구사를 통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치열한 존재인식을 감각적 심상으로 잘 그려내 서정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같은 제목의 김수영(金洙暎)의 시 《폭포》는 '폭포'를 준열한 정신적 높이의 표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주관의 비극적 정서를 그려낸 이 시와는 전혀 다른 사회참여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6. 작가 소개

이형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형기

『꿈꾸는 한발』등을 창작했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개설] 경상남도 진주 출생. 이형기(李炯基)는 1950년 『문예(文藝)』지를 통해 16세에 등단했으며 한국 문단에서 천재문사로 불려왔다. 그는

terms.naver.com

7. 엮어 읽기

김수영 – 폭포

이형기 - 폭포.pdf
0.12MB

'문학 이야기 > 현대운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 이정록  (0) 2021.03.24
까치밥 - 송수권  (0) 2021.03.23
폭포 - 김수영  (0) 2021.03.17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0) 2021.03.15
정념(情念)의 기(旗) - 김남조  (0) 2021.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