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보며 - 서정주


■ 본문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관조적, 교훈적

․ 제재 : 가난, 무등산

․ 주제 : 가난을 이겨 내려는 삶의 여유와 긍정적 자세

․ 특징 :

 ① 무등산을 의인화하여 삶의 의미를 표현함

 ② 완곡한 명령형 어법을 통해 삶의 여유를 드러냄



■ 작품 해설 1

 해방 후 화해와 달관의 정신주의로 나아가는 맥락 위에서 쓰여진 작품. 6·25 사변 후의 물질적 궁핍 속에서 언제나 크고 의젓하고 변함없는 무등을 보며 시인은 이 시를 썼다. 산은 시인에게 의인적인 형상으로 보여진다.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산을 바라보며 시인은 헐벗은 자신의 처지를 차라리 떳떳하게 생각한다. 가난이란 한낱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이어서 가난할수록 허리 잔등이 드러나듯이 우리의 ‘타고난 마음씨’는 오히려 빛나는 것이 된다. 그 속에서 더욱 빛을 낸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는 푸른 산이 그 기슭에 향초를 기르듯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우리는 슬하의 자식을 소중하고 깨끗하게 기를 수밖에 없다는 의연한 긍정의 자세를 취한다. 참으로 인간을 찌들게 하는 것은 물질적인 궁핍이 아니라 정신적인 빈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의연한 깨달음이 삶의 어려운 고비에서도, 사람들을 갸륵한 사랑 속에 있게 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옥돌처럼 묻혔다고 생각하게 하기를 이 작품은 노래한다.


■ 작품 해설 2

 5연으로 된 《무등을 보며》전문이다. 6·25전쟁 직후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교수생활을 하던 시절, 물질적·정신적인 허기를 달래며 쓴 시이다.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진초록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산’처럼, 한낱 가난 때문에 우리들의 본질이 남루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무릎 아래 지란(향초)’을 기르는 무등산처럼 우리들도 자식들을 기르며, 부부의 정을 나누며 살아가다가 달관과 여유로운 자세로 인생의 오후를 받아들이자는 내용이다. 그래서 가시덤불 속에 뉘어질지라도 옥돌처럼 호젓하게 묻혔다고 위안을 삼자고 노래하고 있다. 세사에 시달리면서도 짐짓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 네이버 두산백과 참고


■ 작품 해설 3

 이 시는 가난이 인간의 타고난 본질까지 훼손시킬 수는 없기에 삶의 곤란함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살아가기를 권유하는 시이다. 화자는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그 청산을 본받아 의연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는 사람들이 청산과 같은 강건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가난은 그 정신의 강건한 생명력을 가릴 수 없는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곤궁한 삶 속에서도 청산을 본받아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부부간의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면서 의연하게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청산’은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이자 화자가 사람들이 지향하기를 바라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갈매빛’, ‘청산’, ‘지란’, ‘옥돌’, ‘청태’ 등에서 나타나는 푸른색 심상은 화자의 그런 태도를 잘 드러내 준다.

 - 2016년 EBS 수능특강 해설 참고


■ 작품 해설 4

 서정주의 작품 중에서 초기시의 정신적 갈등이 해소되고, 안정과 조화, 달관(達觀)의 경지로 발전한 후기시의 세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의 창작 동기를 보면 시인은 6.25 동란 후 몇 년인가를 광주에서 기거하며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아 그 당시 대학의 교수에 대한 처우는 말이 아닐 정도였다 한다. 내 남 없이 모두 궁핍하던 때인 만큼 점심을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일생에 처음 당하는 물질적 궁핍 속에서, 크고 의젓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무등산을 보며 시인은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는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선연히 서 있는 무등산의 모습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은 물질적 궁핍으로 왜곡되거나 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을 소중히 하고, 부부간에 서로 의지하고 믿음으로써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서는 자기 삶의 현실을 ‘가시덤불 쑥구렁(고난, 시련) 속에서도 옥돌같이 묻혀 있다.’는 정신적 승리감으로 대치한 의지적 자세를 보인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는 산을 바라보며 시인은 헐벗은 자신의 처지를 차라리 떳떳하게 생각한다. 가난이란 한낱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이어서, 가난할수록 허릿잔등이 드러나듯이 우리의 타고난 순수한 마음씨는 오히려 더욱더 빛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시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토대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작자는 마침내 푸른 산의 그 기슭에 향초(香草)를 기르며 살 듯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우리는 슬하의 자식들을 소중하고 품위 있게 기르며 살 수밖에 없다는, 삶에 대한 의연한 긍정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삶이 늘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힘겹고 괴로운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를 가질 것을 시인은 당부하고 있다. 시는 인격이라는 말이 있지만 궁핍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고매한 인격이 이 시에는 아주 잘 나타나 있다.


■ 심화 내용 연구

1. ‘무등산’의 의미

 이 시에서 ‘무등’은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으며, ‘지란’을 소중하게 길러 내고 있다. 또한 ‘가시덤불 쑥구렁’ 속에서도 ‘청태’처럼 사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살펴볼 때 주변의 환경에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수용하며, 담담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무등산을 보며 고난을 이겨 내는 삶의 지혜를 시적화자는 이끌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가난에 대한 화자의 태도

 가난이란 우리의 몸에 걸친 낡아 해진 옷과 같은 것일 뿐, 우리의 몸과 마음의 근원적인 순수함까지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난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고결한 정신만큼은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서정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