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본문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 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 성격 : 현실 비판적, 풍자적

- 어조 : 냉소적 어조

- 제재 : 새, 영화가 시작되기 전 풍경

- 주제 :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과 그 좌절감

- 특징 : 반어법, 반복법을 사용하고, 애국가의 시작과 끝에 맞춘 구성을 취함

- 구성

 1~2행 : 애국가 경청 ; 암울한 현실의 모습

 3~10행 :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비상 ; 현실에 대한 환멸

 11~16행 : 현실 극복의 소망

 17~20행 : 화자의 이상과 현실적 좌절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영화라는 여흥을 즐기는 데서조차 국가 권력의 압제를 느껴야 하는 당대의 현실을 반어적 표현과 냉소적 어조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시의 배경을 영화관으로 설정하여 사방이 단절되고 어두운 곳에 화자를 위치시킴으로써 화자를 독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으로 제시한다. 화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의무적으로 애국가를 들어야한다. 애국가가 시작하는 부분의 화면에는 수도 없이 많은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장관은 화자에게 아름다움이나 경탄의 대상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고, 화자도 새와 같이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곧 애국가는 끝이 나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소망 또한 좌절되어 주저앉게 된다. 이렇듯 시인은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특징과 영화가 상영되기 전 의무적으로 상영되는 애국가의 영상을 통해 암울한 독재 시대를 풍자하고, 동시대인들의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억압적인 시대상과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체념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와 역설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하지만, 그 극장 안에서도 시대의 억압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군사 독재 시절 행해지던 국민의례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조하며 획일적 생활과 의식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일상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어떤 몸짓도 거부당했던 암흑의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획일적으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서 누군가 의도하고 있는 애국심을 고취당하고 있는 현싱을 벗어나 화면 속의 새가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자유롭고자 한다. 누군가가 지어놓은 대열을 떼어 내고 자유롭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가진 시적화자는 화면이 끝나자마자 다시 자리에 앉고 만다. 즉,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주저앉는다’는 표현은 시적 화자의 좌절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고 있다.

 화면 속 ‘삼천리 화려 강산’의 조국은 현실에서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화면 속 자유로운 새떼들과 달리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끼룩끼룩’, ‘낄낄’과 같은 새떼의 소리를 통해 비웃고 있고, ‘낄낄’대고, ‘깔깔’대는 우리들의 행동을 통해 조롱하고 있다.

- 디딤돌, 현대시 필수아이템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이 세상’의 속성  

 ‘이 세상’은 당시의 시대적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세상’의 속성은 시의 맥락 속에서 ‘일제히’, ‘일렬 이열 삼렬 횡대’, ‘대열’과 같은 시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일제히’는 ‘여럿이 한꺼번에’라는 의미로 획일성을 의미하고, ‘일렬 이열 삼렬 횡대’는 ‘대열’의 종류이며, ‘대열’은 ‘삐뚤어지지 않고 기준에 맞추어 가지런히 선다’는 의미의 군대 용어이다. 이러한 시어들의 의미가 공통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군사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세상’의 속성은 개인의 자율성이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집단적인 획일성을 강요하는 군사 문화적인 속성이다. 즉, 시인은 ‘이 세상’을 군사 독재 하의 암울한 시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반어적 표현

 반어적 표현은 본래의 뜻과는 반대되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 뒤에 숨은 반대의 뜻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 작품에서는 ‘경청’, ‘삼천리 화려 강산’의 구절이 이에 해당한다. 즉, 획일적으로 애국심마저 강요하는 군사 독재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애국가는 강요되고 있기 때문에 경청하지 못하고, 조국(삼천리 화려 강산)의 현실이 결코 아름답지도 못함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냉소적 태도와 어조

 냉소적이라는 것은 ‘무관심하거나 쌀쌀한 태도로 비웃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의 화자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애국가를 들어야 하는 것을 권력이 강요하는 애국주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인다. 즉, 시인은 애국가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애국가가 매일 국기 게양식, 국기 강하식을 필두로 해서 일상생활에서 시시 때때로 들려지는 상황이 정통성 없는 군사 독재 세력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부정의함이 인식되지 않게 하려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요, 암묵적인 애국심의 강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국가의 영상 중에 나오는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에서 새들이 인간들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끼룩거리’는 것이 인간들의 현실을 ‘낄낄대면서’조롱하고 야유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우리도 ‘낄낄대면서 / 깔쭉대면서’ 권력을 조롱하고 야유하고 싶다는 지극히 냉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냉소적 어조는 애국심이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시인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세상을 뜨고 싶은 욕망과 주저앉는 좌절 사이

 시의 구조상에 있어, 이 시는 영화 시작 전의 애국가의 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애국가가 끝나는 순간에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 중간에 나오는 새들은 아마도 애국가가 불려지면서 보이는 화면에 등장하는 새들일 것이다. 화면에는 새들이 날고,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 때 일어나서 다시 앉는 과정 중에 시인은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새들이 자신의 대형(隊形)을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을 시인은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시인이 항상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소망의 원천을 탐색하기란 이 작품만으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추측해 본다면,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이곳에서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애국가를 듣기 위해 일어섰다 앉았다 해야 하는 나라란 올바른 곳이 아닐 것이다. 일종의 강제 동원 체제라는 인식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유롭게 보아야 하는 영화관에서조차 애국가를 울려 대며 나라를 사랑하라 외쳐 대는 그런 엄숙주의 속에서 시인은 갑갑하다. 그래서 시인은 '낄낄대면서 / 깔죽대면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을 뜨고 싶었던 시인은, 애국가 후반부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의 시구에 다시 가로막힌다. 이 나라를 길이 보전하리라는 말은 시인에겐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상황 인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자리에 앉는다. 이 주저 앉음은 시인을 극도로 괴롭히는 것일 텐데, 왜냐 하면 이 세상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극도의 절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빠져 나갈 수 없으며 여기에 주저앉아야 한다는 생각은 시인으로 하여금 이곳 이 나라에서의 시적 저항의 길을 터놓는다. 그것이 황지우 시인이 계속적으로 시를 써나가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 한계전, 한계전의 명시 읽기


5. 황지우 시의 풍자 정신과 모더니즘

  아마도 오늘의 독자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사전의 어떤 의식 없이 곧바로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80년대의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하기에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애국가의 연주 소리가 시작되면 모든 관객들은 일시에 의자에 일어나 스크린에 방영되는 영상을 보며 애국가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립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헌정하는 의식 또는 경배라 할 수 있다. 대개는 조국의 번영과 국토의 아름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애국심을 의식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 작품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낙동강 하류의 철새 도래지 을숙도의 경관을 보여 주는 영상이다. 수만 마리의 아름다운 철새들이 을숙도의 갈대밭을 차고 푸른 가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는 데 유감이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영화 감상의 풍속을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독특한 풍자로서 당대의 우리 삶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크(A.M.Clack)에 의하면 풍자란 진지한 것과 경박한 것, 사소한 것과 교훈적인 것, 극히 유치한 것과 고도로 세련되거나 우아한 것 사이를 왕복하면서 우행(愚行)의 폭로와 사악(邪惡)의 징벌을 기도하는 언술이며 넓은 의미로 위트, 아이러니, 비꼬기, 조소, 냉소, 욕설 등이 이 영역에 들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풍자의 기법으로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의 화자는 객석에서 기립하여 애국가의 경청과 함께 스크린에 떠오르는 영상을 본다. 그의 눈에는 마침 을숙도에서 철새들 수만 마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장면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광경에서 화자는 본 영화 상영 전의 이 같은 의식이 의도하는 바, 국토의 아름다움이나 조국의 번영, 혹은 안식이 느껴지기보다는 문득 비상하는 저 철새들처럼 자신도 자유롭게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시적 진술인 까닭에 직접적인 언급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화자의 이와 같은 의식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심보다는 혐오감이나 배신감이 팽배해 있음을 독자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세영, 20세기 한국 시의 표정


6.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현실 인식

 시인 황지우는 우리의 현실적, 시대적 상황을 암울하게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넣고 있는 사람들을 군부 독재자도, 정경 유착의 장본인인 기업가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 세력에 항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민초, 민중들이라고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황지우가 자신의 그러한 현실 인식을 고백한 시이다.

 이 시에 접근해 보면 우리는 이 시의 구조를 있게 하는 몇 가지 중심 언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애국가, 을숙도, 새 떼들, 날아간다, 우리, 자기 자리, 주저앉는다.’ 들이다.

 영화관이라는 현실 공간은 M.푸코의 정신 병동이나 교도소를, 영화라는 감시병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공간으로서 현대의 한국적 현실 상황이다. 그리고 애국가는 정신 질환자나 죄수들을 세뇌시키는 언어군이다. 결국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어둠 속에서 애국가를 들어야 하는 그것도 타인의 의지에 한마디 항거도, 이의도 달지 못하고 들어야 하는 ‘우리’이다. 그래서 새 떼들이 자기들의 보금자리인 을숙도를 떠나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자기들의 세상을 /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듯이, ‘우리도 우리들끼리 / 낄낄대면서 / 깔쭉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데 애국가가 끝나는 것이다.

 지독한 역설이다. 시인 황지우는 결코 조국을 떠나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더욱 울분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저앉는다’는 우리가 우리 자신도 통어하지 못하는 비참한 딜레마를 역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하게 표현한 역동적 이미지이다. 

- 임영천, “한국 현대 문학과 시대 정신”(국학자료원, 2000)


■ 작가 소개

황지우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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