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서정적, 애상적, 전통적, 영탄적, 회상정
• 제재 :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가을 강
• 주제 : 인생의 유한성과 한(恨), 고독에 대한 한(恨), 인간의 본원적 사랑과 고독과 무상성 그리고 한의 극복
• 특징 :
① 민요적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전통적 정감을 드러냄.
② 동일 시구의 반복으로 정서가 고조됨.
③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주제를 심화함.
■ 작품 해설 1
시적 화자는 저녁 노을을 받아 붉게 물든 강물을 보면서 슬픈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추억은 구어체의 문체를 통해 운율감을 획득하면서 화자의 내면의 정서와 조응을 이루고 있다. 특히 ‘울음이 타는’이라는 표현을 통해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시키고 있으며, 이는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함께 소멸의 이미지가 갖는 슬픔(한)을 집약시키고 있다. 시 전체에서 화자는 ‘울음’을 단계적으로 강화시키는 점층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1연에서 발단하여 2연에서 점점 고조되다가 3연에서는 절정에 다다르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의 시어의 반복이 주는 리듬효과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의 배경과 분위기 또한 작품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저녁’과 ‘가을’은 ‘소멸’, ‘종말’, ‘인생의 황혼기’를 의미하는 시어이다. 이러한 시간적·계절적 배경 속에서 화자는 슬픔을 ‘울음이 타고’, ‘소리 죽은’것으로 표현함으로써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비애를 강물의 감각적 이미지로 제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드러낸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강’의 이미지를 통한 ‘한’의 내면화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삶, 사랑, 죽음 같은 문제로 인해 불안과 갈등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은 삶의 문제에 대한 시적 화자의 슬픔과 한은 매우 깊으며 극한적이다. 단순히 ‘운다’가 아니라 ‘울음이 타는, 깊이가 있는 강’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화자가 내면으로 한을 태우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울러 마지막 행의 ‘소리 죽은 가을 강’은 비애나 슬픔이 승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들이 인간의 내면 깊숙이 흐르고 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2. ‘물’과 ‘불’의 이미지
이 시에서 화자는 ‘가을 햇볕’,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과 함께 저녁 노을이 비친 강물을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소멸과 죽음의 이미지를 갖는 시어들이다. 이렇듯 대조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물’과 ‘불’의 순환과 소멸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적 존재로서의 본원적인 ‘한’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화자는 삶의 덧없음에 대한 한(恨)이라는 자신의 정서를 ‘강물’에 투영하는 한편, 마지막 행의 ‘소리 죽은 가을 강’으로 집약하면서 안으로 삭여진 삶의 서러움과 유한의 한을 표현하고 있다.
3. 박재삼 시인의 ‘울음’
박재삼의 시가 표출하고 있는 슬픔의 근원이 때때로 그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있음이 확인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비애감을 조감해 볼 때, 단순한 개인사적 과거 체험에서만 흘러 나오는 감정이 아님을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비 오는 날’등은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자주 보이는 ‘울음’은 그 자신의 응어리진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 보듯 그것은 자연(自然) 가운데서 흘러 나오기도 한다. 그의 시가 한국의 비가(悲歌)의 한 전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와 같이 ‘비애’라는 단순한 색조로 자연이나 세계를 해석하는 그의 창작 태도에 있는 것이다.
- 신규호, ‘박재삼론 - 비애와 절제의 미학’에서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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