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죄인 - 채만식


민족의 죄인 - 채만식

줄거리

19464, ‘는 김군이 주간(主幹)하는 잡지사인 P사에 들렀다가 윤군으로부터 대일 협력에 관한 치욕스런 조롱과 비판을 당한다. 그리고 보름 동안 두문불출, 마음의 병을 앓는다. 그리고 의 과오를 회상하며 정리한다.

가 대일 협력의 첫걸음을 디딘 것은 19432, 황해도 강연이었다. 미영(美英) 격멸 국민총궐기대회에 가서 미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황군(皇軍)의 승리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다섯 차례나 더 강연에 참가했는데 청중 가운데 그 누구도 개수작 집어치워라하고 고함치는 자가 없었다.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용렬하게 협력하고 있지만, 청중 가운데 젊은이도 많건만 의 강연에 대한 반감과 반발이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런데 하루는 조선의 학생들 이십 여 명이 찾아와 학병으로 끌려갈 위기인데 어떻게 처신하면 좋으냐고, 여관으로 몰려와 의 고언(苦言)을 얻고자 하였다.

우리가 앞으로 일본 사람과 꼭 같은 권리를 주장하자면 피도 좀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얘기해 준다. 이십 명의 신원을 모르기에 의 반일적인 충고가 저들에게 알려지면 그 옛날(‘1938독서회사건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 한 달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처럼 욕을 당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들이 실망의 눈빛으로 돌아간 후 한 학생이 남아 의 진정(眞情)을 묻는다. “일제에 협력하지 마시오.” 그는 눈물을 훔치며 돌아간다.

그 후 19445, 평북 양시의 알루미늄 공장을 견학하고 방문기를 썼고, 이보다 조금 앞서 <매인신보>여인전기(女人戰紀)라는, 내선일체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의 자책감과 더 이상 저들에게 시달릴 수 없다는 정신적 피로감이 격해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김군의 P사에 들렀을 때, 전에 기자였던 윤군(‘보다 두 살 아래)이 나타나 친일한 지식인들을 규탄하는 것이다. 윤은, 자신은 일제에 협력하지 않기 위하여 신문사를 사퇴했다면서, 대일 협력한 지식인들을 싸잡아 통박한다. ‘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김군은 대부분의 기자나 지식인들이 호구지책으로 일을 한 것이지 대일 협력을 위하여 직장을 지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 생활이 매우 궁핍했던 당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사실 윤은 부유한 가정 배경 때문에 사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김군은 문필가가 친일의 글을 쓴 게 대일 협력이라면 윤군처럼 농사를 지어 공출에 협력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쟁에서 는 충격을 받고 낙향을 결심하나, 아내가 간곡히 사정하므로 서울에 머물기는 하되, 바깥 출입을 삼가며 지낸다.

어느 날, 중학 졸업반인 나의 스무 살의 조카가 방문한다. 학교가 동맹 휴학을 하여 우리 집에서 공부하러 왔노라 한다. 친일파 선생을 배척하기 위한 동맹 휴학인데 귀찮아서 빠져 나왔다 한다. ‘는 격한 심정으로 그를 꾸짖는다. “옳은 일을 위해선 불 가운데로 뛰어들어야 돼 이놈아.” ‘의 속을 빤히 아는 아내를 보기가 는 쑥스럽다.

요점 정리

배경 : 시간 - 광복 후, 공간 - 서울

경향 : 사실주의

성격 : 사실적, 자기 고백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 : 대화가 중심을 이루는 문체로 주제 의식을 드러냄

구성 :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결말4단 구성

 

등장 인물

: 소설가. 작가 채만식의 분식. 일제이트집으로 감옥에 갇히고 온갖 협박과 교묘한 술책으로 19432월 황해도에 강연 나간 것이 대일협력의 첫 걸음. 그 후 수차례의 강연에 나간다. 해방 후 잡지사 주간인 김군이 불러 잡지사에 갔다가 거기서 자신과 다른 처신을 한 윤군을 만난다.

김군 : P사라는 잡지사 주관이며 의 친구. 윤군과 같이 신문사에 근무한다. 일제의 강압적인 대일협력요구를 받고 윤군은 뿌리치고 시골로 내려 가버리지만 자신은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계속 신문사에 남아 일제가 요구하는 글을 쓴다.

윤군 : ‘보다 두 살 아래의 나이로 김군과 같은 신문사에 근무했던 사람. 일제의 대일협력요구에 응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은거한다. 해방 후인 어느 날 P사에 와서 김군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조카 : 중학교 상급생으로 의 조카. 친일교사를 배척하기 위한 동료 학생들의 동맹 휴학에 가담하지 않고 집으로 내려왔다가 숙부인 에게 호된 질책을 당한다.

주제 : 친일 행위에 대한 자기 반성

출전 : <백민> (1948)

 

이해와 감상

1948<백민(白民)> 10월 호에 전반부가, 19491월 호에 후반부가 실린 중편소설이다. 작가 채만식 자신의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변명이 담긴 자전적 소설. 모두 문필가였던 세 사람이 등장하여 식민지 시대의 행적에 대하여 비판과 반박과 자기 옹호의 논리를 편다. 그러나 는 침묵한다. 민족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한계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일 협력의 수렁에 빠져 들었던 경위를 고백하면서 자기 변명의 태도로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카가 등장하는데, 그 조카를 꾸짖는 의 심경이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채만식의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광복 후 친일(親日) 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 써진 작품이었지만, 당시 작가나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시대인식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보이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나 소극적 내지는 부정적 태도 속에서 역으로 일제 말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한편 이 작품은 채만식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적과 생각, 그리고 시대상황이 모두 채만식의 그것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하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꼿꼿한 자존심과 애국심이 아니라 그저 힘의 논리에 따라 친일행위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 동맹휴학을 하려는 동무들로부터 달아나려는 조카를 훈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한 질책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당시 친일 행위를 한 인사들을 청산하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채만식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민족의 죄인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듯이, 일제 말 친일 강연과 작품 창작을 했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고백한 자전적 성격을 띤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하나의 단순한 참회록과는 성격이 다르며 어떤 의미에서는, 친일 행위를 하게 된 과정과 배경을 일체 불문에 부친 채, 오로지 그 결과만 놓고 단죄를 일삼으려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지식인 사회의 풍토 같은 것에 대한 항변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보충 학습

김군윤군의 대립

윤군은 의 친일 행위를 반민족적 행위라며 비판한다. 이에 대해 김군은 친일을 하지 않으려고 일자리를 버린다면 당장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를 내세워 친일 행위를 변호한다. ‘는 윤군이 재산의 덕분으로 결백할 수 있었다는 점과 누구라도 자기와 같은 죄인을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친일 행위를 단죄하려고 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즉 작가는 친일 행위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김군의 말을 통해 결국 모두가 민족의 죄인이고 결국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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