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향 - 이호철


<이 작품은 2014학년도 EBS 수능 완성 B형에 수록되었습니다.

EBS 수능 완성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교재입니다.>


전체 줄거리

1.4후퇴 당시 중공군의 남하를 피해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탄 는 두찬, 광석, 하원을 만난다. 부산 거리에 도착한 넷은 화찻간에서 잠을 자고 부두에 나가 일을 하며 고향에 갈 날만 기다린다.

생활이 극도록 어려워지면서 두찬과 광석은 사이가 멀어지고, 한 달이 지나자 제각기 다른 길을 찾으려 한다. 자연스레 서로의 관계가 소원해져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광석이가 출발하는 화차에서 뛰어내리다 왼팔이 잘려나가는 부상을 당한다. 두찬은 내버려 두고 가자며 가 버린다. ‘와 하원은 광석을 데려왔으나 이튿날 죽고 만다.

도망간 두찬이 돌아왔으나 관계는 더욱 서먹해진다. 어느 날 두찬은 술을 먹고 에게 광석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을 표현하고는 이튿날부터 돌아오지 않는다.

하원은 두찬이 떠났음을 기뻐하며 둘이서 잘 살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역시 하원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하원은 돈을 벌어 귀향할 것을 꿈꾸지만 마음 속으로 이미 는 하원을 버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요점 정리

배경 : 시간적 - 625 전쟁 당시, 공간적 - 부산 항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1인칭 관찰자 시점)

제재 : 고향을 떠나 월남한 네 청년들의 삶

주제 :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황량한 삶과 그에 따른 애환, 고통

특징 고향을 버리고 월남한 실향민들의 의식을 반영함.

6 · 25 전쟁을 반영한 사실주의 문학임.

작가의 실제 체험이 담겨 있음.

출전 : “문학예술”(1955)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제목인 탈향스스로 고향을 벗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실향이 아니라 탈향이라는 점에서 고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아픔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 고향을 잃고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이나 고통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지나간 과거로부터의 벗어남을 더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 과거의 고향 생각에 빠져 있는 하원을 마음속으로 버리기로 결심하는 것은 바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고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은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제 의식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탈향고향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소박하고 인정어린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벗어나, 근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개인주의적인 삶으로서의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함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전쟁으로 북쪽의 고향을 버리고 월남한 사람들인 실향민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홉의 나이로 단신 월남하여 부산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작가의 실제 체험이 담겨 있다.

등장 인물들은 고향을 생각하는 동안만큼은 행복하다.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던 고향, 잘 웃던 이웃집 형수의 웃음이 기억 속에서 환하게 밝혀져 있는 고향을 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꿈과는 다르게 참혹하다. 같은 고향이라는 공동체 의식만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의 이해관계가 그들을 갈라 놓은 것이다. 마침내 ''는 돌아갈 기약조차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만 짜고 있는 감상주의적 태도와 결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탈향'은 일차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체험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6.25 전쟁을 반영한 사실주의 문학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탈향'은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품에서, 그리고 원초적인 고향의 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고향 상실은 인간에게 고향 회귀 의식을 낳는다. 실존주의 문학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인간의 조건을 '실존'이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작품의 밑바탕에도 실존주의적 경향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해와 감상3

이 소설이 붙들어 탐구하는 대상은 - '6·25 전쟁'이라는, 개인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추상적인 범주가 아니라 - 바로 '6·25 전쟁의 후유증' 이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남한'이라는 분명한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그것을 인정하고 새롭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실존과의 대결이라 하겠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을 포기하고, 또 무엇을 극복해내야 하는가는 이제 막연하게 생각해야할 인생의 길이 아니라 바로 일어나 화차 밖으로 나서면 짊어져야 하는 막중한 현실인 것이다. 이렇듯 달라진 현실 조건을 인식하는 구체적인 체험들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니라 주어져 버렸고, 그것의 뒤에는 전쟁이 놓여 있으며, 개개인의 잃어버린 고향의 그림이 말라붙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탈향'은 막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수동적인 '실향(失鄕)'과는 달리 고향을 떨쳐 내야 하는 자극적이고 실존적인 명령이다. 그러나 너무나 힘겹고 고단한 '지금, 여기'에의 천박한 현실감 속에 '이제는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향'은 오히려 더욱 '모든 것이 있었던 것만 같은' 환상태(幻想態)로 바꾸어 놓는다. 나이가 가장 어린 하원의 독백은 이러한 현실적 체감과 환상적 고향의 반비례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편 '우리 넷이 헤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로 대표되는 대화는, 이방인으로서의 불안감을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더욱 옥죄어 붙들어 두려는 욕망으로 나타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이 점점 실제적인 삶의 문제와 부닥치고, 귀향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네 사람 사이에는 이에 대한 미묘한 견해 차이가 생기고, 그것은 모두 언젠가 돌아갈 고향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는 의구심 속에서 이루어진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해와 감상4

이 작품은 6·25전쟁 당시 부산을 배경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작품은 귀향 소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피난민의 고통스러운 삶만을 그리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이 작품은 고향을 잃은 것에 대한 한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길을 찾고 있는 실향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광석과 두찬의 갈등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상황이 어려워져 생활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따라서 이성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인간의 사악함과 나약함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러한 나의 태도는 같은 고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엉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 내밀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결말에서 ''는 돌아갈 기약이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만 짜고 있는 하원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탈향'을 감행한 것이다. ''는 이로써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 모습은, 전후 소설이 소박한 휴머니즘과 비장한 영탄조에 이끌리는 것에서 벗어나 객관적 현실의 구체적 탐구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보충 학습

화찻간이 상징하는 의미

화찻간은 네 사람이 피난 와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머무는 공간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기차의 일부분인 화찻간은 고정되고 안정된 장소가 아니다.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임시 거처이기 때문에 불안한 삶의 상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광석은 이러한 불안한 삶 속에서 기차에 치어 죽게 되는데, 이러한 죽음을 통해 네 사람의 불안한 사회적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현대 사회의 삭막한 삶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광석이 다른 친구들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광석은 사교성이 좋은 성격의 인물이다. 고향에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광석은 토박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곳에 적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런 광석의 입장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실향민과 '탈향'의 등장인물

실향민은 고향을 떠난 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이다. 이 말은 남북 분단으로 북한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 그대로 정착한 북한 출신 사람들과 6.25전쟁 때 공산주의 사회 체제를 반대하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을 총칭한다. 이들 중에는 일가족이 모두 남하하거나 남한에 정착한 경우도 있으나, 분단이나 피난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가족을 고향에 두고 혼자 온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있게 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에 따라 한국의 실향민은 고향을 다시 찾는 일 못지 않게 떨어져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간절한 소원이다.

이 작품에서는 195012월 별안간에 월남해 온 네 사람이 부산의 제3부두에서 부두 노동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는데, 화자인 ''를 포함해 광석, 두찬, 하원은 모두 고향 마을에서 같이 피난 나온 사람들이며, 함께 부두 노동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다만 화차살이를 한 일은 없는데 그 당시 방을 못 얻은 피난민이던 일부가 더러 화차살이를 하는 것을 보고, 들은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등장인물이 겪은 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호철의 초기 소설(小說)에 대한 평가

이호철의 초기 소설들은 분단 상황에 대한 실존적인 삶의 문제, 적응의 문제, 분단 상황의 인식과 과거 기억과의 결별 등을 다루고 있으나, 초기 소설 이후부터는 소시민적 삶, 한국 현대 사회와 도시 속에서의 인간 삶의 양상 등으로 초점을 바꾸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호철의 초기 소설은 , 중후반 소설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살펴보기 위해 근대적 삶으로의 이행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탈향' 경우도 네 사람의 이해 관계에 의한 결집 와해 현상을 대개 분단의 현실과 전쟁이라는 상황이 낳은 인간 관계의 황폐화 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집단으로 결속된 인간 관계가 산업사회로 가면서 개개인으로 와해되는 순간이며, 새로운 도시 사회로서의 진입 모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호철의 초기 작품들은, 그의 월남 경험이 너무나도 극단적인 바, 분단의 체험적 경험에 의한 형상화이며, 실존적 독존(獨存)의 위기 속에서 삶의 방향에 대한 모색, 적응의 노력 등으로 전쟁과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은 온전한 이해로 보인다



'문학 이야기 > 현대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목 - 박완서  (0) 2015.04.13
목마른 뿌리 - 김소진  (1) 2015.03.20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0) 2014.10.13
민족의 죄인 - 채만식  (0) 2014.04.22
논 이야기 - 채만식  (0) 201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