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 -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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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차설. 울대 군중에 영하여 일시에 불을 지르니 화약이 터지는 소리 산천이 무너지는 듯하고 불이 사면으로 일어나며 화광이 충천하니 부인이 계화를 명하여 부적을 던지고 좌수(左手)에 홍화선(紅花扇)을 들고 우수(右手)에 백화선(白花扇)을 들고 오색실을 매어 화염 중에 던지니 문득 피화당으로부터 대풍이 일어나며 도리어 호진(胡陣) 중으로 불길이 들이치며 호병이 화광 중에 들어 천지를 분변치 못하며 불에 타 죽는 자 부지기수라. 울대 대경하여 급히 퇴진하며 앙천탄식하며 가로되,

  “기병하여 조선에 나온 후 병불혈인(兵不血刃)하고 방포일성에 조선을 도모하고 이곳에 와 여자를 만나 불쌍한 동생을 죽이고 무슨 면목으로 임군과 귀비를 뵈오리오.”

  통곡함을 마지아니하거늘 제장이 호언(好言)으로 관위(寬慰)하며 의논 왈,

  “아무리 하여도 그 여자에게 복수할 수는 없사오니 퇴군하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고 왕비와 세자 대군과 장안 물색을 거두어 행군하니 성외(城外)의 울음소리 산천이 움직이더라.

▶울대 군중을 초토화한 박씨 부인

  차시 박 부인이 계화로 하여금 적진을 대하여 크게 외쳐 왈,

  “무지한 오랑캐 놈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왕은 우리를 모르고 너 같은 구상유취를 보내어 조선을 침노하니 국운이 불행하여 패망을 당하였거니와 무슨 연고로 아국 인물을 거두어 가려 하는가. 만일 왕비를 뫼셔 갈 뜻을 두면 너희 등을 함몰(陷沒)할 것이니 신명을 돌아보라.”

하거늘 호장이 차언을 듣고 소왈,

  “너의 말이 가장 녹녹하도다. 우리 이미 조선 왕의 항서를 받았으니 데려가거니와 아니 데려가기는 우리 장중에 달렸으니 그런 말은 구차히 말라.”

하며 능욕이 무수하거늘 계화 다시 일러 왈,

  “너희 등이 일향(一向)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니 나의 재주를 구경하라.”

하고 언파에 무슨 진언을 외우더니 문득 공중으로 두 줄 무지개 일어나며 우박이 담아 붓듯이 오며 순식간에 급한 비와 선풍(旋風)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 호진 장졸이며 말굽이 얼음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촌보(寸步)를 운동치 못할지라.

  호장이 그제야 깨달아 가로되,

  “당초에 귀비 분부하시되 조선에 신인이 있을 것이니 부디 우의정 이시백의 집 후원을 범치 말라 하시거늘 우리 일찍 깨닫지 못하고 또한 일시지분을 생각하여 귀비의 부탁을 잊고 이곳에 와서 도리어 앙화를 받아 십만 대병을 다 죽일 뿐 아니라 골대도 무죄히 죽고 무슨 면목으로 귀비를 뵈오리오. 우리 여차한 일을 당하였으니 부인에게 비느니만 같지 못하다.”

▶계화가 왕비를 뫼셔 가려는 울대를 크게 혼냄.

하고 호장 등이 갑주를 벗어 안장에 걸고 손을 묶어 팔문진 앞에 나아가 복지청죄하여 가로되,

  “소장이 천하에 횡행하고 조선까지 나왔으되 무릎을 한 번 꿇은 바 없더니 부인 장하(帳下)에 무릎을 꿇어 비나이다.”

하며 머리 조아려 애걸하고 또 빌어 가로되,

  “왕비는 아니 뫼셔 가리이다. 소장 등으로 길을 열어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고 무수히 애걸하거늘 부인이 그제야 주렴을 걷고 나오며 대질 왈,

  “너희 등을 씨도 없이 함몰하자 하였더니 내 인명을 살해함을 좋아 아니하기로 십분 용서하나니 네 말대로 왕비는 뫼셔 가지 말며 너희 등이 부득이 세자 대군을 뫼셔 간다 하니 그도 또한 천의를 좇아 거역지 못하거니와 부디 조심하여 뫼셔 가라. 나는 앉아서 아는 일이 있으니 불연즉 내 신장과 갑병을 모아 너희 등을 다 죽이고 나도 북경에 들어가 국왕을 사로잡아 설분(雪憤)하고 무죄한 백성을 남기지 않으리니 내 말을 거역지 말고 명심하라.”

하니 울대 다시 애걸 왈,

  “소장의 아우의 머리를 내어 주시면 부인 덕택으로 고국에 돌아가겠나이다.”

부인이 대소 왈,

  “옛날 조양자(趙襄子)는 지백(知伯)의 머리를 옻칠하여 술잔을 만들어 이전 원수를 갚았으니 나도 옛날 일을 생각하여 골대 머리를 옻칠하여 남한산성에 패한 분을 만분 일이나 풀리라. 너의 정성은 지극하나 각기 그 임군 섬기기는 일반이라. 아무리 애걸하여도 그는 못 하리라.”  

▶울대를 꾸짖는 박씨 부인

  울대 차언을 듣고 분심이 충천하나 골대의 머리만 보고 대곡할 따름이요, 하릴없어 하직하고 행군하려 하니 부인이 다시 일러 왈,

  “행군하되 의주로 행하여 임 장군을 보고 가라.”

  울대 그 비계(秘計)를 모르고 내렴에 헤아리되,

  ‘우리가 조선 임군의 항서를 받았으니 서로 만남이 좋다.’

하고 다시 하직하고 세자 대군과 장안 물색을 데리고 의주로 갈새 잡혀가는 부인들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여 왈,

  “박 부인은 무슨 복으로 환(患)을 면하여 고국에 안한(安閒)히 있고 우리는 무슨 죄로 만리타국에 잡혀가는고. 이제 가면 하일(何日) 하시(何時)에 고국산천을 다시 볼고.”

하며 병불혈인(兵不血刃)하는 자 무수하더라. 부인이 계화로 하여금 외쳐 가로되,

  “인간 고락은 사람의 상사라. 너무 슬퍼 말고 들어가면 삼년지간에 세자 대군과 모든 부인을 뫼셔 올 사람이 있으니 부디 안심하여 무사득달(無事得達)하라.”

  위로하더라.

▶울대에게 임 장군을 보고 갈 것을 당부하는 박씨 부인



■ 핵심 정리

• 갈래 : 국문 소설, 역사 소설, 군담 소설, 여걸 소설, 도술 소설

• 배경 : 병자호란

• 성격 : 역사적, 비현실적, 전기적

• 제재 : 병자호란, 박씨의 영웅적 활약상

• 주제 :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 박씨 부인의 영웅적 기상과 재주

• 특징 : 

  ① 비현실적이고 전기적(傳奇的)인 내용임.

  ②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여성 영웅 소설임.

  ③ 변신 모티브가 반영되었음.

• 의의 : 병자 호란을 배경으로 한 작자, 연대 미상의 군담 소설로,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여성의 시련 과정을 보여준 소설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여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이시백의 아내 박씨는 영웅적 기상과 재주로 호왕과 적장을 농락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한다.

• 등장 인물

 박씨 부인 : 이시백(李時白)의 아내. 천하의 박색이었으나 자신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행동하는 능동적 성품을 지닌 여인(→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 영웅적 기상과 재주로 호왕(胡王)과 적장을 농락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한 애국적인 여인

 이시백 : 작품의 초반에 소개된 것과는 다르게 여자의 현숙한 덕보다는 미색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물로 들어남


■ 줄거리

 조선 인조 때 서울 안국방에서 태어난 이시백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문무를 겸하여 그 이름이 온 나라에 떨쳤다. 아버지 이 상공의 주객으로 지내던 박 처사는 자신의 둘째 딸 배필이 병조 판서 이득춘의 아들 이시백임을 알고 청혼한다. 이시백은 첫날 밤 부인이 천하의 박색임을 알고 대면조차 하지 않는다. 부인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청하여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시비 계화와 지내며 신이한 기적을 보이지만, 시백은 거뜰도 보지도 않는다. 박씨의 신이한 기적으로 남편을 장원급제시킨다. 박씨는 시기가 되어 3년만에 액운을 벗고 천하 절색 절대가인이 되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백은 크게 기뻐하여 박 씨의 뜻을 그대로 따르고,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게 된다. 이 때 중국의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수만의 병사를 주어 조선을 침략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청하였으나 간신 김자점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서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 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만은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 용골대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형 용울대도 크게 혼을 내 준다. 그러나, 박씨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오랑캐의 침략을 막아 내지만 나라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질을 보낸 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는 박씨를 충렬 부인에 봉한다. 박씨와 이시백은 국난을 극복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 선계로 돌아간다.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허구적 내용을 가미한 역사 소설이자 군담 소설이다. 등장인물인 박씨는 허구적 인물로, 실존 인물인 이시백의 아내로 등장한다. 박씨의 활약상을 통해 병자호란으로 인한 민족의 상처, 패배 의식을 극복하려는 것이 이 작품의 창작 의도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필사본과 활자본이 30여종이나 전하는 '박씨전'은 조선 후기에 매우 인기있는 한글 소설로,  이 작품은 역사 군담에 속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임진록’이나 ‘임경업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박씨전’은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던 이시백의 부인, 박씨라는 가공 인물의 이인(異人)적인 행위를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과 패배를 설욕하고 있는 작품으로 특이한 것은 박씨라는 여자가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으로서 국가 전란에 과감하게 맞서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일부 여성 사회에서 일기 시작했던 여성들의 남성 사회에 대한 도전의식과 함께 이민족으로부터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인 승리 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비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14년에 청(淸)이 침입하여 군신의 예를 강요한 치욕적 사건이다. 인조(仁祖)는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갖추었는데, 현실에서의 패배를 문학적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박씨전이나 임경업전으로 나타났다. '박씨전'은 전반부의 가정내의 갈등과 후반부의 사회적 갈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갈등에서, 박씨는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생기는 시련을 탁월한 능력으로 극복한다. 후반부에서는 무력한 남성들과 정면 대결해서 승리하며,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호장에게 복수를 하여, 실제 전쟁에서 진 패배감을 정신적인 승리로 보상한다. 박씨전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었다. 역사상의 실제인 병자호란과 실제 인물 이시백을 등장시켜 현실감을 주고, 유능한 여성 박씨의 변신과 도술을 통해 무능한 위정자들과 남성들을 은근히 비판하여 여성 독자들을 흐뭇하게 한 점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심화 내용 연구

1. 박씨 부인의 탁월한 능력을 통해 알 수 있는 당시의 여성 의식  

  이 소설에서는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실존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무능력한 관리들과 남성들을 은근히 비판함과 동시에 봉건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억눌린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보여 준다. 이와 함께 여성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고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진다.


2. 실존 인물 등장의 효과  

  이 소설에는 ‘이시백’,‘ 임경업’, ‘용골대’ 등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와 같은 실존 인물들의 등장은 작품의 사실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 패배의 굴욕감 극복과 민족적 자존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3. 변신 모티브

  설화나 소설에서 변신 모티브의 설정은 사건 전개의 전환점이 된다. 특히, 이 소설에서 박씨 부인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악한 외모로 인해 시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지낸다. 이런 박씨 부인의 변신은 박씨 부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전환점이 된다. 한편 변신의 과정은 통과 의례의 절차로 여겨지기도 한다. 박씨 부인은 이 절차를 통과함으로써 아내와 며느리로 인정받게 된다.


4. 병자호란(丙子胡亂)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국호를 청(淸)이라 고친 후금의 청 태종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한 사건이다. 이들에게 쫓겨 남한산성으로 옮긴 인조는 끝까지 대항했으나, 식량 부족과 추위로 인해 패배하고 만다. 1637년 음력 1월 30일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소현 세자 부부와 봉림대군도 청나라에 끌려갔는데, 이 사건을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한다.


5. ‘박씨전’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 이시백: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인조, 효종에 걸쳐 벼슬을 하면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나라의 위기마다 공을 세웠다.

• 임경업: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친명배청파(親明排淸派) 무장이다. 이괄의 난 때에는 반란군을 토벌하였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웠다.

• 김자점: 병자호란 때 도원수를 지냈으며, 효종 때 김익의 역모 행위에 연관되어 사형당하였다.

• 용골대: 청나라 장수로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선에 군신의 의를 요구했다 거절당하였다. 이후 3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6. 군담 소설(軍談小說)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발생하여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소설의 한 유형이다. 한글 소설로써 군담 즉, 전쟁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가 되는 소설 유형을 말한다. ‘박씨전’과 같이 허구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창작 군담 소설이 있고, ‘임경업전’과 같이 역사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 군담 소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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