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풍운전 -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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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앞부분의 줄거리] 천자의 아우인 명현왕이 장풍운에게 자신의 딸과의 혼인을 청하지만, 장풍운은 이 부인과 이미 결혼하였기에 이를 거절한다. 천자의 권유로 마지못해 명현왕의 딸 유씨와 혼인한 장풍운은 토번이 침략하자 출정을 위해 경성을 떠난다.


 유씨가 좌승상 장풍운이 대원수가 되어 출정한 틈을 타 이부인을 모해하려 하여 한 계교를 생각해 내고 시비 난향을 불러 조용히 물었다.

“너는 나의 수족과 같으니, 나의 계교를 맡아서 해내려느냐?”

“소비가 어찌 부인의 명을 불속인들 피하리까?”

 유씨가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바깥문 출입 단속을 누가 책임지고 맡아 하느냐?”

“수문장은 강공철인데, 운향의 지아비이나이다.”

 유씨가 계교를 이르고 당부했다.

“이리이리하되 삼가 누설치 말라!”

 난향이 웃고 이날부터 금은을 나누어 주며 운향과 더불어 사귐이 심히 은근하니, 오래지 아니하여 두 사람의 정이 동기 간 같았고, 행동거지와 목소리까지 서로 방불하여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유씨가 기뻐하여 계교 행하기를 재촉하니, 난향이 응낙하고 운향의 침소에 가서 담소하다가 물었다.

“요사이 강 무사는 어디 갔는가?”

“응당 해야 할 일이 많기로 오지 못하더니, 오늘은 마침 틈을 내어 올 것이네.”

 난향이 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만 하다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유씨에게 알렸다. 유씨가 난향에게 다시금 당부하여 ‘이리이리하라’하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이 부인께 전갈했다.

“승상이 출정하신 후 궁중이 쓸쓸하고 고요하니, 시비 운향을 보내 주시면 아름다운 말씀도 듣고 노닐며 경치를 구경하고자 하나이다.”

 이 부인은 정숙하고 기품 있는 여자인지라 유씨의 간계를 모르고 즉시 운향을 보내 주었다. 유씨는 흔쾌히 정성껏 운향을 대접하고 머무르게 하고는 돌려보내지 아니하니, 운향은 공철이 온다고 했으므로 민망했다. 유씨는 짐짓 운향을 아니 보내고 난향에게 눈짓을 하니, 난향이 즉시 운향 침소에 가서 살림 도구 및 이부자리와 베개 등을 다 옮기고 불을 끄고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공철이 오는데, 난향이 운향인 체하고 더디 옴을 원망하며 물었다.

“위왕 어르신께서 몸이 불편하시므로 부인과 두 낭자가 다 내당에 머무시나이다. 그래서 정당이 비었는지라 나는 정당에 거처하겠으니, 당신도 나를 따라 정당에 가서 머묾이 어떠하겠소?”

 공철이 응낙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

“비록 그러하나, 어찌 내당에 들어간단 말이오?”

“밤이 깊고 사람이 없으니 의심 마소서.”

 공철의 소매를 이끌어 바로 이 부인 침소에 들어갔다. 이때 밤이 깊었으니, 시비가 다 자고 정당이 고요했다. 공철이 의심하지 않고 난향의 음성이 운향과 서로 비슷하므로 속은 바가 되어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하니, 어찌 비참하고 끔찍하지 아니하랴.

 난향이 공철을 인도하여 안방에 딸린 작은 방에 앉히고 말했다.

“여기 누워 있으면 내 불을 켜오리다.”

 난향이 이러하고는 곧장 유씨 부인 침소로 돌아와 운향을 위로하며 말했다.

“부인을 모시고 평안히 지냈는가?”

 유씨가 이어서 말했다.

“밤이 깊고 이 부인께서 외로이 계시니, 내 몸소 가서 위로하리라.”

 그러고는 등촉을 밝히고 정당에 이르렀다. 공철이 불빛을 보고 놀라 몸을 피하여 따로 곁붙은 방에 숨었다. 유씨가 방문을 열고 침실에 두른 휘장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부인은 잠을 들어 계시나이까?”

 그리하며 유씨가 협방 문을 밀치니, 공철이 놀라 내닫다가 유씨와 마주쳤으나 밀치고 달아났다. 이에 유씨가 거짓으로 얼굴빛을 달리하며 물러섰다. 이 부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결에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찌 이리 떠들썩한가?”

 유씨가 버럭 성을 내며 꾸짖었다.

“이 음탕하고 방탕한 계집아! 너는 좌승상의 정실부인이요, 직첩이 정렬에 있거늘, 어찌 이런 음란한 짓을 한단 말이냐?” / 시비를 시켜 서둘러 이 부인을 결박 짓게 했다.

 이 부인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이 지경에 처하니 놀랍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나, 일이 되어 가는 형세가 어찌 된것인지 알지 못하여 심신을 가다듬지 못했다.

 이즈음에 공철이 도망하여 중문으로 나왔다. 그러나 문을 지키는 군사가 이왕 난향과 약속이 있었는지라 칼을 들어서 공철을 베니, 어찌 가련치 아니하랴.


[중략 부분의 줄거리] 천자의 명령으로 이 부인은 감옥에 갇히고 장풍운은 금산사 부처의 계시에 이어 그간의 사정을 알리는 왕부인의 편지를 본다. 이 부인이 처형당하는 날, 장풍운이 경성으로 돌아온다.


 좌승상이 말을 달려 수많은 사람의 무리를 헤치고 형을 집행하는 감형관에게 가서 전후사연을 이르며 “참하는 시각을 늦추라.” 하고는, 바로 입궐하여 벌줄 것을 청했다. 천자가 크게 놀라셨지만 먼저 먼 길 갔다 온 것을 위로하시고, 다음으로 옥사를 말씀하셨다. 좌승상이 싸움에 나가 이겨 공을 세운 경위를 아뢰고는, 옥사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금일 옥사는 저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오니 스스로 맡아서 처리하게 해 주소서.”

 천자가 이를 윤허하셨다. 좌승상이 본가로 돌아와 양 부인을 뵌 후, 형구를 차려 놓고 모든 시비를 죄주려 하니, 엄한 형벌 아래서 쥐 같은 무리들이 어찌 죄를 감출 수가 있으랴. 불하일장, 곧 한 대도 때리기 전에 이미 난향 등이 잘못을 낱낱이 순순히 자백했다. 좌승상이 표를 올려 옥사를 뒤집고, 유씨를 그 수레에서 사형에 처하고, 난향 등을 능지처참한 후, 이씨를 구호했다. 천자가 몹시 노하여 명현왕의 녹봉을 거두셨다.


■ 핵심 정리

․ 갈래 : 영웅소설, 가정소설

․ 배경 : 중국 송나라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장풍운의 일생과 고난 극복, 권선징악

․ 특징 :

 ① 전반적으로 장풍운이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적 일대기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후반부는 가정 소설의 면모를 보임

 ② 당시 신분제 사회의 변모를 엿볼 수 있음


■ 전체 줄거리

 ① 중국 송나라 때, 장풍운은 금릉 땅 전 이부시랑 장희와 부인 양씨의 만득자(晩得子)로 옥제(玉帝)가 점지한 후 태어난 아들이다. 풍운이 점점 자라서 7세에 이르러 벌써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다. 이를 염려한 장희가 절강의 장 진인을 찾아갔다가 풍운의 앞날을 알고 생일을 기록해 풍운의 옷깃 속에 감추었다.

 ② 풍운이 어렸을 때 변방에 가달이 침략해 오자, 이를 진무(鎭撫)하기 위해 장 시랑은 황명(皇命)을 받들어 출전한다. 때마침 일어난 도적을 피하려고 금계산에 이르렀지만, 양 부인은 아들 풍운을 도적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에 양 부인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도적에 의해 집이 이미 불타 버렸는지라, 하는 수 없이 여남의 표질을 찾아갔지만 몇 년 전에 이미 호남태수로 부임한 뒤였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단원사에 들어가 여승이 된다. 장 시랑은 승전하고 돌아와 부남태수에 임명되었다. 곧바로 부임하는 길에 집에 가지만 집은 불타 터만 남고 가족을 만날 수 없어 슬퍼한다.

 ③ 한편 풍운은 도적들이 패하여 도망갈 때 버리고 가지만, 모친이 간 바를 알지 못해 길가에서 울다가 전 통판 이운경에게 발견된다. 이운경은 지감(知鑑)으로 풍운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자기 집에 데려가서 양육한다. 이운경에게는 전처 최씨 소생인 경패, 경운 남매와 후처 호씨의 자식들이 있었다. 이운경은 호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풍운과 경패를 혼인시킨다.

 ④ 이운경은 장풍운과 이경패를 혼인시킨 뒤 득병하여 홀연 죽는다. 그러자 호씨의 전처 자식들에 대한 학대가 더욱 심해진다. 호씨의 박대에 풍운은 장인의 유서에 따라 처남 경운만을 데리고 가출함으로써 경패와 이별하게 된다. 곧이어 경패도 호씨의 개가 권유에 남복(男服)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와 떠돌다가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지시한 대로 단원사에 들어간다. 여기서 경패는 풍운의 모친 양씨와 만난다.

 ⑤ 풍운은 경운을 연경사에 맡겨두고 광대 무리를 따라 떠돌다가 전 이부상서 왕공렬을 만난다. 왕 상서는 풍운을 사환으로 삼는다. 왕 상서의 딸 부용이 몽사(夢事)를 얻은 뒤 후원으로 가 그곳에서 잠자던 풍운을 보고 자신의 송금단 저고리를 벗어 덮어준다. 풍운은 왕 상서의 심부름으로 경성에 가서 원철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곳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원철의 딸 황해와 혼인하며, 이어 왕 상서의 딸 부용과도 혼인한다.

 ⑥ 이때 서번과 서달이 침략해 오자, 풍운은 대원수로 출전해 계교로 적을 물리친다. 회군하는 도중 꿈에 나타난 노승의 계시로 여남 단원사에서 모친과 경패를 상봉한다. 연경사에 있던 경운을 데리고 이 통판 분묘에 제사한 후, 호씨를 찾아가 용서한다. 또한 수령 잔치 때 부남태수인 부친과 신표를 확인하고 상봉한다. 이렇게 하여 헤어졌던 가족이 상봉하게 되었고, 원수는 좌승상에, 부친은 위왕에 봉해졌다. 아울러 천자가 역도(逆徒) 장한성의 딸 윤옥까지 사송(賜送)했다.

 ⑦ 황제의 주선으로 명현왕의 딸 경화(유씨)와 혼인한다. 이때 다시 토번의 침입으로 풍운이 출전하게 된다. 그러자 질투가 심한 유씨가 계교로 이 부인(경패)을 음해하여 죽을 위험에 빠뜨린다. 토번을 물리치고 황성으로 돌아오는 중에 금산사 부처의 계시가 있었던데다 왕 부인(부용)이 경운을 시켜 보낸 편지를 본 풍운이 급히 돌아와 모든 진상을 밝힌다. 유씨는 벌을 받아 죽는다.

 ⑧ 풍운은 그 뒤 서량왕이 되고 부인들과 자식들 모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결구(結構)되어 있다.


■ 작품 해설

 장풍운전은 작가와 창작 연대가 확실하지 않은 조선 후기 영웅 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과 관련한 기록이 1794년에 대마도 역관에 의해 기록되는데, 이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부터 작품이 향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1811년에 간행된 한문 단편기록에도 장풍운이 거론되며, 방각본으로도 출판된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이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장풍운전은 영웅소설이지만, 다른 영웅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담이 적은 반면 가정 내의 갈등이 부각된 작품이다. 그러나 장풍운전은 영웅의 일생 구조와 더불어 가족 관계에서 부부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진 작품이라 하겠다.

- 2016년 EBS 수능특강 해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신표(信標)와 매개물(媒介物)

 소설 장치에서 신표와 매개물은 인물과 인물이 만날 것임을 예고해 주는 기능을 한다. 신표는 말 그대로 믿음의 표시로 헤어질 때 주는 사물(거울, 칼 등)이나, 나중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거물로 사용되는 사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설씨녀 이야기>에서 군대에 가는 가실과 남아 있는 설씨가 주고 받은 거울은 신표의 역할을 한다. 한편, 매개물은 무엇을 사이로 하여 상호 만남을 이루게 하는 사물을 가리키는데, <장풍운전>에서 풍운의 어머니가 경패와 만나도록 하는 역할을 한 풍운의 헌 옷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신표와 매개물은 서사 전개 과정에서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남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2. 영웅 소설과 가정 소설적 성격

 - 전반부 : ‘기아 – 구출 및 양육 – 위기 – 극복 및 영웅적 활약’의 구조로 사건이 전개됨 → 영웅소설적 성격

 - 후반부 : 천자의 권유로 마지못해 유씨를 제2부인을 맞이하지만 유씨가 정실인 이 부인을 시기하여 모함함. 이에 장풍운이 스스로 해결할 것을 천자에게 요청하고, 직접 심문하여 이 부인의 결백을 밝혀냄 → 가정소설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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