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주요 부분
“고 서방, 당신은 또 뭘 하러 왔소? 작년 것도 못 다 내고서 또 무슨 낯으로 여기 오우?”
매섭게 꼬집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장부를 뒤적거리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일행은 허탕을 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저수지 밑 고 서방의 논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그예 입도 차압(立稻差押)의 팻말이 붙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그 차압 팻말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 피땀을 흘려 가면서 지은 곡식에 손도 못 대다니? 그들은 억울하고 분하기보다, 꼼짝없이 이젠 목숨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앞섰다.
고 서방은 드디어 야간 도주를 하고 말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그 어린것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이튿날 아침, 동네 사람들은 애 터지는 말로써 그들의 뒤를 염려했다. 무심한 가을비는 진종일 고 서방이 지어 두고 간 벼 이삭과 차압 팻말을 휘두들겼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지 새벽마다 당산등에서 여우가 울어 대고 외상술도 먹을 곳이 없어진 농민들은 저녁마다 야학당이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하루아침, 깨어진 종소리와 함께 성동리 농민들은 일제히 야학당 뜰로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열음 못한 빈 짚단이며 콩대, 메밀대가 잡혀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긴 줄을 지어 가지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났다.
아낙네들은 전장에나 보내는 듯이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 가지고 남정들을 보냈다. 만약 보광사에서 들어주지 않는다면…… 하고 뒷일을 염려했다.
그러나 또쭐이, 들깨, 철한이, 봉구 — 이들 장정을 선두로 빈 짚단을 든 무리들은 어느새 벌써 동네 뒤 산길을 더위잡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 댔다.
■ 전체 줄거리
극심한 가뭄이다. 들깨는 논에 물을 대려고 나갔다가 허탕만 친다. 봇물까지도 보광사 중들이 모두 그들 논으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성동리 농민들 대부분이 보광사의 땅을 부치고 사는 소작농이다. 치삼 노인은 중의 꾐에 빠져 보광사에 논을 기부하고는 이제 그 논을 소작하는 신세다. 절은 불공을 드린다고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고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는 횡포를 부린다. 수도 출장소에서는 농민 폭동이 염려되어 잠깐 물길을 튼다. 그러나 생색만 낸 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 물싸움이 벌어지고 인심만 흉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들깨는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는데, 고 서방이 물꼬를 터놓았기 때문이었다. 고 서방은 연행된다. 성동리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보광사 역시 기우 불공을 드리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가을이 되었으나 추수할 것이 없을 정도의 흉작이었다. 다행한 것은 고 서방의 석방뿐이었다. 어느 날 상한이와 차돌이는 알밤을 줍다가 산지기에게 들킨다. 도망을 치다 차돌이는 굴러 떨어져 죽고, 그의 할머니는 미치고 만다. 보광사에서는 흉작임에도 예전과 똑같이 소작료를 요구하고, 성동리 농민들을 대표한 고 서방, 들깨, 또쭐이 등이 선처를 호소하나 거절당한다. 논에는 ‘입도 차압’이라는 팻말이 붙고 고 서방은 야반도주하고 만다.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자 성동리 농민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하기 위해서 볏짚단을 들고 보광사로 향한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든다.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 성격 : 사실적, 현실 참여적, 저항적
• 배경
① 시간 - 1930년대 어느 여름
② 공간 - 사하촌인 성동리와 보광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부조리한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저항
• 특징
① 일반적인 농촌 계몽 소설과 달리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깨닫는 데 의의가 있음.
② 특별한 주인공 없이 보광리와 성동리 사람들 전체의 모습을 보여 줌.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사찰(보광사) 소유의 전답을 빌려 살아가는 사하촌 소작 농민들의 빈궁과 삶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하촌의 농민들은 절대적인 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사찰의 횡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곧 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것은 동족의 입장이면서도 일제의 권력에 빌붙어 농민을 착취하는 사찰의 폭거인 것이다. 이 소설의 공간 구조는 사찰과 사찰 아래의 마을로 이원화되어 있다. 사찰은 가난한 농민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정토가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타락한 폭력 집단의 처소이다.
이 사찰의 아래 마을에 가난한 농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사찰의 전답을 붙여 먹고 살기 때문에, 사찰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이 공간적 상하 대립 구조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삶의 대립적 구조의 근거를 이룬다. 경제적인 불평등 구조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세력 집단으로 전락한 사찰의 종교적인 횡포까지 겹침으로써, 갈등이 더욱 고조된다. 이 소설의 결말은 입도 차압의 횡포를 부리는 사찰에 대응하여 농민들이 집단적인 항거를 일으키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계급적 투쟁보다는 오히려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저항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보광사라는 절의 논을 소작하며 살아가는 성동리 마을 농민들의 문제를 그린 단편 소설로, 일제 강점기의 모순된 농촌 현실 속에서 지주의 무자비한 횡포와 가뭄이라는 자연 재해로 고통을 겪으면서 농민 스스로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특별히 보여주고자 한 것은 현실의 모순, 특히 소작 제도의 모순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농민의 응집된 힘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특별한 주인공의 삶보다는 성동리 사람들 전체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치중하고 있다. 이는 농촌 현실의 모순이 몇몇 영웅적 인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는 농민 전체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작자 의식 때문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지주 계급의 부당한 횡포에 대항하여 소작인들이 집단적으로 쟁의에 나서는 장면은 그러한 작가 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소설 ‘사하촌’은 지나친 관념성, 목적성을 동시에 벗어난 뛰어난 농민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 윤희재, 전공국어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이 작품의 처음에 등장하는 ‘개미 떼’와 ‘지렁이’의 상징성
다음은 이 작품의 처음 부분이다.
타작 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 가지고 바동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 떼가 물어 뗄 때마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여기에서 ‘지렁이’는 극심한 가뭄과 승려들의 착취에 고통받는 성동리 농민을, ‘개미 떼’는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보광사 승려를 상징한다.
2. ‘사하촌’의 갈등의 원인과 양상
이 작품의 갈등의 원인은 가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뭄이 극심하더라도 불평등 문제만 없으면 임시적으로 저수지라는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에서 저수지의 물길을 막아 버림으로써 농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버림으로써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저수지 물이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민과 보광사 절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 작품의 갈등이 사회 구조의 불평등 문제임이 드러난다. 즉 이 작품은 가뭄이라는 자연 재해에 의해 고난의 삶을 사는 농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뭄에 의해 부각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3. 결말에 담긴 의미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은 농민들이 볏짚단 들고 보광사로 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농민들의 소작 쟁의 행렬이다. 이들이 볏짚단 들고 가는 모습은 우선 알곡이 열리지 않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소작료를 내느냐는 뜻을 표하려는 것이며,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불쏘시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의치 않으면 불을 지를 수도 있다는 위협의 의미도 담고 있다.
4. 능동적 주체로서의 농민
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는 농촌 문제 해결의 중심에 농민을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보광리 지주의 핍박이 심해지면서 그 억압에 대한 분노가 감정적으로 표출되기보다는 오히려 성동리 마을 주민 전체에 어떤 이성적 공간을 통한 연대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소작쟁의를 통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그간 수동적이고 무지한 존재로서 인식되어 온 농민의 위상을, 외부의 어떠한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존재로 격상시켰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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