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탄 - 박인로



■ 본문

미천하고 노쇠한 몸을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을사년 여름에 진동영(부산진)을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 있겠는가?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서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르는 노란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일세.


배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옛날과 지금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든 헌원씨를 원망스럽게 여기노라. 

바다가 아득히 넓게 천지에 둘려 있으니, 

참으로 배가 아니면 풍파가 심한 만 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왜적)가 엿볼 것인가?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했는고? 

(그것이) 오랜 세월에 끝없는 큰 폐단이 되어 

온 천하에 만백성의 원한을 기르고 있도다.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왜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의 말을 곧이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데려다가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다 미치게 하였는가? 

장생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년을 살았던가? 

남처럼 죽어 갔으니 유익한 줄 모르겠도다. 

아!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가 너무 심하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쉽게나 돌아왔으면 

통주사(자신)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비를 팽개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도다.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편주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닥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활을 

자그마한 배가 아니면 어디에 부쳐 다니겠는가?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날 듯이 빠른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의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더니 

오늘날의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똑같은 배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의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었다 한들, 

나라를 걱정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었을 것인가?


강개를 못 이기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멀리 쫓았고, 

발이 없는 손빈이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온전하고 목숨이 살아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 들어 선봉을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왜적을)헤치리라. 

칠종 칠금을 우리라고 못할 것인가?


꾸물거리는 저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니, 너희들을 구태여 모두 죽이겠느냐? 

우리 임금님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시느니라. 

태평스러운 천하에 요순 시대와 같은 화평한 백성이 되어 

해와 달 같은 임금님의 성덕이 매일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들도 고기잡이 배에서 저녁 무렵을 노래하고(늦도록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 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 핵심 정리

․ 갈래 : 전쟁가사

․ 율격 : 3.4조, 4.4조의 4음보 율격체

․ 표현 : 인용법, 대구법, 은유법, 설의법 등

․ 성격 : 우국적, 비판적, 기원적

․ 구성 :

  서사 : 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옴

  본사1 : 헌원씨를 원망함

  본사2 : 왜적이 생긴 것을 개탄함

  본사3 : 배로 누릴 수 있는 풍류와 흥취

  본사4 : 옛날과 배는 같지만 풍류가 다름

  본사5 : 수치심과 작자의 우국지심

  본사6 : 설분신원(雪憤伸冤)을 다짐

  결사 : 태평성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함

․ 제재 : 임진왜란의 체험

․ 주제 : 전쟁의 비애를 딛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싶은 마음. 우국단심(憂國丹心)

․ 특징 :

  ①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② 현장성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음.

  ③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이 나타남.

  ④ 한문투의 수식이 많고 직서적 표현이 많이 나타남.


■ 작품 해설 1

  작가가 통주사(統舟師)로 부산에 부임하여, 전선(戰船)에서 전쟁의 비애와 평화를 추구하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창작된 1605년은 우리 민족 전체가 참혹한 피해를 입은 전란인 임진왜란이 끝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로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의 마음이 여전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승계하여 화친을 맺고자 여러 차례 교섭을 하고 있었지만, 반일과 극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일반적 정서였으며,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의 경계심 역시 이보다 덜할 리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에 나타난 반일 및 극일(克日) 정서,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감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태평성대를 다시 맞아 고기잡이배에서 늦도록 풍류를 즐기고 싶다는 소망을 십분 공감할 수 있다. 한문체의 수식이 많고 직서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결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전쟁 문학이 일반적으로 범하기 쉬운 속된 감정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 무사의 투지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작가가 타고 있는 배를 중심 소재로 내세워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 창작의 배경

 이 작품은 ‘태평사’와 함께 몇 안 되는 전쟁 가사 중의 하나로 전쟁의 아픔과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구체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왜란이 평정된 지 7년이 지난 선조 38년(1605년)에 지어진 작품에도 불구하고,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전쟁의 고통이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어, 왜란으로 인한 민족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민족의 자존의식(왜구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선상탄’은 민족의 자존심을 배경으로 하루 빨리 왜적에 대한 근심을 덜고, 싸움배가 아닌 놀이배로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소망이 우국 충정과 함께 표현된 작품이다.


 - 소재와 시상(詩想)의 성격

 이 가사는 배를 중심 축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배가 있기 때문에 왜적이 생겨났으며, 배가 없었다면 왜적과의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화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살기와 긴장감이 감도는 싸움배가 평화와 태평성대를 즐기는 놀이배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시상이 종결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태평사’와 같이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시련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관념적 풍월을 읊는데 치중했던 전대(前代) 가사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태평사’에서 볼 수 있었던 무인(武人)으로서의 기개가 이 작품에서는 많이 퇴색되어, 작가적 성향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왜구의 침략에 대하여 배를 만든 헌원씨를 원망하는가 하면, 배를 이용한 풍류 생활을 꿈꾼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기상은 줄어들고 태평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노닐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 표현면에서의 성격

 이 작품은 전쟁 문학이 일반적으로 범하기 쉬운 속된 감정에 흐르지 않고, 적을 압도할 만한 호쾌한 투지와 평화를 희구하는 목소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언어 선택에 있어 중국 고사를 많이 인용하고 한문투의 수식을 많이 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헌원씨나 진시황과 서불, 장한 등의 고사를 원용하는 방식은 노계가 즐겨 쓴 방식의 대표적 예들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대구, 대조의 수법이 많이 쓰였다. 이는 배의 문제점과 유용성 대비, 또는 손빈․제갈량의 고사와 노계 자신의 상황 비교․대조 등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운율면에서는 ‘동남동녀를 그대도록 드려다가’, ‘오왕성덕이 욕병생하시니라’ 등과 같이 상당수 음보가 2음절로 되어 있고, 6음보나 3음보로 된 구절도 ‘태평사’에서보다 더 많이져 운율적 자유가 확대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 심화 내용

 1. ‘선상탄’에 등장하는 고사

 헌원씨 : 중국의 전설상의 황제로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들어 교통을 편리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선상탄에서 화자는 배를 타고 왜적이 침입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진시황 :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로 영생을 원하여 신하 서불에게 동남동녀 각 천명과 함께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선상탄에서 화자는 왜에 동남동녀를 보냄으로써 왜적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서불 :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 진시황의 신하로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어느 섬에 정착하여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상탄에서 화자는 군신의 의리를 저버리고 일본에 머물러 왜적이 생겨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 작가 소개

 박인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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