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 - 김동리


■ 본문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오니까, 체 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 옷 — 새 옷이래야 전날의 그 항라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 — 을 갈아입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곁에 두고, 슬픔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띠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가 시방 떠난단다.”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날, 저녁때에 돌아왔었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저께, 영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 가라고 만류를 해서, 그래 오늘 아침엔 일찍이 떠난다고 이렇게 막 행장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모두 나중 다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처음은 그는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느 한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쭝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말려들어 가는 듯한, 눈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는 듯한,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그의 전신을 어디로 휩쓸어 가는 듯만 하였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를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과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 버렸다.

        ▶계연과의 이별로 심리적 충격을 받은 성기

  “아들이 참 잘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도 돌려 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 / 옥화는 그동안 또 성기에게 역시 그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젊은이 하나를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한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 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펴일 것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고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 그에게는 다만 벌 떼처럼 무엇이 왕왕거릴 뿐, 아무것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중략>

  “나도 처음부터 영감이 ‘서른여섯 해 전’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섬찟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까지 불러 봤더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이 재줄대는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 듯한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는디 어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한 형형한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중략>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운명에 순응하기로 한 성기

  그러고 나서 한 달포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켜고 난 성기는 옥화에게, /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 하였다. /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 성기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갠 ‘화개 장터’ 삼거리 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맞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질빵 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어머니와 하직하고 길을 떠나려고 하는 성기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 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롱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⑤[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길을 떠나는 성기


■ 핵심 정리

• 배경 : 시간적 - 구체적인 시간이 제시되어 있지 않음, 공간적 -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지역인 화개 장터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역마살이 낀 인간의 운명과 근친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주제 : ① 한국적 운명관의 순응과 그에 따른 인간성 구현

   ② 역마살이 낀 떠돌이 인간들의 삶

• 특징 : 

 ① 공간적 배경을 통해 향토성을 부여함.

 ② 민속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표현함.

 ③ 대화 이외의 서술은 만연체 문장을 사용함.

 ④ 인물의 심리를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외양과 행동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많음.

• 인물 : 

 성기 - 역마살을 타고난 인물. 계연과의 사랑의 좌절로 방랑의 운명에 순응하여 고향을 떠남. 

 옥화 - 성기의 모친. 체 장수의 딸.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고, 아들의 역마살 제거에 실패하고 운명에 순응하게 됨. 

 체 장수 - 옥화의 부친. 36년 전 떠돌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옥화를 낳았음. 

 계연 - 체 장수의 딸. 옥화의 이복 자매 

• 구성 : 

 발단 - 옥화는 아들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려 노력하고, 체 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옥화에게 맡기고 장사를 떠남. 

       전개 - 성기와 계연은 서로 사랑하게 됨. 

 위기 -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의 사마귀를 발견하고 동생이 아닐까 하는 예감을 가지게 됨. 

 절정 -계연이 성기의 이복 이모임이 밝혀지고, 둘의 사랑이 운명적으로 좌절됨. 

 결말 -성기는 중병을 앓게 되고 병이 낫자 운명에 순응, 길을 떠남.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역마살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전통적 운명관을 형상화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화개 장터는 역마살이 낀 인물들의 집결지로, 하룻밤 놀다 간 남사당과의 인연으로 옥화를 낳은 성기의 할머니, 떠돌이 중으로부터 성기를 낳게 된 옥화, 운명적으로 역마살을 갖고 태어난 성기 등은 모두 역마살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역마살’은 단순히 성기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대물림된 것으로, 소설의 주된 갈등은 운명과 맞서 싸우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마살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좌절되고, 성기는 자신의 역마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게 된다. 성기가 길을 떠나면서 육자배기 가락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부분에서 성기의 내면적 고뇌가 해소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정신적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한국인의 전통적 운명관이 드러난 것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백민(白民)>(1948)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역마살 또는 당사주(唐四柱)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운명관을 그린 작품이다. 운명에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작가의 문학관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소설의 테마는 역마살(驛馬煞)로 대변되는 운명론이다. 남사당과의 하룻밤 인연의 소산인 옥화는 다시 떠돌이 중(僧)과의 인연으로 성기를 낳는다. 성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역마살을 운명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그 역마살을 풀어 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소설은 종결된다. 

 사실성을 요구하는 소설의 관습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우연으로 점철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루 저녁 놀다 간 남사당(현재의 채 장수)에게서 옥화를 낳은 할머니, 떠돌이 중(僧)으로부터 성기를 낳게 된 옥화, 마침내 엿목판을 메고 유랑의 길에 오르는 성기 등 삼대(三代)에 걸친 역마살의 내력이나, 옥화와 계연의 만남, 옥화가 계연이 자기의 이복 동생임을 알아차리는 계기 등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한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우연들은 김동리의 소설 속에서는 단순한 우연에 그치지 않고 운명의 지위로 올라선다. 이 소설에서 등장 인물들의 삶은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이미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단단한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다.

 민속적인 소재를 통하여 토속적인 삶과 그 운명이 시적(詩的)으로 승화된 이 작품은『무녀도(巫女圖)』,『황토기(黃土記)』,『바위』등의 작품과 함께 김동리의 운명론적 문학관을 나타내 주는 초기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 작품 해설 3

 이 작품은 민속적인 소재를 통하여 토속적인 삶과 그 운명이 시적으로 승화된 김동리의 대표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동양적 운명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가는 바탕이 되는 것은 성기의 역마살이다. 즉 인간은 사주가 가리키는 운명의 힘에 순응함으로써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전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겉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운명에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어두운 측면(비극적인 운명의 사슬)과 전통이 하나의 질서관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 말미에서 성기는 자신의 역마살을 비관하기는커녕 그것에 순응해서 살아가고자 한다. 이렇게 운명에 순응하는 인물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다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에 김동리 문학의 특징과 새로움이 있다.

 - 타임기획, 소설119플러스 2권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화개 장터’의 상징적 의미

  ‘장터’는 떠돌이 인생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 : 모였다가 흩어짐)하는 공간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이 교차되는 곳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므로, ‘장터’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남녀가 인연을 맺고 헤어지며 그 헤어짐의 아픈 한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화개 장터’에서도 이 ‘장터’를 중심으로 역마살이 낀 인물들의 불안정한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2. ‘역마’에 나타난 운명론

  이 작품은 역마살(驛馬煞)이라는 한국적 운명관을 그린 소설이다. 역마살을 타고난 성기는 사랑하는 계연과 결혼하여 정착을 이루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죽음과 유랑의 길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한다. 여기에서 성기가 유랑을 택한 것은 겉으로는 운명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 운명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운명과의 화해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제목 ‘역마’의 의미

 ‘역마’란, 운명적인 떠돌이의 삶을 살게 되어 있는 ‘역마살’을 의미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역마살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잡한 가족 관계나 가계 구성상의 특징은 모두 역마살의 운명과 연관된다. 결국 제목 ‘역마’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주어진 운명을 수용함으로써 구원의 길에 이른다는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4. ‘계연’과 ‘성기’의 사랑이 좌절되는 이유

 성기는 운명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났다. 그가 계연과 결혼하여 정상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운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운명에 대한 갈등과 좌절을 심화시키기 위해 계연을 등장시키고 그녀가 옥화의 이복동생임을 밝혀, 천륜을 거역하지 못하여 사랑이 좌절되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계연과 옥화가 이복 자매간임을 암시하는 장치로 귓바퀴 위의 사마귀를 제시한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나, 성기의 사랑이 좌절되는 이유로는 설득력을 지닌다.


5. ‘역마살’과 ‘세 갈래 길’의 의미

 ‘역마’란 말이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던 시절에 역참(驛站)에 대기시켜 두고 관용(官用)으로 쓰던 말을 의미하며, ‘살’은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 곧 악귀의 짓을 의미한다. 즉 ‘역마살’이란 역마의 귀신이 독기를 품어 사람에게 씌어지는 것이므로 역마살을 타고 난 사람은 결국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길 위를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 부분의 ‘세 갈래 길’은 주인공 성기의 역마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 갈래 길 중 화갯골로 난 길은 지금까지 성기가 살았던 곳을 의미하며 성기에게는 과거의 삶을 의미하는 길이다. 또한 구례로 난 길은 계연이 떠나간 길로 성기가 구례 방향의 길을 택한다면 결국 운명을 거부하고 계연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운명을 거역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기는 결국 화갯골에서 나와 하동을 향하게 되는데 이 때 하동 쪽으로 난 길은 운명에 순응하는 삶, 역마살을 받아들이는 삶을 의미한다.


6. ‘화개장터’와 운명의 순환성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화개장터’는 3대에 이르는 가계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삶에서 상징적 공간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개 장터는 성기의 외할머니가 하룻밤 놀다간 젊은 남사당패와 정을 통하고 옥화를 갖게 된 장소이며, 옥화마저 떠돌이 승려와 인연을 맺어 성기를 잉태한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성기마저도 어머니의 이복 여동생인 계연과 부부의 연까지 맺을 뻔한 장소이다. 즉 이 가족들이 비슷한 사건들을 생산해 내는 장소인 것이다.

 이처럼 화개장터가 갖는 가장 흥미로운 성질은 대를 잇는 운명의 순환성에 있다. 일회적인 만남에서 정을 통하게 되어 일생에 지우지 못할 추억과 연민을 갖게 하고 결국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작가 소개

 김동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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