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 - 김유정


■ 본문

 응칠이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어느덧 달이 넘었다. 인제는 물릴 때도 되었고, 좀 떠보고자 생각은 간절하나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망설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았다. 산으로 들로 해변으로 발부리 놓이는 곳이 즉 가는 곳이다.

     ▶응칠의 떠도는 생활

  그러나 저물면 그대로 쓰러진다. 남의 방앗간이고 헛간이고 혹은 강가, 시새장. 물론, 수가 좋으면 괴때기 위에서 밤을 편히 잘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강원도 어수룩한 산골로 이리 넘고 저리 넘고 못 간 데 별로 없이 유람 겸 편답하였다.

  그는 한구석에 머물러 있음은 가슴이 답답할 만치 되우 괴로웠다. 그렇다고 응칠이가 본시 역마직성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도 오 년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집도 있었고, 그때야 어디 하루라도 집을 떨어져 보았으랴. 밤마다 아내와 마주 앉으면 어찌하면 이 살림이 좀 늘어 볼까 불어 볼까, 애간장을 태우며 갖은 궁리를 되하고 되하였다마는,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농사는 열심으로 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남는 건 겨우 남의 빚뿐. 이러다가는 결말엔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루는 밤이 깊어서 코를 골며 자는 아내를 깨웠다. 밖에 나가 우리의 세간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라 하였다. 그리고 저는 벼루에 먹을 갈아 찍어 들었다. 벽에 바른 신문지는 누렇게 그을렸다. 그 위에다 아내가 불러 주는 물목대로 일일이 내려 적었다. 독이 세 개, 호미가 둘, 낫이 하나로부터 밥사발, 젓가락, 짚이 석 단까지 그 다음에는 제가 빚을 얻어 온 데, 그 사람들의 이름을 쪽 적어 놓았다. 금액은 제각기 그 아래다 달아 놓고, 그 옆으론 조금 사이를 떼어 역시 조선문으로 나의 소유는 이것 밖에 없노라. 나는 오십사 원을 갚을 길이 없으매 죄진 몸이라 도망하니 그대들은 아예 싸울 게 아니겠고 서로 의논하여 억울치 않도록 분배하여 가기 바라노라 하는 의미의 성명서를 벽에 남기자 안으로 문들을 걸어 닫고 울타리 밑구멍으로 세 식구가 빠져나왔다.      

▶응칠이 집을 버리고 야반도주하게 된 경위

  이것이 응칠이가 팔자를 고치던 첫날이었다.

  그들 부부는 돌아다니며 밥을 빌었다. 아내가 빌어다 남편에게, 남편이 빌어다 아내에게. 그러자 어느 날 밤 아내의 얼굴이 썩 슬픈 빛이었다. 눈보라는 살을 엔다. 다 쓰러져 가는 물방앗간 한구석에서 섬을 두르고 어린애에게 젖을 먹이며 떨고 있더니 여보게유 하고 고개를 돌린다. 왜 하니까 그 말이, 이러다간 우리도 고생일 뿐더러 첫째 어린애를 잡겠수, 그러니 서로 갈립시다, 하는 것이다. 하긴 그럴 법한 말이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붙어 다닌댔자 별수는 없다. 그보담은 서로 갈리어 제 맘대로 빌어먹는 것이 오히려 가뜬하리라. 그는 선뜻 응낙하였다. 아내의 말대로 개가를 해 가서 젖먹이나 잘 키우고 몸 성히 있으면 혹 연분이 닿아 다시 만날지도 모르니깐, 마지막으로 아내와 같이 땅바닥에서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새고 나서 날이 훤해지자 그는 툭툭 털고 일어섰다. <중략>

    ▶응칠이 아내와 헤어지게 된 경위

  그러나 이번 멀리 아우를 방문함은 생활이 궁하여 근대러 왔다거나 혹은 일을 해보러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혈족이라곤 단 하나의 동생이요, 또한 오래 못 본지라 때 없이 그리웠다. 그래 모처럼 찾아온 것이 뜻밖에 덜컥 일을 만났다.

  지금까지 논의 벼가 서 있다면 그것은 성한 사람의 짓이라 안 할 것이다.

  응오는 응고개 논의 벼를 여태 베지 않았다. 물론, 응오가 베어야 할 것이다. 누가 듣던지 그 형 응칠이를 먼저 의심하리라. 그럼 여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응칠이가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응칠이 동생을 방문했을 때 발생한 벼 도둑 사건

  응오는 진실한 농군이었다. 나이 서른하나로 무던히 철났다 하고 동리에서 쳐주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런데 벼를 베지 않는다. 남은 다들 거둬들였고 털기까지 하련만 그는 벨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지주든 혹은 그에게 장리를 놓은 김 참판이든 뻔질 찾아와 벼를 베라 독촉하였다.

  “얼른 털어서 낼 건 내야지.” / 하면 그 대답은,

  “계집이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유. ─” / 하고 한결같이 내뱉는 소리뿐이었다.

  하기는 응오의 아내가 지금 기지사경이매 틈은 없었다 하더라도 돈이 놀아서 약을 못 쓰는 이 판이니 진시 벼라도 털어야 할 것이다.

▶아내의 병을 핑계로 벼를 베지 않는 응오

  그러면 왜 안 털었던가. 그것은 작년 응오와 같이 지주 문전에서 타작을 하던 친구라면 묻지는 않으리라.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홑자식 모양으로 알뜰히 가꾸던 그 벼를 거둬들임은 기쁨에 틀림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엣, 엣, 하며 괴로움을 모른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초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기보다 끝없이 부끄러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적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못해 응오는 눈에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작년에 벼를 털고 나서 남는 것이 없자 결국 눈물을 흘린 응오

  가뜩한데 엎치고 덮치더라고 올해는 고나마 흉작이었다. 샛바람과 비에 벼는 깨깨 비틀렸다. 이놈을 가을하다간 먹을 게 남지 않음은 물론이요 빚도 다 못 가릴 모양. 에라, 빌어먹을 거 너들끼리 캐다 먹든 말든 멋대로 하여라, 하고 내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벼를 거뒀다고 말만 나면 빚쟁이들은 우 ─ 몰려들 거니깐.     ▶응오가 벼를 베지 않는 진짜 이유

  응칠이의 죄목은 여기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국으로 가만만 있었더면 좋은 걸 이 사품에 뛰어들어 지주의 뺨을 제법 갈긴 것이 응칠이었다. 처음에야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곳 물을 마신 이만치 어지간히 속이 틘 건달이었다. 지주를 만나 까놓고 썩 좋은 소리로 의논하였다. 올 농사는 반실이니 도지도 좀 감해 주는 게 어떠냐고. 그러나 지주는 암말 없이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정 이러면 하여튼 일년 품은 빼야 할 테니 나는 그 논에다 불을 지르겠수, 하여도 잠자코 응치 않는다. 지주로 보면 자기로도 그 벼는 넉넉히 거둬들일 수는 있다마는, 한번 버릇을 잘못 해 놓으면 어느 작인까지 행실을 버릴까 염려하여 겉으로 독촉만 하고 있는 터이었다. 실상이야 고까짓 벼쯤 있어도 고만 없어도 고만, 그 심보를 눈치채고 응칠이는 화를 벌컥 낸 것만은 좋으나 저도 모르게 대뜸 주먹뺨이 들어갔던 것이다. <중략>    

▶지주와 의논하러 갔다가 지주의 뺨을 때린 응칠

 응칠이는 논께로 바특이 내려서서 소나무에 몸을 착 붙였다. 섣불리 서둘다간 낫의 횡액을 입을지도 모른다. 다 훔쳐 가지고 나올 때만 기다린다. 몸뚱이는 잔뜩 힘을 올린다. / 한 식경쯤 지났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논둑에 머리만 내놓고 사면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야 기어 나온다. 얼굴에는 눈만 내놓고 수건인지 뭔지 헝겊이 가리었다. 봇짐을 등에 짊어 메고는 허리를 구붓이 뺑손을 놓는다.

  그러자 응칠이가 날쌔게 달려들며, / “이 자식, 남의 벼를 훔쳐 가니!”

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으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게 놀란 모양이다. /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조겼다. 어이쿠쿠, 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서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한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더니, /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하고 데퉁스러이 내뱉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없어진다.

▶응칠이 잡은 벼 도둑의 정체

  형은 너무 꿈속 같아서 멍하니 섰을 뿐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서 한 손으로 그 봇짐을 들어 본다. 가뿐하니 끽 말가웃이나 될는지. 이까짓 걸 요렇게까지 해 가려는 그 심정은 실로 알 수 없다. 벼를 논에다 도로 털어 버렸다. 그리고 아내의 치마이겠지, 검은 보자기를 척척 개서 들었다. 내 걸 내가 먹는다……. 그야 이를 말이랴. 하나 내 걸 내가 훔쳐야 할 그 운명도 얄궂거니와 형을 배반하고 이 짓을 벌인 아우도 아우렷다. 에—이 고얀 놈, 할 제 볼을 적시는 것은 눈물이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쓱, 비비고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두레두레한 황소의 눈깔. 시오 리를 남쪽 산으로 들어가면 어느 집 바깥뜰에 밤마다 늘 매여 있는 투실투실한 그 황소. 아무렇게 따지든 칠십 원은 갈 데 없으리라. 그는 부리나케 아우의 뒤를 밟았다.

  공동묘지까지 거반 왔을 때에야 가까스로 만났다. 아우의 등을 탁 치며,

  “얘, 좋은 수 있다. 네 원대로 돈을 해 줄게 나하구 잠깐 다녀오자.”

  씩씩한 어조로 기쁘도록 달랬다. 그러나 아우는 입 하나 열려 하지 않고 그대로 실쭉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깨 위에 올려놓은 형의 손을 부질없단 듯이 몸으로 털어 버린다. 그리고 삐익 달아난다. 이걸 보니 하 엄청나고 기가 콱 막히었다.

  “이눔아!” / 하고 악에 받치어, / “명색이 성이라며?”

  대뜸 몽둥이는 들어가 그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아우는 모로 몸을 꺾더니 시나브로 찌그러진다. 뒤미처 앞정강이를 때리고 등을 팼다. 일어나지 못할 만치 매는 내리었다. 체면을 불고하고 땅에 엎드리어 엉엉 울도록 매는 내리었다.

  홧김에 하긴 했으되 그 꼴을 보니 또한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침을 퉤, 뱉어 던지곤 팔자 드신 놈이 그저 그렇지 별수 있나, 쓰러진 아우를 일으키어 등에 업고 일어섰다. 언제나 철이 날는지 딱한 일이었다. 속 썩는 한숨을 후─ 하고 내뿜는다. 그리고 어청어청 고개를 묵묵히 내려온다.

▶응칠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응오에게 몽둥이질을 한 후 응오를 업고 산에서 내려옴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농촌소설

• 성격 : 반어적, 토속적, 풍자적, 해학적

• 배경 : 시간적 - 일제 강점기의 어느 가을, 공간적 - 강원도 산골 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응오와 응칠이의 삶

• 주제 : 일제 강점기 조선의 농촌 사회에서 농민들이 겪는 가혹한 현실

• 특징

 ①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

 ② 토속적인 어휘를 구사하여 농촌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함.

 ③ 소작인들의 궁핍상을 반어적인 수법으로 구사하면서 표현함.

• 인물

 - 응칠 : 원래는 성실한 농민이었으나 가난으로 인해 떠도는 신세가 됨.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과 절도로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꾸는 인물

 - 응오 : 진솔하고 모범적인 소작농.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함.

 - 성팔, 기호, 용구, 머슴, 상투쟁이 :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농촌을 떠나려는 소작농들


■ 작품 해설 1

  ‘만무방’은 ‘염치 없이 막되먹은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 ‘만무방’은 응칠이의 부랑하는 삶을 빗대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부채 때문에 농촌을 떠나 도박과 절도를 일삼는 응칠이, 모범적 농민이었지만 가난 때문에 자기 논의 벼를 훔치는 응오, 성실하게 일해도 남는 것이 없으니 열심히 일하기를 포기하고 도박이나 금광 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농촌의 사람들이 모두 ‘만무방’인 셈이다. 즉, 이 작품은 농촌의 모순과 피폐함을 구체적으로 잘 드러내 주는 인물들을 제시하며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우리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은 그들이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만무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사회 구조 때문에 만무방이 된다는 것이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단편소설.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의미인데,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든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浮浪)하는 삶을 중심으로 하되,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射倖的) 행태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추수를 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동생 응오)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은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 준다. 

 <만무방>은 응칠과 응오 형제가 궁핍한 삶 가운데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야기이다. 전과 4범의 건달인 형 응칠은 절도에도 능한 노름꾼이며, 사회적 윤리의 기준에 위배되는 '만무방'이다. 이와는 달리 동생 응오는 모범적인 농사꾼임에도 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뿐이라는 절망감으로 벼 수확을 포기한다.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의외로 동생인 응오였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일 년 농사를 짓고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뿐이라는 인식(認識)은 당시의 소작농들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응오가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에 놓이는 데 반하여 형 응칠은 반사회적인 인물이며 적극적 행동형이다. 모범적인 농사꾼을 반사회적 인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기인(基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같은 응칠의 행위가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왜곡(歪曲)된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인물들의 현실 개선의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반(反)사회적인 수단 즉, 도박, 절도 등에 의해 현실의 극복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작가가 제시한 인물들의 행위가 타락한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음은 타락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1930년대의 현실 상황을 반어적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김유정에게 있어 수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구조를 인식하고 왜곡된 사회 현실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당시 소작인들의 궁핍상을 반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준다. 주인공의 대범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반사회적인 것일수록, 그것이 농민 계층의 꿈이 되고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아이러니이다. 이는 30년대와 같은 모순된 사회에서 응칠과 같은 반사회적인 행동 양식이야말로 당대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씁쓰레한 메시지를 환기(喚起)하고 있다. 


■ 작품 해설 3

 「만무방」은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당시 우리나라 농촌에 내재하는 착취 체제의 현실적 모순을 그린 사회성 강한 작품이다.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의미인데, 여기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하는 삶을 의미하고 있다.

 작품 초반은 응칠과 응오 형제가 궁핍한 삶 가운데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야기이다. 건달인 형 응칠은 절도에도 능한 노름꾼이며, 사회적 윤리의 기준에 위배되는 ‘만무방’이다. 이와 달리 동생 응오는 모범적인 농사꾼임에도 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뿐이라는 절망감으로 벼 수확은 포기한다.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 맞는데 응칠이 범인을 잡고 보니 동생인 응오였다는 사실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작품 후반에 잘 나타나 있듯이 추수를 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은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 비판 의식을 보여준다. 모범적인 농사꾼을 반사회적 인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 때문으로 결국 두 형제의 현실 개선의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반사회적인 수단 즉, 도박․절도 등에 의해 현실의 극복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이렇듯 작가가 제시한 인물들의 행위가 타락한 모습으로 제시되어 있음은 희망이 없이 헤매이는 사회 빈곤층들의 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 타임기획, 소설119플러스 2권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응칠’이의 삶을 통해 본 당시의 농촌 현실

  응칠이는 원래부터 만무방은 아니었다. 아무리 고생하며 농사를 지어도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현실이 응칠이를 만무방으로 만든 것이다. ‘농사는 열심으로 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남는 건 겨우 남의 빚뿐.’이라는 표현을 통해 성실한 노동이 빚으로 되돌아오는 당시 농촌의 모순된 삶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많은 농민 가정이 파산하였고, 식구들과 뿔뿔히 흩어져 유랑 걸식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응칠이의 양면성 - 돈독한 우애가 가능한 이유

  고전 소설 ‘흥부전’의 흥부와 놀부는 형제지간이지만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특히, 형 놀부는 동생 흥부의 고단한 삶에 대해 전혀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더 괴롭히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와 비교할 때, ‘만무방’에서 형으로서 응칠이가 응오에게 보여 주는 태도는 놀부와 매우 상반된다. 응칠은 단 하나뿐인 혈육인 응오에게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고, 늘 응오의 처지에 대해 불쌍하게 여기고 있으며,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생을 보호해 주고 싶어 한다.


3. 인물을 통해 바라본 ‘반어’

4. 반어적 상황을 통한 해학성

  ‘만무방’의 결말에 드러나는 상황은 ‘상황적 반어’의 상황이다. 상황적 반어란 미리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응오가 자신이 키운 벼를 자신이 훔치는 것이 상황적 반어에 해당한다. 이런 반어적 상황은 해학성을 동반하고 있는데, 이는 재미있고 우스운 느낌이 아니라 놀랍고 어이없음을 동반한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5. 김유정 소설 특징

 ① 향토성 : 김유정 소설의 배경은 대체로 산골 농촌이다. 「소낙비」, 「산골」, 「만무방」, 「산골 나그네」, 「동백꽃」, 「가을」, 「봄봄」 등이 이와 같은 작품들이다. 김유정 소설의 향토성은 작가의 체취이다. 이는 김유정이 강원도 산골 출신이기 때문이다.

 ② 해학성 : 김유정의 소설에는 한국적인 특유의 해학이 스며 있다. 「봄봄」은 해학성을 띤 대표적인 작품이고, 「아내」, 「총각과 맹꽁이」, 「땡볕」에도 애수 어린 해학이 깃들어 있다.

 ③ 풍자성 : 김유정 소설 도처에 스며 있는 해학은 단순한 소극(笑劇)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해학에 접맥되어 있으며, 그것은 또한 풍자성을 동반한다. 김유정 소설의 풍자성은 1930년대 우리 소설의 한 경향과 호름을 같이 한다.


6. 김유정의 작품 세계

 김유정은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인 현실 중시의 피상적인 농촌 문학을 지양하고, 당시의 농민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그 생활 감정과 내면적 흐름 및 본질적인 인간성을 보여 주었다. 김유정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해학성으로 「봄봄」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우직하고 무능력한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피해 받고 있는 자기 스스로를 우월시하는 역설적인 웃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그의 짙은 토속성인데, 이것은 그의 작품 대부분이 강원도의 깊은 산골을 배경으로 한 데에서 기인한다. 김유정은 이러한 해학성과 토속성을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따듯한 인간애와 함께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력을 보여 준다.

 그는 주로 농촌 현실을 토착적 유머와 해학으로써 그려 내어 우리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궁핍한 상태에 있는 농촌이지만, 그가 소설의 세계로 끌어들이면 아픔이나 슬픔 보다 웃음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그의 근본적인 힘은 인간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이와 같이 김유정의 소설은 고전 문학의 해학성을 계승하여 일제 강점하의 농촌의 궁핍상과 순박한 생활상을 향토적 정서와 함께 토속적 어휘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웃음을 듬뿍 안겨 주고 있다.


■ 작가 소개

 김유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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