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히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현실 비판적
• 제재 : 여성의 일상 생활
• 주제 :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불평등한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
• 특징 :
① 영화의 오버랩 기법처럼 시상을 전개함.
② 시상이 전환되면서 의미가 확대됨.
③ 구체적 인물을 설정하여 보편적 현실을 드러냄.
④ 주인공을 팬지꽃, 안개꽃에 비유함으로써 삶의 고단함을 표현함.
■ 작품 해설 1
맞벌이 부부인 우리 동네 구자명씨는 일곱 달 된 아기 엄마이다. 그녀는 출근 버스에 오르자마자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출근하는 동안 차들이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우로 꾸벅꾸벅 존다. 이런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진달래가 피는 봄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가을로 바뀌어도, 구자명씨는 꼭 부처님처럼 미동도 없이 졸고 있다. 구자명씨가 저렇게 조는 것은 어젯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시어머니 약 시중을 들고,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살피느라 잠을 자지 못해서다. 매일 고단한 삶을 사는 구자명씨는 가정에서 여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느라 항상 피곤하다. 이처럼 모든 가정마다 여자는 한 식구의 안식을 담당해야하며, 이로 인해 여자는 잠을 편안히 누리지 못한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구자명 씨의 출근 모습을 화자가 지켜보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즉, 구자명 씨가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구자명 씨의 고달픈 하루 일과를 상상해 보며 ‘직장 일’과 ‘가사’라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 여성의 삶을 진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팬지꽃 아픔’, ‘안개꽃 멍에’는 이러한 여성의 희생을 형상화한 구절로, ‘팬지꽃’과 ‘안개꽃’으로 상징되는 가정의 우아함과 편안함이 모두 여성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 시는 이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의 삶을 구자명 씨 개인의 일상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사회 여성으로 확대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현대시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화자가 바라보는 ‘구자명 씨’의 삶, 천재(정)
식구들의 안식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구자명 씨는 가족에게는 평안을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잠조차 편안하게 잘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화자는 구자명 씨가 지키고 있는 그 안식이 오히려 자신은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조차 유지할 수 없도록 강하게 억압하고 있다고 한다. 즉, 화자는 ‘구자명씨’처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물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2. ‘잠’의 의미(지학사 참고)
시의 초반부터 구자명 씨는 졸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구자명 씨가 아침 일찍부터 조는 이유는 간밤에 다른 식구들을 챙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잠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구자명 씨는 여자라는 이유로 낮에는 직장에 다니느라 밤에는 식구들 돌보느라 잠조차 편히 잘 수 없다. 이처럼 이 시에서 ‘잠’은 최소한의 욕구조차 누릴 수 없는 고단한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3. 시인 고정희의 페미니즘 경향(지학사 참고)
고정희는 1980년대 여성 문제에 관한 시를 많이 쓴 시인으로, 기존 여성시의 관념과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시 ‘남누리 북누리 사무치는 어머니여’에서는 ‘여자 일생 우려먹는 오적 귀신 / 여자 일생 후려치는 억압 귀신 / 여자 일생 피 짜내는 착취 귀신 / 여자 일생 눈물 베는 감옥 귀신’이라고 노래하면서 역사상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심했던 과거사를 시의 제재로 다루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여성들의 희생적 삶에 대한 반성과 개선을 촉구하였다.
4. 구자명 씨를 비유하고 있는 시어와 함축적 의미(천재교육 참고)
* 부처님 : 세속의 세계를 초월한 부처님처럼 진달래나 밤꽃이 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졸고만 있는 여성
* 팬지꽃 :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팬지꽃처럼 출퇴근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가냘프고 처량한 여성
* 안개꽃 : 다른 꽃을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안개꽃처럼 가족의 안위를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는 멍에를 진 여성
5. 중의적 의미(천재교육 참고)
화자는 가사 노동으로 인해 밤잠을 설친 '구자명 씨'가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부처님처럼 졸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부처님'을 강조하느냐, '졸고 있는'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 양상이 달라진다. 즉, '부처님'을 강조한 것으로 보았을때는 식구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자비를 강조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졸고 있는'을 강조한 것으로 보았을 때는 '바깥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구자명 씨는 꼼짝 않고 자기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타난 '죽음의 잠'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은 듯이 든 잠'이라 해석하여 '구자명 씨가 너무나 피곤하여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었음'을 나타낸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죽음과 같은 잠'이라 해석하여 '피곤함이 죽음처럼 삶을 갉아 먹고 있음'을 나타낸 의미로 볼 수도 있다.
6. 어조 변화가 나타난 부분의 효과는?(천재교육 참고)
화자는 졸고 있는 구자명 씨를 관찰하다가 가정에 돌아간 구자명 씨가 아기와 시어머니, 남편의 시중을 드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연민에 가득 찬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어조의 변화를 통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구자명 씨의 삶에 주목하게 하고 연민의 정서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7. ‘구자명 씨’의 삶을 통한 주제 형상화(천재교육 참고)
이 시의 구자명 씨는 가사와 직장 일이라는 이중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구자명 씨의 고달픈 일과를 통해 시어머니에게는 ‘효부’, 남편에게는 ‘양처’, 자식에게는 ‘현모’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관념에 의해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8. 바깥 경치와 대비되는 ‘구자명 씨’의 모습(천재교육 참고)
이 시에서는 아름다운 바깥 경치와 그것을 볼 여력도 없이 정신없이 출근 버스에서 졸고 있는 구자명 씨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구자명 씨에게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는 표현은 여성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 인식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 엮어 읽기
* 시집살이 노래
*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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